방콕 지진 대피기

삶과 죽음, 그리고 윤리적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단상

by 사색림

어제 (2025년 3월 28일) 이른 오후, 진도 7.7의 지진이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만달레이 부근에서 발생했다. 그 시각 태국 방콕에 사는 나는 체육관에서 운동을 마친 후 락커룸에서 머리카락을 말리려던 참이었다. 갑자기 우웅, 하는 느낌이 들면서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웠다. '오늘 내가 운동을 너무 많이 했나' 하는 생각이 들던 그 순간, 내 앞에 있는 쓰레기통 뚜껑이 미친 파도처럼 왼쪽 오른쪽으로 넘실넘실 흔들리는 게 보였다.


아, 내가 어지러운 게 아니라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거구나.


지진이란 걸 깨달은 순간 바로 남편에게 "지진 났다" 문자 하나를 보냈다. 양말도 신지 않은 발을 운동화에 밀어 넣고 소지품을 챙기자마자 건물 내 비상벨이 울렸다. 체육관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화재용 비상탈출계단으로 지층까지 걸어 내려갔다. 지진이 난 것보다도 나를 불안하게 한 건 사람들이 저마다 스마트폰 화면만 보며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이었다. 저러다 한 명이 발을 헛디뎌서 다들 넘어지면 어쩌려고.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무사히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한낮의 열대 태양이 아스팔트 바닥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근처 고층 건물에서 일하던 사무직들, 우리 체육관에서 운동하던 운동복 차림의 사람들이 육교와 인도로 쏟아져 나왔다. 그 와중에도 다들 뙤약볕은 피하려다 보니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수 밑은 발만 동동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휴대폰으로 길을 가득 메운 인파를 동영상으로 찍거나 어딘가로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사람이 없는 구석을 찾아 양말을 신고 급하게 나오느라 구겨 밟은 운동화 발꿈치를 고쳐 신었다. 체육관 회원증은 락커룸 열쇠와 교환해서 여전히 체육관 안에 있는 상태였지만 나는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 집에 있는 강아지 두 마리가 걱정되어 사람들이 가득 찬 인도를 뚫고 가는 대신 위험한 차도로 내려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11층이 꼭대기층인 아담한 아파트 건물에서 우리 집은 3층이다. 내가 건물로 들어가려 하자 건물 관리 직원들이 위험하다며 제지하고 나섰다. 다행히 태국말로 "집에 아직 강아지들이 있어요" 정도는 할 수 있었고 그 말을 들은 직원들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쪽으로 올라가라고 권했다. 3층에 거의 다 올라왔을 때는 건물 꼭대기층에서 한 층씩 내려오며 대피하지 않은 사람이 없도록 확인하던 다른 건물 관리 스태프가 나에게 내려가라고 또다시 만류했다.


나는 "개들만 데리고 나올게요" 하고 집에 들어갔다.


강아지들은 다행히 별 탈 없어 보였다. 반갑다고 꼬리를 흔드는 개들에게 목줄을 채우려는 순간 비상벨이 더 큰 소리로, 더 빠른 템포로 울리기 시작했다. 덩달아 급해진 마음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떨리는 손으로 목줄을 채운 후 강아지들을 데리고 계단을 뛰어내려왔다. 체육관 건물 근처와 마찬가지로 우리 집 근처 역시 인도마다 그늘마다 근처 직장과 병원에서 쏟아져 나온 인파가 삼삼오오 모여 서 있었다.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는 생각에 나는 사람들이 서 있지 않은 곳을 골라 강아지들과 길바닥에 앉아 있었다. 곧이어 회사에서 일찍 퇴근한 남편이 도착해 우리와 합류했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두 시간 정도 집 앞 길가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같은 건물 이웃 주민과 잡담도 하고, 남편의 전 직장 상사 부부와 마주쳐 인사도 해가며, 일상에 비현실 한 방울 떨어뜨린 일상 같지 않은 일상을 마주했다. 대화 주제는 물론 지진이었지만, 그 외 대화 양상은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자연재해를 겪은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일종의 유대감 덕분에 평소보다 대화 상대방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느낌이었다.


털북숭이 강아지들은 열대 한낮 36도까지 올라간 더위에 연신 혓바닥을 내밀고 헥헥거렸고, 물 한 통도 챙겨 나올 정신이 없었던 나는 스스로를 탓했다.


체육관에서 내 한 몸 빠져나올 때만 해도 긴장은 했지만 무섭지는 않았는데,
강아지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집으로 향할 땐 마음이 어찌나 조마조마하던지.


혹시라고 우리 집 건물이 무너진 건 아닌지. 동물들은 지진이 나기 전에 낌새를 알아차리고 몸을 피한다고 했는데, 우리 강아지들은 그런 걸 할 줄 아는 건지, 몰랐으면 어쩌지,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들이 무사하고 남편이 무사하고 우리 아파트는 물론 근처 고층 건물들도 눈으로 볼 수 있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들자 팽팽하게 긴장해 있던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갑자기 졸리고 허기가 졌다.


오후 세 시가 넘어 추가 여진이 발생하지 않자 사람들은 하나 둘 집으로, 사무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우리도 집에 들어와 목을 축인 뒤 집 안 곳곳에 피해는 없는지 확인했다. 진열장 안에 세워둔 책은 그대로 서 있었고, 몇 군데 벽과 천장에 실금이 간 것 외에는 다행히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


한숨 돌리고 나서야 뉴스를 확인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도시 북쪽에 이름난 주말시장인 짜뚜짝 시장 근처에 건설 중이던 고층 건물이 그대로 폭삭 무너져 공사현장 인부들이 매몰되었고 사상자가 계속 늘고 있다. 진앙지인 이웃 나라 미얀마에서는 글을 쓰는 현재 (2025년 3월 29일) 사망자가 최소 1,000명으로 확인되었고 최대 10,000명이 희생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내가 사는 도시 방콕에서도 최소 10명이 사망했고 백여 명이 여전히 무너진 건물더미 밑에 갇혀 있어 구조작업이 진행 중이다. 소셜미디어에는 방콕 내 고급 호텔 꼭대기층 수영장에서 물이 흘러넘쳐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영상, 공사 중이던 고층 건물이 주저앉는 영상, 그리고 급속도로 불어나는 무서운 먼지구름을 피해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달아나는 사람들이 담긴 영상과 사진이 도시 괴담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다.


편한 몸과 달리 마음은 무겁고 싱숭생숭하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든 죽을 수 있는 게 살아있는 모든 생명의 숙명이라는 무거운 사실이 마음속에 돌멩이처럼 굴러다니며 내면에서 또 다른 지진을 일으킨다.


살아있다는 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거나 마찬가지인데도,
죽음이 내 주변에 다가와야만 살아있음을 자각한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내 무릎 위에서 편안하게 조는 강아지를 앉혀두고 편안하게 내 방에서 글을 쓰는 지금 생각한다. 온 가족이 안전하게 별다른 피해 없이 몇 시간 만에 집에 돌아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푹 잘 자고 일어난 우리에게 어제의 지진은 불과 몇 시간의 소동으로 끝난 경험일지 몰라도,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여전히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의 생사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사람들이 있다고.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처럼, 내 한 몸, 내 가족이 무사해야 하고 안전해야 한다는 본능적인 반응과 달리 마음 한 구석 불편한 곳에서 양심이 소리친다. 이 재난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너 하나 무사하다고 그렇게 편안하게 있을 수 있냐고. 그러면 또 다른 목소리가 반문한다.


그럼 지금 내가 그 매몰된 사람들을 걱정하고 기도하는 것 외에 뭘 할 수 있는데?
그렇게 치면 매일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공습에 죽어가는 가자지구의 아이들,
우크라이나에 비해 국제사회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하는 수단 내전을 비롯해
수백 수천만 피난민들과 가난에 시달리는 이들이 같은 하늘 아래 사는데도
우리는 왜 매일 밤 두 발 뻗고 잠을 잘만 자는 걸까?


예전에 어느 글에서 읽은 내용이 떠오른다. 34살의 나이로 요절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레지스탕스였던 시몬 베유는 머나먼 중국에서 일어난 대지진과 노동자들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눈물은 전 세계를 감싸 안고도 남을 그녀의 폭넓은 공감능력의 증거이자 그녀가 요절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걱정하고 공감할 수 있는 건 탄복할 만한 초인적인 공감력이지만, 그렇게 온 세상을 걱정하는 데 에너지를 쏟아내고 나면 일상을 평범하게 정신줄 붙잡고 살기 어려웠을 것 같다. 자기 보전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이 세상의 아픔을 외면하는 행동처럼 느껴져 자신의 존재를 무(無)에 가깝게 깎아나가며 산, 성인과도 같은 철학자. 시몬 베유 같은 사람만 있었다면 세상에는 분쟁지역 따위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대신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요절하고, 아무도 아이를 안 낳지 않았을까.


나같이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일상에 쫓기듯 살다가 불현듯 지진 같은 자연재해를 만나면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의 가족부터 챙기고 본다는 사실을 이번 지진을 겪으며 알게 되었다. 일단 나부터 위험에서 벗어나고 나면, 같은 재해로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했다는 어떤 안도감에 젖어 최대한 그런 공감과 걱정을 마음에서 몰아내려고 한다. 고작 한다는 게 뉴스를 찾아보며 사상자 수가 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뿐이라니. 도움을 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더 있는데도 안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지만 다시 일상을 위한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일들에 마음을 쓰며 애써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는 나 자신이 조금 보잘것없고 하잘것없고 초라하고 약간 비겁하다고 느낀다.


윤리적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의 공감력의 범위는 어느 정도로 커야 스스로의 눈에 덜 초라해 보일까. 어느 정도로 타인을 걱정해야 수명을 깎아먹지 않으면서도, 나의 일상의 균형을 유지하며 정신줄을 온전히 붙잡고 살 수 있을까.


김수영 시인의 글이 떠오른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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