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럽지만 그냥 하는 것 - 제현주님의 <일하는 마음>을 읽고
지난 7월엔 책을 한 권 읽었다. 영감의 소스를 늘 건네주는 파트장님의 추천으로 읽은 제현주님의 '일하는 마음'이란 책이었다. 읽고 나서 언젠간 꼭 정리해두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요 근래 맞닥뜨린 상황들로 인해 마음이 지쳐 위로가 필요했나 보다. 이번 추석 연휴에 다시금 책을 폈다. 그리고 기록하게 됐다.
일단 업무가 바빠졌다. 절대적인 양이 많아졌다기 보다는 챙겨야 할 것들이 산발적으로 튀어나오는 느낌이라 업무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다. (앞으로 더더욱 많아질 예정이긴 한데..) 맡고 있는 범위와 우선순위, 예상되는 결과, 이해관계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모든 것을 키를 쥐고 흔들어도 모자랄 판에 지금은 떠밀리듯 업무의 홍수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것만 같다. 실은 바빠졌다는 것보다 전체를 바라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가 만들어가는 구멍들은 죄책감을 더 크게 만들었다. 결국 이렇게 뒤덮인 요소들이 업무 성취감과 효율을 낮추고 있는 듯하다. 하기 싫은 일, 다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든다.
여기에 한 술 보탠 건 조직의 변화. 이에 자동적으로 수반되는 프로세스의 재정비 과정.
조직이 점점 커지고 있다. 나만 해도 이제 입사한지 11개월을 달리고 있는데, 팀에서 나름 고인물(!) 이다. 초기 멤버는 대부분 퇴사했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은 더 많아져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훨씬 늘었다. 그간에는 급격한 성장 속에서 부족한 인력으로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왔지만 어느 순간 구멍들이 더 크게 드러났다. 개발로 치면 기술부채와 같은 거랄까. 당시엔 최선이었으나 지금은 더이상 최선이 아닌. 사업의 규모와 멤버 수의 증대, 이로 인해 기존 프로세스가 병목의 기점이 되었고 이젠 '변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타이밍에 온 거다. 혼란 속에서 파도에 맞서는 대신 흐름에 몸을 맡기며 자연스레 감당할 수 없을까.
그렇다고 상황만 탓하고 일에 손을 놓고만 있을 수는 없을 터. 일하고 있는 것을 중단할 수도 없고, 못하겠다고 배를 쨀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도대체 어떻게 일해야 할까.
해야 하는 일, 하기로 마음먹은 일이 감당할 수 없는 과업이라는 느낌이 몰려올 때가 있다. 일이 크든 작든, 없는 것에서부터 만들어가야 할 때가 보통 그렇다. (중략)
예전에는 그런 느낌이 엄청난 압박, 때로는 무력감과 함께 찾아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할 수 있는 걸 하나씩 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생각할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빨리 최대한 잘하자는 마음이지만, 그 결심이 반드시 해내야겠다는 비장함 같은 것은 아니다.
물론 여전히 스트레스는 있다. 과업이 주는 압박감 역시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잘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나 괜한 짓을 했나 의심하는 마음은 사라졌다. (중략)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목소로 청소할 수밖에 없다. 매번의 빗질에 집중하며, 생각이라는 걸 해야겠다면 빗질을 좀 더 낫게 할 방법을 생각하며.
- 일하는 마음, p.45-46
<일하는 마음>은 일을 바라보는 관점, 성장에 대한 이야기, 가치있게 일하는 자세 등에 대해서 저자의 생각을 듬뿍 담아낸 책이었다. 무엇보다도 내게 위로가 되었던 것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을 이 대단해 보이는 작가도 동일하게 거쳐왔구나.. 비단 나만 겪는 감정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격려의 마음이었다.
많이들 알고 있는 시간관리 방법 중 스티븐 코비의 '시간관리 매트릭스'라는 것이 있다. 중요도와 긴급도를 기준으로 4등분으로 나누어 중요하지만 긴급한 일,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일.. 등으로 기준을 삼아 할 일을 정리하는 방법이다. 내가 지금 지고 있는 걸 이 표에 빗댄다면 '중요하지만 긴급한 일' + '하지만 하기 싫은 일'로 굳이 넣고 싶다. 꼭 해야 하는데 하기 싫은 일.. 그냥 내려놓고 도망쳐버리고 싶은 일.
요즘 하는 일들에서 내가 괴로움을 거듭 느끼는 건 이 일이 내게 익숙하지 않은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5킬로그램이나 증량한 스쿼트나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이 괴로움은 내가 힘을 늘려가는 과정에 있다는 뜻일 테다. 이 시간이 훈련이라면 이 훈련의 끝에 근육은 반드시 자라 있겠지.
힘에 부치는 태스크의 목적이 프로젝트의 성공이라고 생각할 때는 이 모든 일이 결실이 불확실한, 무용할지 모르는 노력이라는 회의가 들었다. 내가 이 일을 해낼 만한 사람인지도 자꾸만 의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괴로운 하루하루를 훈련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게 훈련이라면, 그것만은 반드시 성공해낼 수 있다는 자신도 생겼다. (중략)
훈련이 일등을 담보해주지는 않지만, 훈련 이전보다 근육이 자라는 것만은 보장해주는 것처럼.
- 일하는 마음, p.136-7
왜 이런 마음이 들까? 결국 이 부담감은 내게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속도가 더디 걸리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지루하고 하기 싫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능숙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해내야 하는 일이라 더 마음의 짐으로 쌓이는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뿐, 내가 걸어온 모든 시간은 늘 그래왔을 거다. 1년차, 2년차.. 5년차..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은 늘 있어왔고, 결국 그 시간을 맞닥뜨렸을 때 도망치지 않고 꾸역꾸역 해낸 나의 점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리라 생각한다. 결국 저자도 어떠한 해결 방법을 찾아낸 건 아니다. 그냥 훈련의 과정이라고 바라보는 생각의 전환만 가졌을 뿐.
그 자유로움이란 아마도 두 가지에서 나왔을 것이다. 첫째, 내가 이 주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확신이다. (중략) 예기치 못한 상황이 닥쳐도 잘 대처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오는 자유로움. 그것은 나의 존재를 보호할 능력이 내게 있다는 단단한 감각이다.
그러고 보니 더 나이 들기 전에 그렇게 자신에 대한 단단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뭐, 다른 비결은 없다.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이는 것, 그게 글쓰기든 요리든 달리기든 그림 그리기든 무엇이든. 시간을 들인 효과는 누구보다 먼저 자신이 알게 된다.
- 일하는 마음, p.26-7
솔직히 '하기 싫은 일을 어떻게든 해야하는데 당장 너무너무 하기 싫으니 어떻게든 꾸역꾸역 동기부여를 해가는' 지금의 내가 써내려가는 글이지만..
지금 하는 경험을 또 미래의 나에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누구는 바보라고 할지 몰라도 묵묵히 시간을 들여 쌓은 감각과 경험은 결국 조개만이 품고 있는 진주같은 거라고 믿는다. 이렇게 계속 하다보면 결국 나에 대한 단단한 믿음이 생기겠지. 미래의 나에게 선물해주고 싶다.
실력을 기르는 일은 돌 하나씩을 쌓아올리는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점을 찍고, 그 점들을 이리저리 연결하고, 때로 찍었던 점을 잃어 애써 연결에 성공한 선분이 함께 사라지고, 그러면서도 거듭 점 찍기와 연결하기를 시도하면서 커다란 그림을 완성해가는 일에 가깝다. 실력은 절대로 단선적으로 늘지 않는다
(p.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