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동료가 되고 싶은 PM 한명이 적어보는 이야기
어느덧 일을 한지도 8년차,
주니어도, 시니어도 아닌 그 중간 즈음을 중니어라고들 하는 이야길 들었다. 엄청 많은 경력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업이 익숙해졌다고 말은 할 수 있는 길을 걸어가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올해 들어 유난히 멘토링이나 진로 등의 주제를 통해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다.
이런 만남들의 주요 주제는 ‘나는 어떤 기획자가 되고 싶은가.’ 혹은 ‘나는 어떤 PM으로서의 역량을 길러야 하는가’ 에 대한, ‘나’를 중심에 둔 것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좋은 기획자가 된다는 것, 그 정답이 뭔지 많은 이들은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나 역시도 그러하고.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좋은 기획자가 된다는 건
나 혼자만으로 이룰 수 있는 걸까?
PM이나 기획자나 결국 가장 중요한 스킬은 문제 해결까지의 커뮤니케이션일거다. 스펙을 이해하고, R&R을 정리하고, 방향을 그리고.. 모든 과정에서 면대면으로 이루어지는 소통이 90%를 차지할진대 이걸 제쳐놓고 말할 순 없다. 그렇다면 결국 좋은 기획자란 이 모든 과정을 잘 해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혼자 할 수 없는 일. 결국 이해관계자뿐만 아니라 내 바로 옆의 ‘동료’들과 함께 해내야 하는 일, 그럼 나는 그들에게 어떤 동료가 될 수 있을까? 그 관점에선 생각해본 적이 없던 것 같다.
일을 잘하는 동료? 똑똑한 동료? 같은 포지션의 동료들에게는..?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 아니면 냉철하게 피드백해줄 수 있는 사람?
개인의 성장은 곧 조직 안에서 일어난다.
진짜 성장을 한다는 건, 비단 나만의 성장이 아니라 내가 속한 조직과 모든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함께 나아가는 역량을 길러줄 수 있는 사람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어떤 동료가 되고 싶은지 스스로의 방향과 다짐을 세우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킬보다는 되고 싶은 자세를 중심으로.
하나, 서로의 성장을 돕는 동료. 상대를 경쟁 상대가 아닌 협업 상대로 보는 동료.
지금까지 수많은 동료들을 만나왔다. 하늘 아래 같은 사람 없다 했던가, 같은 팀 안에서도 성향은 천차만별이고 업무 스타일, 강점과 약점 모두 제각각이었다. 개중에는 나보다 훨씬 역량이 뛰어나 배울만한 부분이 참 많은 동료가 있었고 또 어떤 경우는 상대적으로 나보다 연차가 적어 내가 많이 알려주고 가이드해주어야 했던 동료도 있었다. 나와 비슷하다해도 다른 강점을 가지고 있어 존재만으로도 내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이들도 무척 많았다. 주고 받음의 크기에는 차이가 있었을지언정 배울 것 없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다른 이를 통해 배워온 만큼 나도 상대의 성장을 ‘돕는’ 동료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보다 잘나고 못나고의 정도를 비교하여 교환하는 의미의 돕는다가 아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 그러려면 내가 잘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고 그걸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실력을 쌓아나가야 한다.
또 부족한 점은 인정하는 자세로 조언을 구하고 싶다. 부족함을 드러낸다는 건 결국 상대를 경쟁상대로 보지 않는 데서 나올 수 있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서로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 동료가 되고 싶다.
둘, 업무의 경중이나 평가보다 맡겨진 일에 능동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동료
일도 사람이 하는지라 누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느냐로 외부의 시선이 달라질 때가 있다. 규모있는 일과 작은 운영성의 일. 이전에 속했던 어떤 조직에서는 큰 업무를 맡은 사람이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성과도 더 많이 챙겨가는 그런 구조였는데, 그런 조직에서는 특히나 일의 경중이 특히나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누군가 크고 좋은 성과를 이루면 그게 격려가 아니라 경쟁의 시선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때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결국 서비스를 더 좋게 만드는 데 일조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 후로 스스로와 약속한 게 있다면 업무의 크고 작음이나 평가를 넘어서 주어진 일에 먼저 최선을 다하자는 것. 작은 게 주어지면 그게 그릇인 줄 알고 열심히 하고, 또 그렇게 하다 보면 점점 넓은 그릇으로 확대되는 걸 봐왔으니까..
이런 동료가 되려고 계속 노력하고 싶다. 업무의 규모, 리소스, 평가, 인정.. 이런게 아니라 서비스를 생각하고 주도적으로 바라보는 동료로서의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싶다.
셋,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는 동료, 단호하지만 무례하지 않으며 줏대는 있지만 고집을 부리지 않는
기획자는 참 그 경계가 너무 어렵다. 프로덕트를 이끌어나가는 중심과 원칙은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그게 아집이어서는 안된다. 그 중간을 지키는 일이 어렵다. 결국에 PM이 세우는 주장/가설/방향이 고집이 되지 않으려면 사실로 접근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아야 한다’라는 저 문장에 커뮤니케이션 자세나 화법의 차원을 넘어서는 의지를 담고 싶었다. 실제 업무를 처리할 때나 누군가를 설득할 때, 내 감정은 한켠으로 밀어 두고 업무만 명확하게 바라보고 근거를 제시하는 능력을 가진 동료가 되고 싶다. 그래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토론이 감정싸움에 눈치보는 게 아니라 정말로 건설적인 시간이 될 수 있도록 -
난 나중에 어떤 동료로 기억되고 싶을까?
문제만 잘 해결하는, 혹은 감정만 잘 지지해주는.. 그런 사람으로서 역할하고 싶지는 않다.
과거 나의 동료였던 누군가가 어떠한 순간에 PM을 찾게 된다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필요할 때 함께 일하고 싶다고 손 내미는 그런 동료였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얼마 전 읽은 제현주님의 ‘일하는 마음’에서 인상적이었던 구절.
일은 사람이 한다. 제각각의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그리고 그런 제각각의 얼굴이 드러나도 좋은 곳에서 일하며 산다는 것. 그 얼굴이 지닌 맥락을 상상해보고 이해해볼 여유를 갖고 서비스를 사고판다는 것은 일의 본질을 바꾸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