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챙길 세 가지 : 능동적인 자세, 배우려는 욕심, 책 많이 읽기
얼마 전 예비 기획자분과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
“주니어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떤 걸 했을 것 같으세요?”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던 옛 어른들의 속담에 참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게, 처음 질문을 받고 '나는 주니어 때 어땠지?' 라며 한참을 생각했던 것 같다. 분명 지금까지의 길이 쉽진 않았음이 분명한데 그런 기억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람마다 성향도 다르고, 잘하고 못하는 것도 다르기 때문에 모든 이들에게 적용될 순 없겠지만, 또 비슷한 성향의 누군가에겐 도움이 됐음 하는 마음에 슬쩍 기록해보기로 했다.
만약 내가 다시 주니어 기획자가 된다면 하고 싶은 것은 너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이것만은 꼭 해야 한다! 하는 세 가지를 꼽아보았다.
신입 시절 나는 '신입은 멍청이에서 덜 멍청이로 변하는 시간이야'라고 말하고 다니곤 했다. 그만큼 신입이란 아는 게 없는 상태라는 드러내고 싶었나 보다. 게다가 당시의 난 되게 조심성이 많고 소극적인 타입이었다. 소극적인 성격은 ‘남 눈치를 많이 보는 데’서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을 하나 꺼내기에도 조심스럽고,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사건건 걱정이 많았다. (근데 사실 신입이라면 이건 누구나 그럴 거 같긴 하다) 그러다 결국 질문도 못하고 꾸역꾸역 일을 잘못 해서 혼나기도 하고 그랬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드는 생각은 '왜 그렇게 눈치를 봤을까?' 싶다. 혼나는 게 뭐 그리 무서웠는지. 혼나더라도 성장하면 됐지. 지나고 나니 할 수 있는 말들이지만.
그래서 내가 다시 신입, 주니어 기획자가 된다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를 가지고 일하고 싶다. 적극적이라는 게 단순히 질문을 많이 한다거나 나선다는 의미가 아니다. ‘학생’으로서의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범주의 이야기인데, 사실 내가 그랬다. 학창 시절에는 가르치는 사람이 있고 일방적으로 배우는 수동적인 학습에 익숙해 있었고, 그러다 보니 직장에서도 사수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의존했던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직장에서의 사수는 선생님이 아니다. 회사가 학교가 아니듯이. 가이드를 주고 실수를 바로잡아 줄 피드백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너무 감사하지만 언제까지나 일은 ‘내가’ 처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내가 정의하는 ‘능동적인 자세’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의미한다.
1) 본인이 하는 일이 전체의 큰 맥락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것
- A라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해서 A만 해야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A는 어디에 얽힌 것인지, 이것을 함으로써 서비스의 방향과 목적에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 것인지 확인하는 범주를 포함한다.
- 그게 보이면 어떤 사람과 이야기해야 하고 어떤 스펙과 함께 살펴봐야 할지에 대한 큰 그림까지 엮여 볼 수 있게 된다.
2) 궁금한 것이 있다면 문서를 찾고, 검색하고, 물어서라도 끝까지 알아내려는 집념
- 궁금한 것의 범주 = 알아야 하는 것, 필요한 것, 알지 못하는 것… 모두를 지칭한다.
- 사내에 공개된 다양한 자료, 문서, 히스토리를 먼저 찾아보고, 없으면 물어물어서라도 끝까지 알아내려는 집념이 필요하다.
- 한발짝 나아가서 (만약 사수가 없다면) 먼저 질문하고 피드백을 요청할 수 있는 적극성도 필요하다. 가만히 앉아서 끙끙대기만 하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므로..
3) 시키는 일을 우선으로 하되, 그 너머의 것을 항상 고민하는 일
- 당연히 조직 내 우선순위가 있고, 책임의 범위가 다르므로 시키는 일을 우선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 (시키는 사람이 없고 스스로 찾아서 해야 하는 작은 조직이라면 조금 더 의사결정의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
- 하지만 당장 해야 할 일을 하면서도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는 습관을 길러 보는 것이 이후 성장에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 결국에는 ‘오너십’이라는 범주에서 - 시키는 일만 하느냐 VS 주도적으로 생각하며 하느냐에 대한 자세와 관점을 길러나가는 과정일 테다.
IT업계에서는 한 도메인을 쭉 경험하면서 길러지는 깊이도 중요하지만, 반면에 가지고 있는 도메인 지식과 문제 해결 방식을 바탕으로 다른 곳에서도 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나 상황들 역시 많다.
사용자나 서비스가 겪는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 이 ‘문제 해결’의 관점에서 서비스를 만들어나가고 개선해나가는 포인트에서 보면 특히 그렇다. 기술과 유행은 더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변화하는 게 뭔지, 트렌드가 뭔지 ‘습관’처럼 캐치하고 알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성향 탓인지 새로운 것보단 익숙한 것에 안정감을 느끼고, 변화가 다가오면 나도 모르게 배척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깨닫는 것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찾아서 학습하는 능력이 굉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거였다. 예를 들어 최근 등장한 NFT같은 것도 생각해보자. ‘NFT가 뭐야?’할 때 업계에서는 이미 서비스에 적용된 경우들도 많다. 그들이 처음부터 전문가였을까? 다 배우고 익히고 한 게 아닐까. 낯선 것들을 마주했을 때, 혹은 처음 보는 것을 마주했을 때에도 당황하지 않고 알아갈 수 있는 능력. 다 배움과 학습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또 어디에선가 ‘러닝 커브(학습 곡선)를 높여야 한다’란 이야기를 종종 들어봤을 것이다. 학습에 걸리는 시간이 짧고, 성장에 대한 의지가 강한 자질. 그렇기 때문에 업무적으로나, 업무 외적으로나.. PM으로서의 자질을 지속시켜주는 기본 역량으로 러닝 커브를 꼽는 이들이 많나 보다. 그래서 나도 다시 돌아간다면 배움에 대한 욕심을 더 많이 장착하고 성장하려고 노력해볼 것 같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1) 꾸준히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읽기 습관을 들이는 일
- 뉴스레터, 아티클 구독 서비스(퍼블리, 폴인, 롱블랙 등) 이 엄청 많이 나왔다. 오히려 읽을 게 많아서 정보의 홍수 느낌이기도 하지만 잘 분별해서 읽는 것이 꽤 중요하다.
- 다시 돌아간다면 양질의 읽기 자료들을 더 ‘꾸준히’ 보고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도 보고 있긴 한데 습관을 들인 지 이제 1년 정도밖에 안됐다. N년 동안 해왔다면 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2) 배움은 꼭 혼자 하지 않아도 된다. 스터디나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보기
- 사실 의지박약이 디폴트인 나는 스터디나 모임에 길게 참여해본 적이 없다. (사람 많이, 오래 만나는 게 힘들어가지고…)
- 하지만 마음맞는 팀을 만나고 꾸준히 하기까지의 우여곡절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함께’ 공부할 누군가를 찾아나설 것 같다. 요즘엔 페북 그룹이나 오픈채팅도 활발하던데 참 좋은 시대인 듯 :)
‘책’이 좋다는 건 사람들이 엄청 많이 말하는데 그게 왜 좋은건지 사실 맘에 와닿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직접 꾸준히 읽어보기로 결심하고 1년 째 습관화 중 (-ing) + 책 많이 읽는 주위 사람들 관찰 + 유튜브 후기 보기 등을 하면서 책읽기란 기획자가 가지면 참 좋은 습관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주니어가 된다면 무조건 책읽기부터 꾸준히 할 것 같다! 그 이유는,
1) 기획적 통찰력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 단 시간이 필요한.
- 사실 기획적 통찰력은 타고나는 사람들 (=원래 똑똑한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꾸준히 노력할 수밖엔 없다고 생각한다. 비단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얼마 전 롱블랙 아티클에서 ‘트렌드코리아’를 쓰신 김난도 교수님의 인터뷰를 보고 한번 더 확신을 가졌다.
“트렌드를 집어내는 데 필요한 건 능력보다 축적입니다. 통찰은 어느 순간에 툭 떨어지지 않아요”
- 주니어 때는 기획이라는 게 단순히 와이어 프레임을 그리거나, 화면 구성을 잡거나, 정책을 잡는 ‘how’의 과정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기획의 진짜 정수는 ‘why’를 밝히는 데서 나온다. 거기에서 설득이 가능하고 how에 대한 설정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왜’ 이 서비스를 해야 하는지, 서비스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것은 도메인 지식 + 업계 지식이 필요한데 이는 꾸준히 변화를 인지하고, 공부한 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 그리고 그 방법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게 책이 된다는 사실. (+ 양질의 아티클, 글 포함) 다양한 분야의 책을 통해 지식의 바탕을 쌓고, 그 위에 트렌드를 읽는 습관을 기르고, 이게 쌓이면 분명한 기획적 무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
2) 지식의 집약체
- 책이 가치를 갖는 이유 중 하나는, 전문가/교수/엄청난 지식인들이 연구한 지식을 모아놓은 집약체이기 때문이다. 만 얼마 정도 되는 금액에 그런 값진 지식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곳이 어디있을까 싶다.
- 그래서 전문 지식을 체계적으로 쌓기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요즘엔 유튜브나 기사나 여러가지가 참 많이 나와서 잘 활용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나는 영상으로 지식을 얻는 것보다는 활자가 더 편해서 책을 더 추천하는지도 모르겠다.
- 최근엔 블록체인이나, NFT, 메타버스.. 이런 깊이있는 이야기가 필요한 주제가 있으면 바로 서점에 가서 찾아보곤 한다. 사놓고 아직 다 못 읽은 게 함정..
3) 잘 쓴 글을 읽는다는 것
- PM이든 기획자든 주구장창 하는 게 커뮤니케이션이랑 문서 쓰기다. 근데 우리가 쓰게 되는 문서, 곧 기획서는 내가 보자고 쓰는 게 아니다.누군가를 설득하고, 왜 해야 하는지 알리기 위한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도구이기에 굳이 PPT같은 형식이 아니어도 되는 것이다. 내용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래서 아마존은 ppt를 쓰지 않고 6pager를 쓰는 거겠지)
- 결국 이는 논리적으로 흐름이 맞느냐, 그래서 메이커들에게 ‘이거 만들자’고 설득할 수 있느냐에 대한 것과도 연결되는데,
이걸 기르기 위해서는 ‘(1) 잘 쓴 기획서를 많이 보거나, (2) 잘 쓴 글을 많이 보거나, (3) 직접 많이 써보고 역량을 쌓거나’ 하는 방법이 최고인 것 같다.
- 이 중 (2) 잘 쓴 글에 책이 포함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잘 쓴 글은 단순히 문장의 유려함같은 차원이 아니라 순서와 구조, 전체적인 맥락이 하나로 이어지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너무너무 많아서 쉽게 접할 수 있다.
- 하지만 무엇보다도 글을 읽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고하는 힘까지 기를 수 있게 된다는 데에 있다. 비판적으로든, 공감하든, 상상하든…
구구절절 적었지만 ‘나라서’ 이렇게나 많이 적은 것 같기도 해서 민망한 마음이 든다 ^^;; 돌이켜 보면 PM이 되는 길은 참 바쁘지만 나름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고 즐겁기도 했던 것 같다. 그나저나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인 요즘 예비 PM, 예비 기획자들은 활동도 많이 하고, 다들 스스로 척척 잘 하고, 먼저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다양한 배움과 준비를 많이 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내가 존경스러울 때가 참 많다. 그래도 열심히 준비한 시간은 배신하는 법이 없더라. 요 말 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