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던 소설이 거장 감독을 만났을 때
<인히어런트 바이스>에 대해서는 술을 잔뜩 마시면서 장황하게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원작인 소설과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연출한 영화 모두 그렇다. 아마 작품을 보고 나서 느낀 큰 감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 같다.
소설의 원작자 토마스 핀천은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로 큰 인기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복잡하고 난해한 작품 특성으로 인해 할리우드에선 영화화된 적이 없다. 이러한 이유로 유명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이 소설 [인히어런트 바이스]를 연출한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다. 특히 책으로도 읽기 힘든 난해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을 현대 영화화하는 감독의 전략에 많은 사람이 궁금증을 가졌을 것이다.
영화 <인히어런트 바이스>를 본 관객들은 대부분 “약에 취한 기분이다”라는 감상평을 남긴다. 나 역시 소설을 읽기 전에 영화를 먼저 보면서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몽롱한 느낌을 느꼈다. 다만 그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소설 [인히어런트 바이스]를 영화화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평소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 적극적으로 이 작품에 대한 감독의 코멘트를 찾아보았다. 감독의 여러 인터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인터뷰어가 '70년대의 미국을 다루는 소설을 지금 이 시기에 영화화 하는 것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그 질문은 소설의 작가에게 해야 하며 자신은 단지 소설을 읽었을 때의 리액션을 영화화한 것
포스트 모더니즘 소설의 현대 영화화 전략이라는 거창한 것을 생각할 것도 없이 자신은 단지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난해함을 그대로 표현했다는 명쾌한 답변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감독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이 난해하고 몽롱하다고 반응했으니까. 흔히 말하는 '약 빤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를 만들게 한 원작 소설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어떤 책일까.
책은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성격을 갖고 있다. 다만 주인공이 조금 특이하다. 주인공인 닥은 여느 소설의 주인공 탐정들처럼 돈에 연연하지 않고 충실하게 지키는 자신만의 소신이 있는 것은 똑같지만 약에 절어 사는 히피라는 점이 다르다. 히피 문화가 중심이 되는 70년대를 배경으로 약쟁이 히피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니 사건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재미는 분명하다.
간략하게 줄거리를 얘기하자면 주인공인 닥에게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자신의 여자친구 샤스타가 다시 나타나 도움을 요청한다. 샤스타는 자신에게 새로 사귄 재벌 남자친구가 있는데, 남자친구의 부인과 친구가 샤스타를 이용하여 남자친구를 정신병원에 집어넣으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하며, 이 계획을 막아줄 것을 부탁한다. 이후 샤스타는 다시 행방불명이 되며 닥은 샤스타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수사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딕은 자신이 맡은 다른 여러 의뢰와 샤스타의 의뢰가 하나의 사건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건을 해결하며 알게 되는 거대한 진실은 샤스타의 남자친구인 재벌은 정부와 연계된 거대 마약 카르텔에 연관되어 있는 사람이었으며, 도시 전체가 이미 마약을 매개로 끊임없는 권력자에 의한 착취를 낳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결국 소설 제목 인히어런트 바이스의 뜻인 '고유의 하자'는 이러한 도시 자체의 하자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다소 일반적인 내용의 추리소설을 마약에 취한 듯한 느낌이 들게끔 하는 요소는 소설의 형식에 있다. 토마스 핀천의 소설은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굉장히 다양한 소재를 다룬다는 점에서 총체적 글쓰기의 특징을 띈다.
소설에서 다루는 소재는 사회, 문화, 정치, 경제, 천문학 등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 걸쳐져 있으며 이러한 특징은 소설의 깊이와 사실성을 더하는 동시에 소설의 복잡성을 강화한다. 구체적으로 [인히어런트 바이스]에서는 60,70년대 히피 문화에 대한 배경을 바탕으로 네오 나치 및 극단주의자 조직의 등장, 경찰의 부패, 여성의 성적 착취 문제, 다국적기업과 제국주의, 캘리포니아의 문화적 배경, 천문학과 연관되는 신비주의, 국가를 표적 삼는 음모론등 광범위한 소재들을 다루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러한 광범위한 소재들은 허구적인 사건과 결합하여 포스트모더니즘적 소설의 특징을 띄게 된다. 토마스 핀천의 소설은 사실성에 기반한 다양한 소재들이 허구적 역사와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모호함에 그 특징이 있다. 소설 속 등장하는 닥을 중심으로 한 샤스타의 실종과 골든팽과 연관된 마약 카르텔 사건의 존재는 모두 작가에 의해 구성된 허구이다.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작가에 의해 구성된 허구적 역사를 문학외적인 사실들과 결합하여 ‘사실적 내러티브’도 아니고 ‘논픽션 소설’도 아닌 진실과 환상을 동시에 갖는 내러티브로 존재한다.
또한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는 수많은 문화역사적 사실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배경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역사적 재현에 목적을 두지 않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이 소설이 역사적 진실의 의미 혹은 역사적 진실의 재현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작가는 정확한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함으로서 역사적 담론을 재구성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으며, 이러한 재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성격이 독자에게는 유독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요소로 작용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렇게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내러티브가 일관성 있게 배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설에서 다루는 수많은 소재와 사건들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순차적인 과정 혹은 설명적인 형태를 띠지 않고 무차별하게 등장한다. 토마스 핀천의 소설은 이렇게 중심이 없는 서사를 특징으로 한다. 질서와 혼돈으로 가득한 불합리한 세계를 제시하고 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내러티브가 구성되어 있지 않는 것이다.
이는 토마스 핀천이 기존 소설 문법이 갖는 체계성을 전복하고자 하는 특성과도 연결되어 설명할 수 있다. 토마스 핀천은 의도적으로 수없이 얽혀 있는 다양한 소재와 사건들을 체계성이 없는 형태로 제시하며 언어적 형식의 다양성을 보여주려고 했다.
이렇게 독자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고 비체계적으로 정보를 배열하는 토마스 핀천의 글쓰기 방식은 [인히어런트 바이스]에서 특히 인물과 사건을 재조합하는데 어려움을 준다. 소설 속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기 맡은 상징성과 내러티브적 역할이 분명하지만 독자들의 머릿속에 쉽게 기억되지 않는다. 이유는 앞서 얘기했듯 비체계적으로 인물들이 제시되는 것도 있으며,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직접 등장하기 전에 제3자에 의해 언급되어 이야기에 편입되는 경우가 많아 실제 누구를 지칭하는지 헷갈리게 만든다.
소설은 읽는 내내 불친절하게 쏟아지는 정보와 뒤섞이는 사건의 전개 양상 때문에 쉽게 페이지를 넘길 수 없지만, 확실한건 이해를 못하고 있음에도 읽는 순간의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토마스 핀천은 독자가 소설의 내용을 충실히 따라오지 못하더라도 읽는 재미가 있게끔 만드는 특별한 힘이 있다.
그리고 영화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그러한 소설의 성격을 그대로 가져오기 위해 특별히 노력했다고 생각이 든다. 영화라는 매체로 소설의 내용이 옮겨져 오면서 감독이 특히 고민했던 부분들은 소설을 읽을 때의 감각이다. 전체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혹은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이 있다. 불편하거나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러한 기분 자체에 집중해봐야 한다. 그렇다면 <인히어런트 바이스>가 주는 낯선 경험의 즐거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