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의 이상형, 현실의 남편
오늘 아침, 꿈속에서 다른 남자와 키스할 뻔했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평화로운 주말 아침인 줄 알았다. 꿈을 자주 꾸는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꿈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무려 로맨스물이었다. 꿈인 걸 알면서도 현실에서는 절대 겪을 수 없는 판타지를 넘나들며 몰입하고 있었다. 마침 이상형을 쏙 빼닮은 그와 결정적인 장면을 맞이하려던 찰나였다.
느닷없이 몸이 흔들렸다.
“여보 일어나, 벌써 8시야. 알람 끄고 더 자면 어떡해.”
아, 정말 중요한 장면이었는데. 깊게 몰입해 있던 로맨스가 가차 없이 끊겨버렸다. 어떻게든 꿈을 이어가 보려 안간힘을 다해 눈을 감아보았다. 하지만 이마에 '쪽', 입술에 '쪽'.
'여보, 지금 하지 마. 나 지금 다른 남자랑 쪽 하려던 참이란 말이야!'
속으로 외쳐보지만 선명했던 이상형의 얼굴은 이미 흐릿해지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을 붙잡으려 애써봐도 결국 얼굴 없는 남자만 남았다. 기분을 잡친 나는 에라 모르겠다 싶어 씻고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주말 출근은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으로 만든다. 싸 온 도시락을 먹고 동료와 스몰토크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가장 기다려온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터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횡단보도 앞에서 좌회전 신호에 막히는 바람에 눈앞에서 버스를 놓쳤다. 잠깐의 타이밍이 이렇게 야속할 수가 없다.
결국 앱을 켜서 택시를 잡아탔다. 몸은 편해졌지만 지갑은 불편해진 퇴근길이었다. 집에 돌아와 쉬다 보니, 문득 꿈속의 남자 얼굴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저녁 식사 후,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 차례는 둘째 아이였다. 양이 너무 많아 보여 내가 거품 칠한 그릇을 헹궈주기로 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설거지를 하던 그때, 갑자기 발밑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여보!!! 여보, 물 새!!!”
넘실대는 물이 순식간에 바닥을 적셨다. 허둥지둥 수건을 챙겨 와 바닥을 닦아냈지만, 호스가 빠진 싱크대는 내 사정 따위 알 바 아니라는 듯 계속해서 물을 뱉어냈다.
알고 보니 호스의 접착력이 수명을 다한 상태에서 배수가 서툰 아이가 물을 한꺼번에 쏟아붓는 바람에 터져버린 모양이었다. 남편이 다급히 달려와 호스 수리에 매달렸고, 나와 둘째는 마루 안쪽으로 물이 스며들까 봐 닦고 또 닦았다.
한바탕 전쟁 끝에 뒤처리가 끝났다. 호스는 다시 단단히 고정되었고 물은 더 이상 새지 않았다. 젖은 수건들을 세탁기에 돌리고 침대에 눕고 나니, 새삼 남편의 존재 이유를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
어느덧 꿈속의 남자는 까맣게 잊혔다. 현실의 남편이 곁에 없었다면, 나는 아마 아까 같은 상황에서 멘붕이 와 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남편은 꿈에도 모르겠지만, 그는 오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 냈다.
고마운 마음에 이마에 쪽, 입술에 쪽. 이유는 묻지 마.
그나저나, 나는 원래 주말엔 알람을 맞춰두지 않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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