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윤새 6

by 강소하

명원이 조심스럽게 윤새의 어깨를 토닥였다. 나가 있자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따뜻해 윤새는 저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힘을 주어 일어나자마자 다리가 끈 떨어진 인형처럼 너풀거렸다. 그러자 착한 명원은 괜찮다고 다독이며 윤새의 겨드랑이 밑에 팔을 집어넣어 그의 몸뚱이를– 올바른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조심스럽게 질질 끌고 나왔다. 등을 벽에 기대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윤새는 걱정스럽게 내려다보는 우진을 보고 자신의 모양새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깨달았다.

“어떡하지.”

우진이 중얼거렸다. 명원이 담담히 대답했다.

“아저씨가 알아서 하시겠지.”

윤새는 배에 힘을 주고 늘어진 상체를 똑바로 세웠다. 힘이 풀린 다리를 주욱 펴고 앉아 멍하니 닫힌 방문을 쳐다보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곧바로 찾아오는 이질적인 기분에 저절로 눈썹이 꿈틀거렸다. 안경원에 아저씨가 하나 더 계셨던가. 설마 진운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다, 윤새는 누나면서 진운이 아저씨일 리는 없었다. 우진은 더더욱 아저씨가 아니니 그 알아서 하신다는 아저씨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무엇보다 근심스러워 보이기는 하지만 경식의 죽음을 목격하고도 담담한 우진과 명원의 태도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윤새 들어와라.”

자다 일어난 것 같은 목소리가 방 안에서 들려왔다. 조금 잠겨 있지만 아주 익숙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환청이 분명하다. 윤새는 머리를 흔들어 환청을 털어내었다.

“윤새, 들어와라.”

똑같은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알아듣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건지 이번에는 단어를 끊어 말했다. 하지만 윤새는 한 글자도 빠짐없이 모두 알아들었다. 그럼에도 발바닥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부르는 목소리가 틀림없이 경식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식은 방금 윤새의 눈앞에서 죽지 않았는가.

아니, 처음부터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경식이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의 죽음은 윤새의 주제 넘은 착각에 불과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경식은 보기보다 훨씬 덜 깊은 상처를 입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경우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싹둑 자르듯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다시 쓰러지기 전에 얼른.”

생각이 뚝 끊겼다. 윤새는 허겁지겁 방문을 열어젖혔다. 경식은 마지막으로 보았던 모습 그대로 누워 있었다. 윤새가 끌려나가고 나서도 탄환을 제거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는지 방 안은 피바다였다. 윤새는 그를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으면서도 차마 경식을 내려다볼 자신이 없어 치켜뜬 눈으로 방을 한 바퀴 훑었다. 영원은 피곤한 얼굴로 양반다리를 한 채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옆에 서 있는 진운이 품 속에서 깨끗한 헝겊을 꺼내 영원에게 내밀었다. 그는 고개를 한 번 꾸벅이고 볼에 튄 피를 문질러 닦았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윤새에게 그 목소리가 무엇이었는지 친절히 가르쳐 줄 사람은 없는 듯했다. 윤새는 결국 시선을 내려 밑을 쳐다보았다.

경식이 핏자국 한가운데 널브러져 있었다. 그 모습이 꼭 피바다 한가운데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반쯤 뜨인 그의 눈이 두려워 윤새는 작게 숨을 들이켰다. 왜 다 감은 눈보다 반쯤 뜨인 눈이 더 죽은 것처럼 보일까. 그때 경식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작게 한숨까지 쉬었다. 윤새는 경식의 피가 묻은 소매로 눈을 문질렀다.

“죽다 살아났다, 이놈아.”

경식이 갈라져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윤새는 크게 뒷걸음을 쳤다.

“어떻게…… 살았지…….”

“그게 할 소리냐.”

윤새는 경식의 코 밑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숨을 참았다. 경식의 헛웃음이 새어나와 손가락을 간질였다. 경식이 감았던 눈을 다시 뜨고 힘없이 중얼거렸다.

“아까 네가 지혈할 때 말이다.”

“맞아, 지혈. 계속 지혈을 해야…….”

윤새는 다급히 이불을 걷어 경식의 옆구리를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확인했다. 상처가 사라졌다. 어디를 다쳤는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던 총상은 어느새 사라지고 매끄러운 새살이 자리잡고 있었다. 흉조차 없었다.

“너를 어찌해야 하나 계속 고민했거든. 그런데 네가 그 끈을 질끈 매는데, 이야아……. 딱 죽을 만큼 아픈 게.”

경식의 말이 점점 늘어졌다.

“이제 되었구나, 싶었다.”

경식은 영원히 그 한 숨으로 살아갈 것처럼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이내 낮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윤새는 멍한 얼굴로 어느새 뒤에 다가온 명원을 올려다보았다. 명원은 눈치를 살피듯 진운과 영원을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명원과 눈이 마주친 우진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不滅.”

명원이 글자마다 힘을 주어 말했다.

“경식 아저씨는 계속해서 살아나요.”

윤새가 아무 말도 없자 명원은 서둘러 덧붙였다.

“탄환부터 제거하려고 한 건 숨이 끊어지면 상처가 바로 아물어서예요. 저번에 탄환이 든 채로 상처가 닫혔을 때 아무리 해도 뺄 수가 없어서 다시…….”

명원은 얼굴을 구기며 고개를 저었다.

“으으, 생각도 하기 싫어요. 아무튼 그 다음부터는 최대한 신속하게 안에 남아있는 것부터 빼요.”

우진이 윤새가 걷어 놓은 이불을 다시 경식의 가슴까지 덮이도록 끌어올렸다. 방 안에는 경식의 코골이만이 잔잔하게 울려퍼졌다.

“누나, 많이 놀라셨죠. 외부인에게는 능력을 절대로 발설하지 않는 게 원칙이거든요. 그래서 섣불리 알려드릴 수가 없었어요. 아, 그렇다고 누나가 이제 알았으니까 월성회라는 건 아니고…….”

우진이 눈동자를 굴리며 말을 골랐다. 명원이 답답했는지 윤새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별 거 없어요. 경식 아저씨가 믿으니까 우리도 언니를 믿는 거예요. 아무나 믿으시는 분은 아니거든요.”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자 진운이 윤새를 쳐다보고 있었다. 정통으로 눈이 마주친 그는 어울리지 않게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다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너무 낯간지럽나……. 하지만 우리 일에는 믿음이 제일 중요해요.”

명원이 웃으며 물어보았다. 윤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성천을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 그도 지금의 명원과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믿음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던 것 같다.

“우리 잠시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쐐요.”

윤새는 명원이 이끄는 대로 비틀거리며 안경원 바깥으로 나왔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사이에도 제 몫을 한 별들이 하늘을 하얗게 수놓고 있었다. 명원은 조금 걷다가 가장 가까운 골목에 윤새를 밀어넣고 본인도 벽에 기대어 섰다.

“저는 큰일 치르고 나면 이렇게 조용한 곳에 서 있어야 마음이 정리되더라고요.”

“고마워, 너도 정신 없었을 텐데.”

명원은 별 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조금 슬픈 얼굴로 이야기했다.

“보기 힘든 건 맞아요. 죽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다쳐오실 때마다 오히려 마음이 더 아프고 안 좋아요.”

둘 사이에 잠시 정적이 오갔다. 윤새는 여러 번 곱씹다 입을 열었다.

“아저씨랑은 어떻게 만났어? 나는 굶고 다닐 때 밥 한 끼 얻어먹었어.”

명원은 발끝으로 흙을 파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고아가 되었을 때 밥 여러 끼 얻어먹었어요.”

“아…….”

“꽤 지나서 이제 괜찮아요. 꺼내기 힘든 이야기였으면 언니한테 이렇게 말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난 언니가 참 좋거든요.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어요. 말 걸고 싶고, 속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사람들이 있잖아요. 다사다난했지만 경식 아저씨가 언니를 믿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명원이 발 딛고 선 곳에 작은 구덩이가 파였다. 윤새는 자신이 대답을 해야 대화가 계속 흘러가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의 온정에 섣불리 화답할 수 없었다. 가만히 서서 명원의 친절을 받아들이며 시간을 흘려보낼 뿐이었다. 명원은 자신이 파 놓은 구멍을 발로 다시 살살 덮었다. 하늘은 완전히 까맣게 물들어 이제 둘을 비추는 것은 달과 별들뿐이었다.

“경식 아저씨가 믿으니까.”

명원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 주먹을 쥐어 손등이 보이도록 윤새에게 내밀었다. 주먹 쥔 손가락 틈 사이사이로 미약한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태양보다 어둡지만 달빛보다는 조금 밝은 그 빛은 삐죽거리며 주인의 손가락을 비집고 나왔다. 빛줄기는 끝까지 뻗어나가지 못하고 명원의 주먹 근처에서 둥그런 모양으로 머물렀다. 이윽고 명원이 주먹을 펴고 손을 뒤집었다. 그의 손바닥 위로 동그란 빛 덩어리가 생겨났다. 빛은 오로지 둘만을 비추며 손바닥 위에 달처럼 가만히 떠 있었다. 윤새는 빛에 비추어져 일렁이는 명원의 얼굴을 보았다. 명원의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윤새와 눈이 마주친 그의 왼쪽 뺨에 보조개가 패였다. 그는 빛 덩어리를 윤새에게 내밀며 조용히 속삭였다.

“혼월混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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