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기억은 산이다. 초록으로 뒤섞인 그날은 떠올리기만 하면 늘 다리가 저려왔다. 윤새는 커다란 신갈나무 밑에 엉덩방아를 찧고 나동그라져 있었다. 허겁지겁 일어나다가 두꺼운 나무 뿌리에 무릎을 잘못 박아 쥐까지 난 참이었다. 누군가 손을 내밀었다. 윤새는 급히 뻣뻣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뻗었지만 그 손은 맞잡는 대신 윤새의 어깨를 밀쳐내었다.
윤새는 다시 일어나려 할 때마다 다시 밀쳐지고 나동그라졌다.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악착같이 스무 번을 다시 일어나자 조롱하던 웃음소리는 잦아들고 경멸 어린 시선만이 남았다. 그러나 윤새는 주저앉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저항이나 오기가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한 발악이었다. 사람은 홀로 남으면 죽는다. 이건 자신보다 약하고 어린 존재에게 몹쓸짓을 일삼는 고아들의 무리라도 억지로 끼어서 살아남고자 하는 발악이었다.
그런 윤새를 끝내 땅바닥에 때려눕힌 것은 밀치는 손길이 아닌 칼날 같은 말 한마디였다.
“야, 너희들 잠시만 멈춰라.”
누군가 말했다. 윤새는 급히 저리지 않은 무릎을 세워 반쯤 일어났다. 망가진 오뚝이처럼 몸이 앞뒤로 흔들렸다.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너 눈을 감으면 앞날이 보인다며.”
윤새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 웃는 걸까. 무엇을 잘못한 걸까. 윤새는 얼굴에 달라붙은 낙엽을 손등으로 문질러 떼어냈다.
“그러면 너는 장님이네.”
그 담담한 경멸은 죽을 때까지 윤새를 쫓아올 것 같았다. 얼어붙은 윤새의 이마를 누군가 손가락으로 툭 밀었다. 딱딱한 나무 뿌리 위에 세게 엉덩방아를 찧은 윤새는 이번에는 다시 일어나지도 않고 조용했다. 반응이 없어지자 싫증이 났는지 그를 내려다보던 아이들이 소곤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모두가 떠나갔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는데도 윤새는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가 사라진 고요한 세상. 미워할 이조차 곁에 남지 않은 산속.
윤새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떴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윤새는 그제야 세상이 캄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