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는 마우스를 따다닥 세 번 눌러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2000년생이라면 모두 안다. 쥬니어 네이버. 옹기종기 친구들이랑 모여 앉아 슈게임도 하고 동물농장도 하고 미리게임도 하고....... 이중에서 익숙한 게임이 하나라도 있으면 당신은 나의 또래다.
어렸을 때 나는 외가에 가는 걸 정말 좋아했다. 기본적으로 컨텐츠가 많았다. 외할머니 댁에는 내가 좋아하는 강아지가 있었다. 아주 시골인 외할머니 댁에서 차를 타고 20분 정도 달리면 이모댁이었다. 이모댁의 건물 1층은 식당이었고 맨위층에는 이모네 집이 있었다. 그러니 천국 아니겠는가! 1층에는 각종 고기, 국, 운 좋으면 야식으로 먹는 치킨이 있고 식당을 나와 계단을 뛰어올라가면 큰 텔레비전과 컴퓨터가 있는 집으로 들어갈 수 있다. 게다가 외가에서 꼬맹이는 나와 언니밖에 없었기 때문에 기회만 잡는다면 컴퓨터는 우리의 것이었다.
사촌 언니와 오빠가 고등학생 때까지는 컴퓨터로 이리저리 무언가를 하고 있어서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지금 떠오르는 건 컴퓨터로 문자를 보내던 건데, 그건 아직도 뭔지 모르겠다. 다음에 오빠를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사촌 언니는 컴퓨터보다는 휴대폰을 더 많이 했다. 초등학생 때 언니의 휴대폰에서 린의 '시간을 거슬러'를 듣고 홀딱 반했던 게 기억난다. 휴대폰도 없고 인터넷으로 음악 트는 법도 잘 몰라서 언니에게 다시 틀어달라고 졸랐지만 안 틀어줬었던 것도. 최근에 언니랑 전화하면서 그 이야기를 꺼냈다가 욕 먹었다. (언니랑은 아직도 아주 친하게 지내고 있다. 쓰면서도 보고 싶다.)
아무튼 결론은, 명절의 이모댁 컴퓨터는 친언니와 나의 차지였다는 것이다. 나에게 데스크탑 컴퓨터 다루는 방법을 알려주신 건 분명히 이모다. 나를 앉혀놓고 마우스를 잡고 인터넷 로고에 커서를 가져다 댄 다음,
"자, 따다닥. 따다닥. 알겠지. 세 번 눌러야 한다. 따다닥."
아주 쉬웠다. 사람은 자신의 세상을 넓혀준 사람을 절대 잊지 못한다던데, 인터넷도 세상이긴 세상이니까....... 어쨌든 나는 처음 내 손가락으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시동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언니랑은 주로 슈게임을 했다. 2인용 게임은 아니었으나 대부분 머리가 잘 돌아가는 언니가 마우스를 잡았고 나는 보조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슈의 비밀의 화원>을 하면 언니가 빠르게 손가락을 놀려 씨앗을 심고 물을 주면, 나는 옆에서 "벌레 나온다!" "시간 얼마 안 남았다!" "저거 덜 자랐다!" 같은 코멘트를 남기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내가 언니보다 컴퓨터 실력도, 손 놀리는 실력도 출중하다. 그래도 내 옆에서 입술을 꾹 물고 딸각딸각거리던 언니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 참 좋았다.
한번은 슈게임을 하다 귀신이 나오는 에피소드를 보게 된 적이 있다. 어린이용 게임이었으니 그 귀신도 착한 귀신이었고, 그다지 무섭게 생긴 귀신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게 그렇게 무서웠다. 그런데 그렇게 어렸을 때도 공포의 스릴을 즐겼는지 언니가 있을 때만 골라서 그걸 몇 번이고 돌려봤다. 안 보면 될 것을....... 그리고 난 그 기질 그대로 자라서 스릴러 영화나 범죄추리물 영화를 매우 좋아한다.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이모댁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구조와 가구는 아예 변하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컴퓨터 책상도 그대로다. 중학생 때 문제집을 풀기 위해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았던 적이 있는데, 혼자 앉으니 꽉 차는 크기였다. 그때 내가 크기는 컸구나 했다. 예전에는 언니랑 둘이 나란히 앉아도 자리가 남았으니까.
나는 초등학생 두 명을 가르치는 과외를 한다. 한 친구는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한 친구는 곧 중학교에 들어간다. 두 친구 모두 기특하고 소중한 내 학생들이다. 가끔 그 친구들이 지쳐 보이면 스몰토크를 하며 게임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설치조차 해 본 적 없는 게임들 이름이 나올 때마다 시간이 휙휙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쌤 로블록스 해요?"
아니.
"클래시 오브 클랜은요?"
아니.
"Sfsdfsajf는요?"
뭔데 그게........
그나마 공감대 형성이 가능한 게임이 마인크래프트다. 그건 유구하게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더라.
음....... 이렇게 길게 적고 보니 소위 말하는 '뻘소리'처럼 보인다. 앞으로 내가 이 브런치북에 쓸 것들은 이런 조각조각의 기억들이다. 길 걷다가 갑자기 떠오르고, 친구들이랑 옛날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솟구치고, 자기 전에 갑자기 피식 하면서 새어나오는 그런 어린 시절의 기억들.
하지만 이런 사소한 기억들이 쌓이고 쌓여 나라는 사람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날 앉혀놓고 옆에서 따다닥을 알려주신 이모와 딱히 도움 되지 않는 동생의 조잘거림을 들어준 언니와 그 속에서 마냥 신나서 쥬니어 네이버를 한 나. 사람을 이루는 건 굳건한 기둥이 아니라 잘게 쌓인 모래 아닐까?
오늘 밤은 슈의 라면게임을 하고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