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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소한 Oct 18. 2020

빈티지 패피들의 성지를 가보았다

합리적인 가격이 만족스러운 광장시장 수입 구제 상가 답사기

대학생 시절, 종로구에 위치한 광장시장이라는 곳에서 구제 의류를 싸게 구할 수 있다는 말에 구경을 갔었다. 지금은 위치도 기억나지 않는 시장 어딘가에 엄청나게 많은 옷들이 행거에 걸려있었고, 그중 마음에 들었던 브랜드 청자켓을 데려와 2~3년 정도 잘 입었던 기억이 있다.


흐릿하게만 남아있던 그 광장시장의 추억이 최근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고 되살아났다. 구제의류 상점에서 득템 한 빈티지 자켓으로 느낌 있게 코디를 한 누군가의 모습이었다. 한 장의 사진에 영감을 받아 수년 만에 광장시장을 다시 찾아가기로 결심했고, 업무에 지쳐있던 어느 날 오후 반차를 내고 1호선 종로5가역으로 향했다.


광장시장 입구. 여느 시장의 입구와 다를 바 없다
수입 구제 상가 입구. 2층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돈이 부족했던 어린 시절에 광장시장 구제 상가를 즐겨 찾았다던 지인과 동행해 시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걷다 보니 천장에 '수입 구제'라고 쓰여있는 팻말이 반갑게 눈에 띄었고, 바로 그쪽에 구제 상가 입구가 마련되어 있었다. 시장 한복판에 있어서 정확한 위치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도에 '수입 구제 상가'로 검색해 찾아갈 수 있다.


계단을 올라 2층에 다다르면 정말 많은 구제 옷들이 빼곡하게 걸려있는데, 작은 상점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정말 옷에 파묻혀 있는 느낌의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어두컴컴한 지하상가 느낌이지만 상점마다 조명이 있었는지 옷을 구경하기에는 불편함이 없었다. 상점은 고유의 번호(호수)와 이름을 가지고 있어, 내 느낌과 맞는 옷을 파는 상점이 있다면 나중을 위해 기억해 두어도 좋겠다.


온라인에서 참 찾기 힘들었던 빈티지 셔츠들, 여기 다 있네


재빠르게 매의 눈을 On 하고 걸려있는 옷들 중 느낌이 오는 옷을 하나둘씩 선택한다. 입어보고 싶은 옷이 많은 경우 상점 안쪽으로 들어가 주인 분께 부탁해 요리조리 피팅도 해본다. 내가 생각하는 광장시장의 최고 장점은 합리적인 가격에 멋스러운 빈티지 의류를 구할 수 있다는 점인데, 셔츠 만원대, 머플러 2만 원대, 자켓도 2~3만 원 대에서 구매가 가능했다. 물론 상태가 최상급인 명품 브랜드 셔츠는 10만 원 선에 판매되고 있으니 상태와 브랜드를 고려하여 각자의 주머니 사정에 맞게 쇼핑하면 되겠다.


2층과 3층의 분위기가 매우 다른 것도 흥미로운 점이었다. 2층의 경우 사장님도 20대~30대로 젊고, 트렌드에 맞는 의류를 보기 편하게 진열하고 있었다면 3층은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 사장님이 많이 계셔서 놀랐다. 행거에 걸어두기보다는 옷을 개켜서 쌓아두고 계셨고 가격도 2층에 비해 저렴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던 상점에서 허락받고 찰칵-


2시간 동안 열심히 돌아다니다 그날의 목적이었던 머플러를 구입했고, 고가의 버버리 셔츠는 고민하는 사이 사장님께서 퇴근하셔서 결국 구하지 못했다. 광장시장 역시 코로나 직격탄을 맞아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는지, 일부 사장님은 아예 자리를 비우거나 매장 문을 빠르게 닫으시는 듯했다. 재고가 1개뿐이라는 빈티지 특성이 있으니 빠르게 구매를 결정짓는 능력과 함께, 환불이 불가하므로 신중한 태도도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


내가 예전에 방문한 광장시장이 맞았을까 싶을 정도로 오랜만에 방문한 이 곳 풍경은 매우 생경했다. 사장님들이 불친절해서 부정적인 구매 경험을 하지 않을까 했던 걱정은 쏙 들어갈 정도로 대부분의 사장님들이 매우 친절하셨고, 구매를 강요한다거나 부담스럽게 따라와서 바라본다거나 하는 등의 응대가 없어 정말 편했다. 일부 사장님들은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려 온라인으로 판매도 하고 계시니 사전 답사 후 방문하는 것도 좋겠다.


힘들게 쇼핑하고 먹는 광장시장 대표 메뉴들은 정말이지 최고입니다.


너무 오랜만에 방문하기도 했고 함께한 일행도 있었기에 내 멋대로 충분하게 쇼핑을 하지는 못했지만 다음번에 방문한다면 기억이 좋았던 매장에서 꼼꼼하게 피팅도 해보고, 더 깊숙이 샅샅이 뒤져서 보물 같은 아이들을 데려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3층 매장도 충분하게 돌아보고 말이다. 


오래전에 만들어져서 라벨은 낡고, 먼지도 묻어있는 빈티지 의류이지만 지금 공장에서 생산되는 요즘 새 옷들과 다르게 확실한 그 옷만의 무드가 있는 것이 구제의류의 멋과 매력이 아닐까 싶다. 한 장 한 장의 존재감이 뚜렷한 빈티지한 옷들을 좋은 가격에 구할 수 있고 과거의 추억을 되살리면서 현재의 추억까지 만들 수 있는 광장시장이 코로나의 벽을 딛고 오래오래 방문할 수 있는 곳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글을 쓰고, 생각을 담는 글쓰기 모임

'쓰담'과 함께하는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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