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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May 31. 2024

마당의 필요

커뮤니티 시설이 부럽지 않은 이유

요즘 신축 대단지 아파트의 커뮤니티 시설은 그 규모와 다채로움에 놀라울 지경이다. 놀이터와 노인정이라는 기본 옵션이 전부였던 시절의 아파트에서 유년기를 보냈던 나는 피트니스센터나 골프연습장만 해도 고급 아파트에나 있는 시설이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이제는 수영장, 워터파크, 실내체육관, 캠핑장, 게스트하우스 등 예전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설들이 아파트 단지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 아닌가? 한 편으로는 부러운 마음도 들지만, 나의 취향은 아니다.




코로나로 온 세상이 문을 걸어 잠그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다 지난 일인 것 같지만, 불과 2년 전까지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살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보고되었다는 뉴스가 처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그때, 우리 가족은 미국에 있었다. 주재원 4년 차. 이제는 충분히 익숙해진 미국 생활이 다시 "팬데믹"이라는 이름의 낯선 시간으로 채워지려 하고 있었다.


어디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은 빨리도 퍼졌다. 제일 먼저 아이들 학교가 문을 닫았고, 이내 재택 수업으로 전환되었다.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현지 스태프들과 주재원 모두 재택근무를 하기 시작했다. 코로나에 걸려 몸이 힘들어지는 것보다, 내가 확진자가 되면 회사에 민폐가 되는 것 아닐까? 우리 아이들 학교는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이 앞서던 시절이었다. 특히, 이곳 미국에서, 이방인인 우리 가족 중 누구도 확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짓눌렀다.


그렇게 네 식구가 아침에 눈 뜨면서 밤에 잠들기까지 하루 종일 함께 지냈다. 이제껏 우리 네 식구는 늘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했지만, 24시간 내내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하루하루는 익숙지 않은 경험이었다. 매 끼니 4인분의 식사를 준비해야 했고, 아이들은 TV와 컴퓨터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재택근무와 원격 수업이 가져다주는 여유로움과 약간의 해방감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온전한 휴식의 공간이었던 집이 창살 없는 감옥으로 변해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아이들을 마당으로 불러냈다. 분필을 들고 나와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며 땅따먹기 판을 그렸다. 완성된 땅따먹기 판을 두고 어떻게 하는 거냐며 호기심을 보이는 아이들 앞에서 와이프가 먼저 시범을 보였다. 까마득한 초등학교 시절에 하던 놀이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능숙하게 발을 바꿔가며 땅따먹기 판을 누비는 엄마 모습이 신기했는지, 아이들도 이내 신이 나서 달려들었다. 그 해 여름 우리 가족이 마당에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감옥 같았던 집은 놀이터로 바뀌었다.


코로나로 온 세상이 문을 걸어잠근 그 때, 우리 가족은 집에서 놀았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우리 가족이 가장 그리워한 것은 다름 아닌 “마당”이었다. 우리 부부가 3년 터울인 아이들이 졸업할 날을 손꼽아 기다린 것은, 번화가에 인접한 도심지에서 벗어나 작은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올해 2월 아이들의 졸업식보다 더 축하하고 싶었던 우리 가족의 이삿날, 하루종일 눈이 펑펑 내려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이사였지만 우리 부부는 작은 마당을 얻은 기쁨으로 들떴다.



비가 오면 커피 한 잔을 내려서 빗소리를 듣고, 땅바닥에 튀는 빗방울을 구경한다. 날이 좋을 때면, 우리집 강아지 하루는 마당 한켠의 화단에 볼일을 보고 햇빛을 받으며 낮잠을 잔다. 간혹 동네 고양이가 지나다 들러, 새들 마시라고 받아놓은 물에 세수를 하고, 한참 동안 뒹굴거리다 가기도 한다. 고급스러운 커뮤니티 시설이 없어도, 지루할 틈이 없는 일상을 산다. 그래서, 마당은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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