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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Oct 11. 2021

20세기 군대의 기억

드라마 D.P.를 보다가 나의 군 생활을 떠올렸다

나는 12월 군번이었다.


1997년 12월 9일.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의정부 306 보충대의 풍경은 추운 날씨만큼이나 삭막했다. IMF로 너나 할 것 없이 힘들었던 그때, 아버지의 사업도 위기를 맞아 흔들렸고, 그런 시기에 가족들을 뒤로하고 입대해야 했던 나는 걱정과 두려움으로 복잡한 심경을 들킬까 싶어 애써 태연한 척했다. 내가 입소하는 모습을 담담하게 지켜보시던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펑펑 우셨다고 한다.


보충대와 신병교육대에서 보낸 시간은 마치 유아기의 기억과도 같이 단편적이지만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입소 첫날 저녁, 처음 먹어본 군대 짬밥이 의외로 입맛에 맞아서 “나 군대 체질인가?” 했던 기억. 입고 있던 옷가지와 소지품을 모두 소포에 담아 집으로 보낸 뒤, 어색한 국방색 매트리스에 누워 침낭을 덮고 억지로 잠을 청하며 제발 이게 꿈이었으면 하고 바랬던 입소 첫날밤.


푹 눌러쓴 헬멧에 가려 눈이 보이지 않던, 그래서 더욱 무서웠던 신병교육대의 조교들. 보급받은 건빵이 너무 달콤하고 맛있어서 당황스러웠던 기억. 실탄 사격을 하던 날, 총소리가 내가 생각했던 "탕!"이 아니라 "쾅!"이라는 사실에 놀랐던 기억. 천주교 종교 행사에서 고해성사를 하며 펑펑 울었던 일. 안전핀이 제거된 수류탄을 손에 들고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던 내 어깨를 두드리며 "잘할 수 있어!”라고 격려해 주던 교관의 목소리.




하지만, 군 생활을 통틀어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은 따로 있다. 자대 배치를 받고 6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의 일이다. 이등병 시절 내내 군기가 바짝 들었다며 나름 고참들로부터 인정을 받던 내가, 불침번 근무를 서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그것도 침상에 드러누운 채로 말이다. 화들짝 놀라 눈을 떴을 때, 이미 다음 근무자인 고참이 싸늘한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나는 한순간에 "개념 없는 일병 나부랭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부대에서 인사과 행정 업무를 담당했던 나는, 마침 사수였던 고참이 정기 휴가로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업무가 두 배로 늘어나 있었으며, 그날도 며칠 째 계속된 야근을 마친 직후 불침번에 투입되었다는 나름의 사정을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었다. 다음 날 오전 점호를 마친 직후, "어젯밤 어느 정신 나간 일병 하나가..."로 시작하는 당직사관의 훈계에 소대 전체의 분위기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저 부동자세로 정면을 응시하는 수밖에.


그때는 나도 이렇게 정면을 응시하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드라마 D.P. 의 한 장면)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고참들 중 누구도 대놓고 나를 갈구지는 않았지만, 웃음기가 싹 사라져 버린 내무반의 숨 막힐 듯한 긴장감 속에서 나는 "차라리 한 대 맞고 끝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고참들의 따가운 시선과 계속되는 야근에 지쳐 이젠 될 대로 되라는 심경으로 지내던 어느 날, 한 고참이 나를 찾아왔다. 이때 나는 "드디어 올 게 왔구나"하고 생각했는데, 그는 유독 후임병들을 무섭게 갈구던 소위 군기 담당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그는 자판기 커피 한잔을 뽑아 내게 건네며 뜻밖의 말을 했고, 그 한마디에 비로소 숨통이 트인 나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때 그는 내게 “힘들지?"라고 했다.




내가 입대하던 날, 아버지는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 때만 해도 점호 끝나고 빠따를 맞지 않으면 불안해서 잠이 안 왔지만, 지금이 쌍팔년도 군대도 아니고..." 아버지의 바램 덕분이었을까? 나는 군생활을 하면서 누구에게 맞은 적도 없었고, 다행히 누구를 때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드라마 D.P. 속 이야기는 시대를 막론하고 군대라는 특수한 공간 속에서 일어날 법한, 또는 누군가가 실제로 겪었을 수도 있는 일이기에 아프고 안타깝다.


한참 의기소침해 있던 그때, 야근을 마치고 내무반으로 복귀하는 나를 묵묵히 지켜보던  고참은 뽀글이나 먹고 자라며 관물대에 숨겨놓은 라면을 꺼내어  던져 주었고, 얼마  휴가에서 복귀한 사수는 뜬금없이 아직 한참 남은 나의 휴가 날짜를 헤아리더니 굳이  전투복을 꺼내어 묵묵히 다림질을  주었다.  츤데레(?) 같았던 형들이 아니었다면  군생활은  어땠을까.  번쯤 보고싶은 얼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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