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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루아빠 Nov 26. 2021

아내가 잠꼬대로 흐느낄 때

나는 내 아내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얼마 전 이른 아침, 아내가 거실에서 낮은 목소리로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창밖은 어두웠고, 살짝 열린 침실 문 사이로 보이는 거실에는 작은 독서등만 켜져 있었다.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려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봤다. 한참 동안 전화기를 내려다보며 서있던 아내는 단짝 친구인 고등학교 동창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노라고 말했다. 생각보다 담담한 표정이었다.


작년 말 우리 가족이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무렵,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지인들과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던 중에 한 친구의 투병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결혼하기 전부터 아내는 고등학교 시절에 삼총사처럼 꼭 붙어 다녔다는 두 친구의 이야기를 종종 들려주었다. 힘겨운 투병 생활을 이어가는 친구에게 틈나는 대로 전화를 걸어 "이제 곧 백신 2차 접종 끝나면 보러 갈게"하던 아내였다. 이제 40대 중반. 단짝 친구를 먼저 떠나보내기엔 너무 이른 나이였다.




장인어른은 아내를 너무나 사랑하셨다. 아내와 내가 결혼을 2주 정도 앞둔 무렵에는 살짝 “우울증”을 앓으셨을 정도로 맏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셨다. 그런 장인어른이 생각지도 못한 병명의 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나시기까지 불과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고 서둘러 장례식장 도착한 나에게 와서 안기며 우는 아내에게 무슨 말로 위로를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빙부상이라며 많은 지인들이 조문을 왔다. 친구들, 옛 직장 동료들, 학교 동기들을 맞이하고 인사를 나누고 술잔을 주고받는 사이, 나는 잠시 누구의 상인지 잊은 듯 떠들기도 했다. 문득 상복을 입은 아내의 낯선 모습이 눈에 들어올 때면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생전 누구보다 가까웠던 부녀에게 얼마나 슬픈 이별의 시간이었을지, 나는 감히 그 슬픔의 깊이를 재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3일 내내 장례식장에 들러 며느리를 들여다보시던 나의 아버지는, 발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내게 커다란 봉투를 내밀며 “이 자식아! 니 와이프 좀 잘 챙겨라!”하고 괜스레 호통을 치셨다. 봉투 속에는 와이프가 좋아하는 제과점 빵들이 가득했다.




평소 잠버릇 없이 얌전하던 아내가 처음 잠꼬대로 흐느끼며 울었을 때,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살짝 흔들어 깨우자 아내는 울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듯 멋쩍게 웃으며 금세 다시 잠이 들었다. 안 좋은 꿈을 꾸었나 싶어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던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그 익숙하지 않은 기분의 정체가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나는 아내가 저렇게 서럽게 우는 모습을 한동안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정이 풍부한 아내는 밝은 성격만큼이나 눈물도 많았다. 언젠가 오래전 나와 연애를 할 때는, 단짝 친구의 불우한 가정사를 이야기하다가 왈칵 눈물을 쏟기도 했다. 감정 표현에 솔직했던 아내가, 어느 순간부터 내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을 달래주고, 지친 남편을 위로하느라 그랬을까? 집에서 아내는 늘 웃었고, 나는 그 표정이 주는 편안함에 안도했다. 내가 받는 위로 또한 당연하다 여겼고.


아내는 여전히 가끔 잠꼬대로 흐느낀다. 처음 그 모습을 봤을 때처럼 화들짝 놀라지는 않지만, 아내의 우는 잠꼬대 소리가 들리면 나는 언제나 잠에서 깨어 일어난다. 그리고는 미안한 마음을 담아, 내가 미처 알아주지 못한 아내의 슬픈 마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면서 어깨를 감싸 안고 토닥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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