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대의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
와이프와 나는 동갑내기다. 정확히는 와이프가 나보다 생일이 두 달 빠르다. 동갑내기와 결혼을 해서 산다는 것이 엄청 대단하고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문득 참 좋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미국에 있을 때 우리 가족은 종종 캠핑을 다녔다. 직접 텐트를 들고 다닐 정도로 부지런하지는 못했기에, 주로 대형 텐트나 오두막이 갖춰져 있는 글램핑 (Glamping) 사이트들을 찾아다니곤 했다. 그곳이 우리나라의 글램핑장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텐트 사이의 간격이 충분히 떨어져 있기 때문에 프라이버시가 확실하게 보장된다는 점이다. 인접한 텐트는 멀어서 아예 보이지도 않고, 다른 캠핑족과 서로 마주칠 일도 거의 없다.
이렇다 보니, 캠핑을 통해 느끼는 해방감과 즐거움도 더욱 컸다. 아이들은 캠핑장 인근의 강을 찾아 낚싯대를 던지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캐치볼을 하며 맘껏 뛰어놀았다. 그러다 쌀쌀해지면 모닥불을 피우고, 준비한 고기로 바비큐를 만들어 저녁 식사를 했다. 둘러앉아 고구마와 마시멜로를 구워 먹다 보면 주변은 금세 어두워졌다. 아니 캄캄해졌다. 그러면 우리 가족들은 일부러 모닥불에서 몇 걸음 떨어져 나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별이 쏟아졌다.
밤이 되어 아이들이 곯아떨어지면, 우리 부부는 겉옷을 하나씩 더 걸치고 텐트 밖으로 나와 꺼져가는 모닥불을 되살렸다. 그리고 여행 때마다 절대 빠뜨리지 않고 챙기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꺼내어 추억속의 "그 노래들"을 들으며 맥주를 홀짝거렸다. 세월이 가면, 슬픈 바다, 사랑일 뿐야,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우리 모두 여기에, 텅 빈 거리에서, 여전히 아름다운지, 내 눈물 모아, 인형의 꿈, 취중진담...
"아... 이 노래는 우리 중학생 때 나온 노래네", "1집을 이렇게 대박 내놓고 군대를 가다니...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않아?", "나는 그때 이 노래 객원 가수가 윤종신인 줄 몰랐어", 노래 한 곡 한 곡이 흐를 때마다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음악과 맥주에 적당히 취해 모닥불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야윈 두 손엔 외로운 동전 두 개뿐"이라는 가사를 요즘 친구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자, 문득 그 순간이 완벽하다고 느껴졌다. 누군가와 아주 낯선 장소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앉아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동시에, 어느 평행 우주에 살고있을 또 다른 나에게, 그 옆에 앉아있는 한참(?) 어린 연하의 배우자가 “오빠, 이 노래 되게 웃긴다. 왜 손에 동전 두 개를 들고 있는 건데?" 하고 묻는다면 그곳의 나는 무척이나 외로울 것 같다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그리곤, 어느새 모닥불에서 몇 걸음 떨어져 별을 구경하는 와이프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동갑내기라 참 좋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