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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Jan 01. 2022

앙버터 먹는 아침

나의 행복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는다

길을 걷다보면 유명한 프랜차이즈 제과점들의 멋들어진 간판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우리 집 근처에 맛있는 동네 빵집이 있다는 사실은 축복과도 같다고 느껴진다. 미국에서 4년 간 지내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맛있는 빵에 대한 그리움이었기에, 한국으로 돌아와 이사 온 집 근처에서 맛있는 동네 빵집을 찾았을 때의 기쁨은 더욱 컸다.


매주 토요일 아침이 되면, 나는 일부러 공복인 상태를 유지하다가 동네 빵집의 오븐에서 빵이 구워져 나오는 10시 30분에 맞춰 대충 걸쳐 입고 집을 나선다. 갓 구워진 빵들이 진열대로 옮겨지는 시간의 빵집은 달콤하고 구수한 냄새로 가득하다. 내가 고르는 빵은 매 주 똑같은데, 실컷 늦잠을 자고 막 일어난 아이들을 위해서는 따끈한 소시지빵을, 그리고 나를 위해 앙버터를 산다.


나는 앙버터를 먹을 때 항상 에스프레소를 곁들인다. 갓 구워 바삭한 빵, 단팥과 버터가 뒤엉켜 달콤함과 부드러움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 가운데 진한 에스프레소 한 모금이 더해지면 버터의 풍미가 확 살아나면서 고소한 맛을 한 번 더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실 창문 너머로 비추는 햇살의 온기, 아직 잠에서 덜 깨어 느릿한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입안 가득 느껴지는 앙버터의 맛과 향. 내가 "행복"이라고 느끼는 순간이다.




앙버터를 입에 물고 앉아있노라면, "결국 이렇게 될 것을..." 하고 생각하게 된다. 지난 한 주를 보내는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걱정과 불안 속에서 아등바등 살았는지. 결국 그 모든 것은 지나가고, 나는 다시 지난 토요일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햇살 비치는 거실에 앉아 앙버터와 에스프레소를 음미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복을 만끽하고 있거늘.


월요일이 되면 마치 지구가 멸망할 듯한 얼굴로 집을 나서고, 세상 모든 근심을 짊어진 듯한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가득한 시간을 보내지만, 나라는 존재는 결국 앙버터 한 조각이면 아무렇지도 않게 기분이 좋아지는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이 소소한 행복 또한 절대 어디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그러니, 이제 또 앙버터를 사러 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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