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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Aug 30. 2016

#03  <어른>

어른이 된다는 건 나를 안다는 것

01 | 어른이 되었다는 착각

 

도둑을 맞았다. 평소와 다르게 멀찌감치 주차해놓은 곳까지 걸어가 차에 시동을 켜고 나서야 알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아침에 생긴 일이었다. 난 하이패스 단말기가 없어서 톨게이트 비용을 현금으로 지불하곤 했는데, 잔액이 생기면 차량 재떨이 통에 모아 놓는 습관이 있었다. 어차피 안 쓸 통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종종 편히 꺼내 쓰려고 뚜껑을 열어놓곤 했었는데, 깜빡 잊고 차도 안 잠그고 키만 챙겨 나왔던 날. 밤새 누군가 내 차를 열어보고 내가 펼쳐놓은 보물 상자를 챙겨갔다. 어렸을 적 알리바바는 착한 사람이고 40인의 도적이 나쁜 사람이라고 배웠는데, 내 입장에서는 알리바바가 나쁜 사람이었다. 40인의 도적은 얼마나 억울했을까. 억울한 것도 모자라 쓴웃음까지 나왔다. 그는 자신이 의적 홍길동인 줄 알았나 보다. 500원 동전 하나를 보란 듯이 남겨놓았다. 나를 비웃는 모습이 선했다. 그동안 정리하자 해놓고 미루어 둔 게 화근이었고, 너무 안일하게 차 문을 잠그지 않았다. 사람을 믿었는데. 주변 환경이 문제야. 이 동네는 도둑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군. 어떻게 도둑질을 할 수가 있지? 나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었다. 평소 부모님이 차문 잘 잠그고 다니라는 말씀을 하곤 하셨는데, 난 그저 잔소리로 넘기곤 했었다. '내가 알아서 해요, 더 이상 어린이는 아니잖아요.' 하지만 알아서 한다던 내가 도둑을 맞았다. 내 실수다. 어린애처럼 굴지 말자. 인정할 건 인정하자. 어른인 줄 알았는데, 남 탓 먼저 하는 걸 보니 아직은 '어른이 되지 못한 어린이'였다.  



02 | 나이를 먹어도 다 큰 어린이

 

돌이켜보면 참으로 무난하고 다행스러웠던 날들이었다. 큰 사고 한 번 없었고, 스스로 밥벌이할 수 있는 직장에 들어갔고, 혼자 살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넓은 집에 살고 있다. 꽤나 긍정적인 온도로 지나온 날들이 주는 행복이랄까. 그동안 내가 내린 수많은 결정의 결과겠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은 항상 마음속에서 한바탕 전쟁을 치루지만, 그럼에도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 서보려 노력했다. 별거 아닌 사소한 결정에도 한 번 더 생각하고 고민을 하며 보내왔다. 예민함이 무기가 되는 때가 많았다. 꾸준히 땀을 흘렸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과정 속에서 배움의 자세로 모든 일을 마주했다. 어려운 일도 척척 해내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요즘, 뭔가 개운치 않다. 알면 알 수록 더 어렵고 더 큰 문제가 내 앞에 툭 던져진다. 난 가급적이면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일을 처리하고 나머지 여유를 즐기는 성향이다. 그런데 하나 해결했다고 어른처럼 의기양양 해보일 때면 더 큰 문제들이 닥쳐 자괴감에 빠질 때가 많다. 그래도 이제 나는 코찔찔이 어린이가 아니라며 '나 스스로 돈도 번다, 힘도 이렇게 세졌다' 하며 부모 앞에서 어른 티를 낸다. 음식 준비를 하던 어머님은 '그래, 그래'하신다. 결혼해서 애 낳고 가정을 꾸릴 나이가 되었건만, 부모는 여전히 내 뒤에 대고 또 이러신다. '차 조심하고, 밥 잘 챙겨 먹고.' 이제 걱정하지 말라고 나 스스로 잘한다고 한 마디 덧붙여 보지만, 막상 세상의 벽에 심하게 부딪혀야 하는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부모의 얼굴이 떠오른다. 


노환으로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한참을 우시던 어머니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한 마디 하셨다.

'난 이제 고아야.'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도 위대하게 보였던 어머니도 외할머니 앞에선 그저 딸이었고, 외할머니 앞에서 어른 티를 내는 '어린이'였다. 우리는 부모가 한 줌의 흙이 되기 전까지 한낱 어린이일 뿐인 걸까?



03 | 그 나이를 해 먹도록 그걸 하나 몰라?

 

보통 사람을 2가지 다른 방식으로 위로한다. 직설적으로 그만해라, 반대로 괜찮다. 사람마다 아플 때 잘 듣는 약이 있듯이 어느 한 방식이 옳다고 할 수 없겠다. 어른이 되어도 난 아직 덜 성숙한 존재다. 그래서 가끔 위로가 필요하다. 해묵은 책 속 글귀가 아니라 굵은 나이테로 휘감긴 경험에서 나오는 진실된 위로. 좋은 위로를 받은 날은 가슴이 벌렁벌렁 하고 헤어지고 나서 며칠간 그 울림이 발걸음을 경쾌하게 만든다. 그런 위로를 접하게 되는 건 한 사람의 인생을 뒤흔들 만큼 강력한 것이기에 진정한 '멘토'를 만나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아쉽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멘토만 찾아다닐래? 그런다면 위로의 주체는 나 스스로 찾아야 한다. 서른이 되고부터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에 생각을 끊임없이 하던 때가 있었다. 어찌 보면 잔잔했던 내 마음속 호수에 크고 무거운 바위 같은 고민 덩어리를 던져 넣는 우울한 사유의 과정이다. 괴테가 그랬던가.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고. 매일 마음의 상처로 고통스러운 나날이 반복되겠지만, 결국 선택은 본인 몫이다. 선택은 항상 본인이 해야 하며, 그 결과에 대한 무조건 책임을 갖는 것. 이 시대 어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시대를 방황하는 청춘의 영원한 지지자 신해철 님은 이렇게 말했다.


'그 나이를 해 먹도록 그걸 하나 몰라?' 


한해 두 해 지나면서 내게 선택의 시간이 주어질 터인데 그 순간을 회피하고 싶진 않다. 결과야 어찌 되었든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나중에 자식이 내게 '아빠는 그때 어떻게 했어요?' 물어봤을 때 '아무것도 안 했어' 보단 '해봤는데 어찌 되었어, 그리고 그냥 그랬어'라고 답해주고 싶다. 단, 꼰대가 되는 것은 스스로 경계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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