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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Sep 02. 2016

#04 <취미>

'덕질'이 갖는 의미


요즘 서점가에 가면 '미쳐라'라는 키워드로 칠해진 많은 자기 계발 서적을 보곤 한다. 미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세상인가 보다. 좀 더 생산적이고 주도적인 인생을 살길 바라는 의미 같은데. 꽤 공격적인 표현이라 자극적이지만 한 편으론 '미친다'는 것은 내 마음의 바다에 닻을 내리는 중요한 키워드다.



흔히 무언가에 '미치고', '빠져'있는 사람을 일본말로 '오타쿠'라고 한다. 이 단어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쉽고 간결하게 불려지더니 '오덕후', '오덕' 요즘엔 그냥 '덕후'가 되었다. 덕후가 꽂혀있는 행위를 '덕질'이라고 하기도 한다. 농담으로 '덕질'은 단어 그대로 '덕'을 쌓는 고결한 행위이고 어느 수준 이상이 되면 '오덕', 나아가 최고 경지에 오르면 '씹덕'이 된다고 한다.



01 | 덕질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


탤런트 심형탁은 유명한 도라에몽 덕후이다. 세상과 사람으로부터 받은 아픔은 도라에몽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만화 속 캐릭터인 도라에몽이 부리는 요술이 언젠가 세상을 밝게 변화시킬지도 모른다면서. 어린 시절 마음의 생채기가 만화 캐릭터를 통해 치유되는 과정을 보면, 어쩌면 덕질은  스스로 상처에 약을 덧바르는 행위가 아닐까? 상처 자국은 자신만의 훈장이 된다. 



02 | 언젠간 이루어질 꿈을 위한 노력의 과정

 

보통 이력서를 작성하거나, 사람을 만날 때 '취미'를 언급한다. 난 '취미'와 '특기'가 항상 헷갈린다. 특기는 특별히 잘하는 기술이고, 취미는 시간이 남을 때 주로 하는 덕질이다. 보통 취미가 특기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경계가 모호한 것이 사실이다. 경계가 모호한 만큼 세대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내 10대의 덕질은 '음악'이었다. 적지 않은 용돈을 모아 음악 테이프와 CD를 모았고, 그것들을 책상 위에 나란히 진열해 놓을 때면 항상 행복감을 느끼곤 했다. 그땐 뮤지션이 되고 싶었다. 그 시절 만든 이메일 아이디에도 내 꿈이 반영되어 있었다. 20대가 되자 난 '컴퓨터'에 미쳐 있었다. 현실적인 미래를 생각하면서 엔지니어가 되기로 마음먹었고, 소형 컴퓨터(지금 패드, 스마트폰 개념)와 관련된 기술 서적이나,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공부하면서 유명한 기술 공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때 처음 나온 '넷북'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30대가 된 지금 문화, 예술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아무래도 미혼(싱글)이다 보니 물질적 여유도 있고 대중매체의 발달이 토해내는 수많은 아티스트의 음악, 그림, 문화를 읽고, 보고, 듣는 것이 너무 즐겁다. 예전에 비해 기타 실력도 많이 늘었다. 음악에 대한 스펙트럼이 나름 넓어졌다. 나름 혼자 방구석에 앉아 음악 리코딩도 해보고, 시간이 날 때면 연주회도 찾아간다. 30대가 주는 물질적 풍요로움을 바탕으로 좀 더 깊은 덕질의 바다로 잠수 중이다. 언젠간 어떤 형태가 되었든 나만의 앨범을 출시하는 목표다. 너무 야무진 꿈이다.



03 | 덕질이 주는 선순환 작용


덕질은 확실히 인생을 풍부하게 한다. 남들이 뭐라 하든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가는 행위이기 때문. 누구나 행복을 꿈꾸고 방법을 묻지만 정답은 자신이 갖고 있다. 나의 지나온 과거를 뒤돌아보면, 덕질을 하면서 난 소비에서 지금 막 생산의 단계로 넘어간 것 같다. 단순히 보고, 듣는 것에 익숙해져 있던 내가 어느 날부터 만들고, 찾아가는 주도적인 일상으로 바뀌었다. 누군가의 생산물을 소비하던 일상으로부터 이제 막 창조해내는 과정에 발을 디딘 것 같다. 음식물을 섭취하고 배설하지 않으면 몸이 고장 난다. 그래서 배설을 통해 좋은 것은 흡수해서 더 좋은 음식을 접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그 배설물은 토양의 양분으로 쓰이겠지. 문화 생산품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창조물들을 괴물처럼 꾸역꾸역 삼켜버리기 바빴던 지난 시절에 수많은 생각들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30대가 되고 나서 모든 일상의 초점을 나에게로 맞추어갔다. 나를 알기 위해 하나씩 작은 글들로 표현하기로 했었다. 지금은 시간을 쪼개 글 쓰는 일상이 너무 행복하다. 누군가 나의 생각에 영향을 받는다면 그건 덕질이 주는 좋은 선순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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