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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Sep 02. 2016

#05 <프로>

80점 인생을 살아야 하는 이유

01 | 프로의 기준


회사 신입과 경력 입사자를 모아놓고 본부장님이 말씀을 하신다.



‘여러분들은 프로입니다. 

돈 받고 일하잖아요. 

그러니까 잘해야 해요.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프로가 보수의 유무로 결정되는가? 프로에게 주어지는 어마어마한 물질적인 대가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아마 '명예'에 더 우선순위를 둘 것이다. 그동안의 '노력'과 자신이 옳았음을 직접적으로 몸소 증명하는 것이니까. 흔히 프로라고 하면 완벽함을 떠올린다.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프로가 되기 위해 무엇이든 열심히 했다. 친구들과 야구를 할 때면 꼭 홈런 개수로 내기를 하곤 했고, 뭐 하나 꽂히면 목표를 이룰 때까지 그것에 푹 빠져 지냈다. 대학생 시절, 리포트를 작성할 때 내용의 완벽성은 기본으로 하고, 표지 모양까지 신경 써서 단순히 학생 이상의 비즈니스 문서와 같이 보이도록 여러 날을 고민해 제출했었어. 이렇게 예민하고 끈질긴 노력들은 대부분 좋은 결과로 나왔기 때문에 보람을 느꼈고, 나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주었다.


그런데, 남모르는 나만의 짜증 나는 고통이 있었다. 예를 들어, 책을 볼 때면 앞부분부터 완벽하게 이해하려 했기 때문에 이해가 되지 않으면 끝까지 읽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고, 그래서 시험공부를 할 때면 시간에 쫓겨 벼락치기하기 일쑤였다. 한 번은 나만의 스케줄을 만들어서 매일 9시에 도서관에 가기로 했었는데, 조금이라도 늦잠을 자거나 늦어질 때면 아예 도서관에 안 갔다. 그리고 게을렀던 나 자신을 책망했다. 나 자신을 들볶는 건 좋지 않은 습관이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구속하고 질타하면 결과의 책임으로부터 잠시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에 그랬었던 것 같다.


이제야 안 사실이지만 나름의 기준치가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남들이 볼 때는 게으르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도서관도 안 나오고, 시험도 안 보고, 사람도 잘 안 만나고 그랬으니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행동하려 했지만, 하나라도 틀어지면 그 의지는 유리와도 같이 쉽게 깨져버렸다. 계획이 완벽하다고 다 이루어지는 건 아님을 깨달았다. 첫 단추를 잘 못 끼우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끼우거나 나머지 단추만이라도 잘 끼우면 된다. 내 나이 서른이 지나고 나서 알게 되었다(셔츠 단추는 잘 잠그고 다니니 오해는 마시길). 그 이후부터 나 자신을 알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서른이 지난 후에 돌아본 내 지난 모습은 인간의 탈을 쓴 기계 그 자체였다.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는데, 잠시 쉬면서 우직하게 지내면 될 것을 나 자신에게 왜 그렇게 엄격했을까. 나의 프로 도전 일기는 마지막 장을 채우지 못하고 빈 공간으로 채워졌다.



02 | 80점 인생이 매력적인 이유


중학교 시절에 학원 수학선생님이 했던 말이 아직도 생각난다. 


"80점 맞았다고 괴로워하지 말아라. 

너네 인생에서 어떤 시험이든 80점만 맞는다면,

네가 생각하는 성공  그 이상이다."



모의시험이 어려웠다. 만점 맞은 친구조차 없었고, 다들 평균 이하의 점수를 맞았다. 중요한 학교 시험을 앞두고 있던 터라 모두 풀이 죽어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본 선생님의 진심이 담긴 위로였다. 내가 살아가면서 수많은 시험을 치른다. 만점을 위해 자신을 버려가며 노력하지만, 실제로는 시험에서 정해둔 기준 이상만 넘기면 된다.  만점을 위한 노력은 중요하다. 그래야 최소 80점 이상은 맞을 수 있으니까. 프로가 된다는 것은 100%, 만점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과감히 20점을 버리고 그 시간을 멋지게 쓰는 것이 진정한 프로다. 현재 사회적 기준에 따르면 난 아직 80점 근처에도 못 간다. 나 스스로는 이미 그 이상인데 말이다. 때론 풀어진 모습도 보이고 나이가 들어 삐져나온 살들 때문에 거울을 회피하곤 하지만 이건 나 스스로 볼 때 타인과의 관계에서 진일보했다. 정신승리다. 다시 한번 거울에 몸을 비춰본다. 80점 인생이래도 이건 80점 아래이다. 난 운동화 끈을 묶고 현관문을 나섰다. 늦은 시간이지만 조금이라도 산책을 하고 와야겠다. 무더운 날에도 밤 공기만은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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