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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Sep 05. 2016

#06 <삯일>

나의 꿈은 어디에 있을까?

01 | 잘하는 것과 잘하고 싶은 것의 차이

 

평소 꿈으로 여겼던 일을 직업으로 갖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심장이 뜨거워진다. 나도 꿈이 있었는데, 아침마다 리셋되는 한낱 잠꼬대인 건가? 

대학원 졸업 시즌이 다가올 무렵 취업에 대한 불안으로 하루하루를 간신히 보내던 시절, 내가 하고 있는 공부와 기술을 잘한다고 포장했다. 그만큼 취업이 간절했기에. 영혼을 매입하는 악마 같은 장사꾼이 실제 있다면 에누리를 주더라도 거래를 하고 싶었다. 악마에게 거짓을 대가로 거래를 한 날, 운 좋게 취업을 했고, 대신 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해야 했다. 체력도 약했는데 많으면 12시간 이상을 일해야 했고, 내향적인 성격임에도 대내외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협조를 얻어내야 했으며, 예민함을 숨기고 위아래 사람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눈치를 봐야 했다. 그렇게 지내다 지치고 다 버리고 떠나고 싶을 때쯤, 통장에 숫자가 찍힌다. 월급날이다. 플러스(+)는  마이너스(-)가 되고 다시 플러스를 받기 위해 출퇴근을 반복한다.



잘하고 싶은 게 있었다. 멋진 내 모습을 상상하며 눅눅해진 김밥을 물어뜯어도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내가 잘하고 싶은 것과 현실에서의 벌이는 많은 격차가 있었고, 나아갈 길은 희미한 빛조차 허락되지 않는 암흑 그 자체였다. 오랜 시간 고민 끝에 잘한다 생각했던 것을 직업으로 삼았고, 그렇게 소시민이 되었다. 꿈을 버리진 못했고 마음속 조용한 동네에 숨겨놓았다



02 | 숙명과도 같은 '일'


드라마 <미생>에서 영업 3팀의 팀장인 오상식 차장.  그는 남들이 하지 않는 일만 골라서 한다. 그렇게 하면 빛이라도 나야겠지만, 매번 주변 시선은 싸늘하고 따갑기만 하다. 그러나 주변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그이기에, '일중독', '일벌레'라는 소리를 들어도 빨개진 눈을 훈장 삼아 묵묵히 일을 해 나간다. 어느 날, 그의 팀원 중 한 명이 불미스러운 일로 회사에서 수군거림의 대상이 되자, 다 들으란 듯이 큰소리로 말한다.


“회사에 왔으면, 일을 하라고!"


그가 뱉은 말은, 매일 그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이, 오로지 주어진 일만 해야 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그 자체이었다.



노동의 대가가 주는 물질적 풍요로움은 안락하다. 마약 같다. 지금까지 구축해온 안락한 이 시스템이 좋은데 가시밭길과도 같은 내 꿈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 너무 속물 같아 보이지 않을까? 불안이 다시 찾아온다. 아이러니하다. 행복한데 불안하다니. 


03 |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 주는 메시지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은 고되고 힘들어 보이는 노동의 현장부터, 화려하지만 씁쓸한 산업의 내면까지 그만의 치밀한 취재와 삶의 철학을 덧붙여 담담히 써 내려간 에세이다.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존재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들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일을 하고, 노동의 대가로 삶을 치장한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는 노동의 진부함을 생각하며, 희미한 절망감을 느끼다가, 거기에서 나오는 물질적 풍요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로 표현했다. 그가 국제적인 항공 박람회에서 화려함으로 치장한 항공산업 종사자를 만난다. 그녀는 선망의 대상이지만, 그런 모습은 그저 포장일 뿐. 그들도 주어진 일을 하고, 따분함을 느끼고, 지루함에 하품을 내던지는 일반 샐러리맨일 뿐이다. 사막 한가운데 놓여있는 폐기 직전의 항공기 잔해를 살펴보며,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어차피 일의 종착지는 죽음이고, 인간은 죽음에 대해 숙연 해져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일을 통해 때로는 기쁨도 느끼고, 슬픔도 느끼겠지만, 무엇인가를 정복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일은 품위 로운 피로를 안겨준다. 삶이라는 더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 있게 해주는 것이 다시 일이라는 역설도 펼쳐놓는다.


일은 고되고 힘들다. 삶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그 끝은 죽음일 뿐이지만, 그 죽음조차 아름답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하는 그 일이다. 죽음 앞에 당당해질 수 있는 방법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가능한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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