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이 인생을 갉아 먹는다

스스로를 통제 가능한 영역에 넣어놓기

by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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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함이 불러온 혼란의 뒤범벅


어깨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던 날이 생각난다. 어깨가 유독 아파서 동네 근처 병원을 찾아갔다. 더운 날씨에 자전거를 열심히 타고 달려가니 10시 28분에 도착했다. 다행히 오전 진료 마감까지 2분이 남아 있었다.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움직인 덕분에 가능했다.


진료를 마치고 처방전을 받기 위해 기다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안내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내 눈빛을 보더니 방금 진료실에서 나온 환자가 아직까지 앉아 있는 게 이상했나 보다. 고개를 숙이고 모니터를 살펴보더니 곧바로 내 이름을 불렀다. 처방전을 받고 진료비를 계산한 후 나가려는데, 갑자기 직원이 나를 불렀다.


"처방전 안 가져가... 아! 가져가셨구나!"


내가 처방전을 안 받고 나가는 줄 알았나 보다. 안내데스크는 예약하고 오지 않은 사람들과 진료를 받은 사람들이 뒤섞여 난리였다. 어떻든 나는 처방전을 받았다는 표시로 살짝 흔들어 보여줬다.


이제 약을 처방받을 차례였다. 병원은 2층, 약국은 1층에 있었다. 토요일 오전 11시는 의외로 혼잡한 시간이었다. 머리색과 같은 하얀 가운을 입은 연세 드신 약사분이 어린 아이를 데려온 부모와 약에 대해 이야기하고 계셨다. 그중 어머니는 특정 약에 대해 요구사항을 말씀하시고 이전에 사용했던 약에 대해 질문을 하셨다.


그런 어머니의 빠른 질문에 답해주는 약사님. 아이는 여기저기 약국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고, 약사분을 도와주는 사복 차림의 보조원 한 분도 계셨다. 마침 내 처방전을 받으셨는데, 약사분이 대화하느라 바쁘신 와중에 거래처에서 온 분이 큰 박스를 들고 성큼성큼 들어왔다. 주문한 약 인수 작업을 해야 했다. 보조원분은 이 상황이 걱정됐는지 내가 지켜보고 있는데도 갑자기 슬그머니 조제실로 들어갔다.


2분 정도 지났을까. 아까 상황이 간신히 마무리되고 내 약이 나왔다. 그 사이 나는 마스크를 추가로 구매했다. 총 8천 원이었다. 약값은 3천 원, 마스크는 5천 원. 보조원분이 내게 8천 원이라고 하며 카드를 받아 결제를 했다.


뭔가 찝찝했다.


약을 처방받으면 약사분이 설명을 해주신다. 연세 드신 약사님은 보조원분이 급하게 조제한 약을 보더니 "이게 아니야"라고 하셨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약을 다시 들고 조제실로 들어가셨고, 아까 거래처 분은 인수증을 들고 조제실을 빠져나왔다. 바쁘셨는지 "제가 그냥 찍고 갈게요"라고 하더니 데스크에 있던 도장을 쿵쿵 찍고 나갔다. 그런 그분에게 약사님은 조제실을 잠시 빠져나와 에너지 드링크를 건네셨다.


이윽고 내 약이 다시 나왔다. 특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아까 약보다 다른 색깔의 알약이 추가되어 있었다. 이 사이 조제실에서 조곤히 속삭이던 내용이 머리를 스쳤다.


'이걸 어떻게 믿지?'


그래도 진통소염제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하고 그냥 받아들였다. 계산은 끝났고 마스크를 챙겨 들고 나가려는데, 보조원분이 다시 나를 불렀다.


"아까 마스크 계산을 안 했어요..."


청바지 주머니에 구겨 넣었던 영수증을 다시 꺼냈다. 맞다. 3천 원만 계산되어 있었다. 다시 추가로 5천 원을 계산했다.


사실 이 과정, 이 시간 동안 나는 한계를 왔다 갔다 했다. 날씨도 덥고 습했고, 배도 고팠다. 그런데 특별히 화를 내지는 않았다. 내가 그렇게 느낀 만큼 그들도 덥고 습하고 짜증나고 배고팠을 거다. 그런 시간이었다.


조급함은 통제력을 잃은 신호등이다


약국의 두 분이 조급함을 보였을 때, 적어도 나는 상황에 휘둘리지 않았다. 나까지 조급했다면 첫 번째 약이 나왔을 때 그냥 들고 나갔을 거다. 한편으로는 5천 원을 지불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잘못된 약을 들고 나올 뻔했다.


차분히 상황을 보고 흐름을 통제한다. 조급하다고 일이 되는 건 아니다. 어차피 나는 볼일을 마무리했고, 상대방도 우여곡절 끝에 큰 잡음 없이 일을 마무리했다.


서로 조급해하면 일이 터진다. 누군가는 여유를 가져야 상황이 제대로 진행된다.

조급함이란 결국 상황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신호다. 마치 고장 난 신호등처럼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만든다. 반대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면 조급할 이유가 없다.


인생에서 주도적으로 살고 진짜 행복을 누리려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확실히 통제해야 한다. 나만의 루틴을 지키는 것, 주눅들지 않기, 눈치 보지 않기 같은 것들. 이런 게 쌓여야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가질 수 있다.


결국 상황을 통제하고 나면 조급함이 생길 일이 없다.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가는 것. 그게 조급함에서 벗어나 진짜 여유를 갖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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