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철 Jun 20. 2020

(3장)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예측을 깨라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배우고 기억하는가 by 제레드 쿠니 호바스


내가 암기왕이 되지 못한 이유


어린 시절 '책에 있는 모든 내용을 암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마치 책에 있는 활자가 실제로 작은 형태가 돼서 머리에 털어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상상 말이다. 복사기를 처음 접한 후로는 가끔 장난으로 책을 펼쳐 머리 위로 쓸어내리며 '복사'를 해댔다. 결과는? 당연하지. 그게 될 리가 있나. 학창 시절 영단어 1000은 그냥 장식품이 되어버렸다. 


반대로 어떤 기억이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떠오르는 때가 있다. 바람이 부는 날엔 풋풋했던 시절 만났던 여자 친구의 샴푸 향과 살 냄새가 생각나고, 식당을 지나가다 된장냄새가 나면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주었던 '된장찌개'가 연상된다. 분명 화학적으로나 분자적으로 다를 텐데 그냥 그런 기억들이 떠오른다. 잊으려 했던 기억까지.


'기억'이란 놈, 참 짓궂다.  


암기와 기억은 엄밀히 다른 개념이지만 무엇인가를 떠올린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기억을 잘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비법이 있는 걸까?


저자는 사실 별다른 건 없고 오래된 암기법이 존재한다고 한다.



p.82
답은 그들의 암기법에 있었다. 그들은 모두 2,000년이나 된 암기법인 '장소법'을 활용했다. 
..(중략)..
첫 번째 단계는 '정교함'이다. ..(중략).. 정교함이란 평범한 것들을 정신적으로 깊이 각인된 특별한 이미지로 치환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중략)..
두 번째 단계는 '배치'다. ..(중략).. 카드를 암기해야 하는 순간 이미 설계해놓은 동선을 따라 머릿속 공간을 거닐며 각 장소가 갖고 있는 이미지를 불러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기억하고 싶은 대상을 좋은 대상과 치환하거나, 자신이 익숙한 공간에 상상적으로 배치하는 거다. 이렇게 듣고 보니 사실 별 다른 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기억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만 제대로 알면 달력에 크게 그려진 동그라미의 의미를 금세 알아차릴 수 있고 등짝을 면할 수 있을 텐데.


낫 놓고 기억을 기억해보자


전통적으로 '기억'이란 개념은 3가지로 분류된다.


1. 작동기억

2. 절차기억

3. 서술기억


'작동기억'은 절차에 관한 것으로 새로운 기억이 들어오면 자리를 내주면서 사라진다. 책을 읽을 때 한 단어, 한 문장을 차례로 읽을 수 있는 이유다. 


'절차기억'은 무의식적인 능력을 말한다. 덕분에 우린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여닫고, 양치질을 할 수 있다.


'서술 기억'은 구체적인 사실이나 사건들을 기억하는 능력이다. 그녀 또는 그가 좋아하던 노래가 무엇인지, 첫 키스를 어디서 했는지(가끔 논란이 있기도 하지만)등 회상해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여기까지는 전통적인 의미로 '기억'이란 개념을 서술했다. 이후 여러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 기억이란 놈을 파헤치고 있었는데, 당시 학자들은 기억을 조종하는 녀석이 '해마'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기억을 관장하는 중요한 기관이 있다.
그건 바로 '해마'다.
해마가 망가지면 같은 행동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당시 그들의 논리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즉, '해마'라는 놈은 어쩌면 그들의 생각대로 기억의 저장소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전환점을 가져온 사건이 있었다.


'헨리 구스타프 몰래슨'은 평범한 그냥 일반인이었다. 고질병인 발작으로 인해 고통받는 그를 위해 의료진은 '해마'라고 불리는 뇌의 특정부위를 제거하기로 했다. 수술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그는 그 이후 55년 간 1년에 한 두어 번 발작만을 겪으며 살아갔다. 단, 그에게는 한 가지 부작용이 있었는데..


바로 새로운 정보가 몇 분 이상 기억되지 않았다. 신문을 봐도 같은 부분만 여러 번 보고,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p.85
간단히 말해 해마는 '기억의 관문'이다. ..(중략).. 흥미로운 사실은 헨리가 수술 전에 일어났던 인생의 사건들은 기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기억이 '해마'에 저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해마'는 기억의 관문이라 한다. 새로운 사실이나 경험이 기억에 남기 위해서는 이 '해마'를 통과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만큼 해마는 기억에 있어 필수 요소이다.


머릿속 지도를 그려보자


자, 그럼 어떻게 해야 기억을 잘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새롭게 느껴지게 하거나 익숙한 곳에 가야 한다. 이게 뭔 말이냐? 


가끔 물건을 잃어버리면 그것을 찾기 위해 우리가 하는 행동을 살펴보면 이해하기 쉽다. 자신이 들고 있는 물건 안을 살펴보고, 지나온 길을 다시 찾아가며, 자신의 행동을 거슬러 생각해본다. 그렇게 우리의 기억은 작은 단서로부터 기억을 이끌어 낸다. 그리고 그것이 있을만한 위치를 '예측'한다.


p.87
공간의 배치가 기억 속에 단단히 박혀 있는 첫 번째 이유는 '회상'을 돕기 위해서다. 기억은 뇌에 '통째로' 저장되지 않는다.
..(중략)..
우리의 뇌는 더 이상 소극적인 수신자가 아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끊임없이 예측한다. 이것을 '맥락적 기억'이라 한다. 머릿속 정신 지도가 과거의 사건들을 회상하는 안내 단서일 뿐 아니라 미래의 사건들을 예측하는 안내 단서로도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머릿속 작은 지도는 기억과 예측을 동시에 이루어지게 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어떤 형태로 기억하고 예측하든 각자만의 지도를 만들어내야 효율적이라는 뜻이다.


마치며: 망각이 주는 행복에 대하여


구소련의 기자인 '솔로몬 세르셉스키' 자신 주변에 일어난 모든 상황과 일들을 기억해낸다. 20년 전 일까지도 바로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생생하게 재연해낸다. 그가 하는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놀라워했다. 그만의 암기 비법이 있는 걸까? 그런데 정작 본인은 기억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난 아픔, 고통들이 도통 지워지지 않는다. 인간은 기억하기 위해 살지 않고 망각을 향해 달려가고 마지막에 사멸하는 존재다. 그럼에도 생명을 유지하며 살고 있는 가장 큰 동력원은 어쩌면 망각이 있어서이고 그를 통해 동시에 성장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나쁜 기억, 좋은 기억 어느 것 하나 우선순위를 둘 수 없는 소중한 우리의 인생을 구성하는 조각들이다. 이 조각들이 모여 나란 인생을 만들고 우린 모두 각자의 지도에서 두 발을 딛고 살아가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2장) 두 가지를 결합 하라: 시각과 청각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