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말씀을요 오히려 제가 더 고맙습니다
난 여름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계절별로 살펴보면 봄은 뭔가 새로운 각오를 할 수 있어서 좋고, 가을은 날씨가 선선해지고 밖에 나가기 좋을 때라 좋고, 겨울은 한 해를 반성하고 내년을 기약할 수 있어서 좋다. 근데 여름은 정말이지 더위 때문에 싫다. 머리를 짧게 잘라야 그나마 머릿속이 정리되는 듯 하다. 난 삼손도 아닌데 여름만 되면 머리를 짧게 자르고 힘을 빼고 그렇게 존재한다.
월요일 시작이 매끄럽지 못했다. 주말내내 몸은 쉬었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미친듯이 먹어댔고 근로소득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 좌뇌는 혹사당하고 우뇌는 억눌렀다. 그런 상태에서 몸은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머릿속은 집중이 도통 되질 않았다. 그렇게 이리저리 마우스를 클릭하며 천천히 뇌를 가동하던 중 전화가 왔다.
생각난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 자신이 맡은 일이 처음이라 내게 여러 번 전화했던 그 분이다. 처음이라 하시고 내게 묻는 태도도 공손하고 배려가 있으셔서 바쁜 와중에도 성실히 답을 해줬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몇 초 지나고 목소리를 들으니 이제 알겠다 싶었다. 자료를 마무리해서 내게 보내겠다 한다. 어떤 형태로 전달해주어야 할지 몰라 다시 연락드렸다고 하셨다. 난 한 가지 형태를 정해놓은 건 아니라서 둘 다 보내도 괜찮다고 알려주었다. 알겠다하고 통화를 마쳤다.
한 두 시간 지났을까. 메일이 와있었다. 메일 내용을 확인하고 첨부파일을 저장한 후 관계자에 다시 전달했다. 그리고 또 30분 정도 지났다. 난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 메일을 자주 확인하는 편은 아니지만 오늘은 집중력이 떨어졌는지 자꾸 메일에 눈이 갔다. 다시 그 분의 메일이 와있었다.
'혹시 받으셨다면 아무말씀이나 답장해주셔요.'
곧바로 답장을 했다.
'네, 메일 잘 확인해서 관계자에 전달했습니다.'
그러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른 업무에 집중했다. 업무를 거의 마칠 무렵 마지막 메일함을 확인했다. 그 분에게서 또 다시 답장이 와있었다. 이럴 거면 그냥 전화하시지. 특이사항은 아닐 듯 하여 곧바로 답장 메일을 확인했다.
'바쁘실텐데 매번 잘 응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순간 가슴속이 뜨거워졌다. 업무에 지장이 있을만큼 만사를 제껴두고 도와드린 것도 아닌데. 마침 정신적으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던 내게 따뜻한 한 문장이었다. 그대로 몇 분을 모니터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몇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별 거 아닌 일상적인 문장에도 온도가 있다. 지나치듯 습관처럼 말 한 마디에도 누군가는 상처받고 누군가는 용기를 얻는다. 그것이 문장으로 표현될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분이 형식적으로 한 말일 수도 있다. 나도 응대하기가 번거롭고 귀찮았지만 역할이 바뀌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내게 간단한 답변이라도 누군가에겐 절실한 응답일 수도 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더 고맙습니다' 뒷말은 생략했다. 그 맘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