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딛는 순간 용기가 생긴다
오래전부터 나는 내 감정을 보이고 노출하는 것을 꺼려했다. 내 생각과 행동이 주로 내향적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보다는 자라온 환경이 나로 하여금 항상 잘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준 것은 아닐까 하는 또 다른 생각을 해본다. 그렇기 때문에 풀어진 모습에 대한 철저한 자기 검열이 따라다니곤 했다.
그런데 인생의 색깔이 짙어질수록 그러한 행동은 그만큼 사람과의 거리를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기분이 좋으면 좋다고 하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한다. 뭐 이쯤 되면 감정에만 충실한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
기분이 좋으면 무엇 때문에 기분이 좋은지 알아보고, 그 감정을 계속 간직하고 다시금 느끼고 싶어 한다. 힘들면 무엇 때문에 힘든지 살펴보지만, 언젠간 다 지나갈 감정이라고 여기며 이내 곧 웃음을 지어 보인다. 이렇게 감정에 솔직해진 후에는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요즘 무더기로 출간되고 있는 치유 관련 서적들에 대한 아쉬움이 바로 이것이다. 대부분 감정을 흘러두라고만 하지, 그 이후에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서 진정한 치유와 성숙의 단계로 이끌지는 못한다. 그저 표출하는 것으로 어루달래주기를 바라는 것은 어린 시절에만 가능한 일이다. 어른이 된 이후에는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여행을 다녀왔는데 어땠냐고 물으면 단순히 '완전 대박', '좋아요'로 답하는 것은 결국 보고 느낀 것이 그것뿐이라는 말밖에 안 된다. 만약 "아침 햇살이 호수에 비치는 모습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어요"라든지 "현지 사람들의 여유로운 모습에서 삶의 다른 속도를 배웠어요"라고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풍성한 대화가 될까.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단순히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변화들을 알아차리는 능력이다. 이런 능력이 생기면 다른 사람의 감정도 더 세심하게 읽을 수 있게 된다.
우리는 감정의 동물이지만 노예는 아니다. 감정을 억누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감정에 휘둘리지도 않는다. 감정을 친구처럼 대하면서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다.
이제 나는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이 용기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용기가 나를 더 깊이 있는 사람으로, 더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감정을 숨기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진정한 만남의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는 것이었다.
앞으로도 나는 내 감정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적절한 언어로 표현해보려 한다. 그래야 나 자신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도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