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끝없이 출발선에 서는 이유

미래의 불안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한 몰입의 순간을 찾아

by 박철
Sonny Hayes, 그는 도로 위를 달릴 때 행복한 사람(출처 : i.guim.co.uk)


챔피언이 되려는 꿈이 도박꾼으로

screenrant.com/f1-the-movie-ending-explained/

소니 헤이스는 한때 F1 챔피언을 꿈꾸던 유망한 드라이버였다. 호기롭게 정상을 향해 달려가던 그 시절,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고가 그의 레이싱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놓았다.


트랙에서 물러난 소니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그는 기묘한 논리에 사로잡혔다. 'F1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도박에서 이기는 게 더 쉬울 것'이라는 착각이었다. 그렇게 소니는 도박의 늪에 빠져들었고, 오랜 시간 방황하며 자신을 잃어갔다.


하지만 소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레이싱계로 돌아온 그는 내구성 레이스에 참여하고, 심지어 뉴욕에서 택시 운전까지 하며 자신만의 드라이빙 정체성을 되찾아갔다. 이 모든 경험이 그에게는 소중한 자기 발견의 시간이었다.


루벤과의 재회, 그리고 기적에 대한 질문


2025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Photo by Scott Garfield Courtesy Warner Bros. Pictures / Apple

적자에 허덕이는 F1 레이싱팀 APX GP를 운영하는 오랜 친구 루벤이 찾아와 F1 복귀를 집요하게 제의하고 있었다. 조용하고 논리적인 설득이 통하지 않으면 때론 통보가 나을 때도 있다. 루벤은 소니의 이름이 적혀있는 런던행 일등석 항공 티켓을 식당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자, 여기 런던행 1등석 항공 티켓. 난 지금 누구나 꿈꾸는 F1 레이싱 자리를 제안하는 거야."

그리곤 그는 소니의 등을 툭 치며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 시간 소니를 알고 있는 그였다. 우승에 대한 그의 결핍을 충분히 자극했으니 소니는 제안을 수락할 것이고 합류할 것이다. 소니의 어깨를 툭 치고 돌아서서 식당을 나가려는 루벤의 등 뒤에서 소니가 물었다.

"루벤, 기적을 본 적 있어?"

"아직!" 루벤이 강하게 손가락을 휘저으며 말했다.

"맞아, 나도 없어."

루벤은 소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다. 둘은 한때 F1에서 함께 달렸고, 우승을 꿈꿨지만 사고 이후 모든 것을 놓아버린 후로는 오히려 그런 꿈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해왔을 것이다. 긍정의 신호다. 그가 F1에 다시 돌아온다.


루벤이 떠난 후 종업원에게 소니가 질문을 던졌다.

"가까운 친구가 100% 확실하지만 믿기 어려운 너무 좋은 제안을 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종업원이 "돈을 많이 주나요?"라고 묻자, 소니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아니요, 돈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종업원이 다시 "그럼 뭐가 중요한데요?"라고 물었을 때, 소니의 침묵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그에게 정말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레이싱 그 자체였던 것이다.


"I need this.." - 병원 침대에서 터진 절규


부정 개조 사건으로 분노가 치솟던 날, 소니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위험한 레이싱을 펼치다 트랙에서 큰 사고를 당했다.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그를 찾아온 루벤은 30년 전 차트 기록을 읊어주며 냉정하게 판단을 내렸다. 더 이상의 레이싱은 무리라고, 팀에서 나가달라고 말했다. 그것은 진심어린 걱정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하지만 소니는 떠나려는 루벤을 불러 세웠다.

"...루벤, 잠깐만..나 이거 해야해(I need this)"

그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가득했다. 레이싱이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그의 존재 이유 그자체임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죽어도 좋다는 마지막 다짐


시즌 마지막 경기가 열리는 날, FIA의 명령에 따라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모두가 무기력해져있었다.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동료 드라이버 조슈아가 팀원들을 데리고 트랙 위 러닝을 하러 떠났다. 그때였다. 모두가 떠난 줄 알았던 소니가 트랙에 돌아왔다. 그를 본 루벤은 고개를 저으며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다.

"소니, 우린 우승할 수 없어. 그리고 난 너가 그 몸으로 레이싱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소니는 루벤의 어깨를 붙잡고 간절하게 말했다.

"난 말이지, 내 인생 마지막에도 차를 몰 거야. 그러고 싶어. 그리고 우승? 우리가 도전하지 않으면 당연히 우승도 없는 거지."

그 순간 소니는 예전처럼 능글맞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익숙한 표정을 본 루벤은 자신이 소니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는 듯이 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은 굵은 손을 맞잡고 서로의 의지를 다졌다. 그것은 단순한 악수가 아니라,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향한 마지막 도전에 대한 약속이었다.


트로피보다 핸들을 선택한 남자

흥미롭게도 소니에게는 우승컵을 손에 대지 않는 징크스가 있다. 아마도 우승에 대한 집착으로 망가져버린 과거를 의식해서일 것이다. 그에게 우승은 몰락과 같은 의미였다. 실제로 팀이 우승했을 때도 트로피는 루벤이 받도록 했다. 그에게 진정 중요한 건 우승이 아니라 드라이버라는 정체성을 갖고 도로 위를 달리는 것 그 자체였다.


승리의 순간, 다시 길을 떠나다


F1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소니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승리의 열기가 고조에 이르는 그 순간, 그는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와 또 다른 도전을 찾아 나섰다. 그것이 바로 그가 찾은 행복이었다. 달릴 수 있다면 끝없이 달리는 것.


소니는 그의 밴을 타고 멕시코 사막을 달리고 있다. 모래와 먼지로 뒤덮힌 경계도 정해지지 않은 언덕을 지나니 멀지 않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차를 세우고 먼지 바람이 잠잠해지자 소니가 차에서 내린다.

"여기서 드라이버를 구한다고 해서요." 오프로드 차량을 수리하고 있는 사람들 옆에 비스듬히 차에 기대어 있는 한 노인이 눈을 반쯤 뜬 채로 고개를 들어 보이며 묻는다.

"바하에서 운전해 본 적 있어요?"

"아니요"

소니가 답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남자가 말한다.

"우리는 페이를 많이 주지 못해요"

이 말에 소니는 웃어보이며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한다.


"괜찮아요. 그건 중요한게 아니니까"


그에게 중요한 건 돈도, 명예도, 안락하고 깨끗한 집도, 사랑스런 연인도 아니다. 그저 도로가 있고, 운전할 수 있는 차가 있으면 된다.


그렇게 유랑하며 지내는 삶 속에서 소중한 인연도 있었다. 길은 이어져 있고 평생 달릴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 인연이 닿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다만 집착하지 않을 뿐이다. 그가 Bad Luck이라 여기며 우승 트로피를 부정(不淨)한 것으로 여기듯이.


그렇기 때문에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 인연에 대해 여지만은 주고 떠난다. 그렇게 흡사 집시와 같은 삶이고 자신의 겉모습을 보고 남들이 뭐라해도 실력을 알아보고 자리를 내어주는 소중한 사람은 있으니까. 그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저 소음으로 여기며 그는 그가 잘 할 수 있고, 잘 하는 걸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소문쯤은 소음으로 여긴다.


그의 유랑생활이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우승을 하기까지 버티며 어려운 시간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끝을 보고 곧바로 다시 또 새로운 레이스를 찾아 떠나는 그의 삶을 말이다.


24시간을 한 대의 차량으로 여러 드라이버들이 운전하며 레이스를 완주해야 하는 데이토나 24시에 참가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중위권 이하로 떨어져 우승 가능성이 희박했던 상황에서 소니는 구원투수로 등판해 위험천만한 상황을 연출하면서까지 활약하여 팀을 우승하게 만든다. 그런 그가 다음 시즌에 함께 하지 않고 또 떠나는게 많이 아쉬운 매니저였다.


"나이 많은 몸으로 젊은 드라이버들처럼 무모하게 운전해서 우승을 따냈는데, 그렇게 또 시작하는게 말이돼?

("What kind of way is that in a race?, You just spent your whole life starting over, man")


그는 안다. 모두가 항상 그랬다. 처음에는 반신반의 했지만 그는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제 앞으로 고생하지 않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오랜 시간 편하게 보내면 좋을텐데 그는 그런 삶이 두렵다. 도로 위에서 핸들을 잡고 다시 레이스를 시작하는, 그런 도전하는 삶이 좋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어 매니저는 그를 밀어붙이지 않는다. 그저 손에 쥔 우승 트로피만 만지작 댄다. 소니도 그들의 아쉬움과 진정성을 알기에 매정하게 떠나고 싶지는 않다.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며 말한다.


"언젠가 또 뵙죠(I'll see you down the road.")."


때로는 더 진심을 담아 시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언젠가 우연히 다시 뵐 수 있을까요(Can I see you down the road).?"


오래되어 덜컹거리는 그의 숙소 겸 차량인 밴에 시동을 켜고 그는 다시 앞을 향해 전진한다.


Courtesy Warner Bros. Pictures / Apple Original Films


도전하지 않는 삶에는 행복이 없다


소니는 젊은 시절 우승에 대한 집착으로 불행한 사고를 당했고, 회의감에 빠져 오히려 우승 확률이 높은 빠른 지름길이라 착각한 도박에 인생을 탕진했다. 여러 번의 만남과 이별, 결혼과 이혼을 거치며 대인관계도 무너져버렸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는 결국 자신만의 행복한 길을 찾아냈다.


우리는 모두 각자만의 행복을 쫓는다. 그럼에도 정작 성장보다는 안정과 쾌락에 그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날씨가 궂은 날 자갈길을 맨발로 걷는 고통을 참으며 안식처를 찾아 떠나는 여행과도 같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행복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힘들고 어렵고 귀찮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설렘만이 행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소니도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레이싱을 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하고, 연구하며, 망가진 몸을 데워가며 카트에 오른다. 이 모든 것들이 그의 행복을 구성하는 소중한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그가 루벤에게 말했듯이, 도전하지 않으면 당연히 우승도 없는 법이다. 도전하지 않는 삶으로부터는 진정한 행복도 없다.


불확실함 앞에서 찾은 유일한 해답, 몰입


소니는 경기를 시작하기 전 손에 든 카드 뭉치에서 한 장을 꺼내 패를 보지 않고 바지 주머니 한쪽에 넣는다. 그리고는 절대 확인하지 않는다. 확인하지도 않을 패를 왜 꺼내느냐는 동료 드라이버 조슈아의 핀잔을 들어도 그저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별다른 답을 하지 않은 채 자리를 뜬다.


우승한 날과 패한 날에 따라 패는 달랐을 것이다. 레이스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불확실한 영역이다. 차 상태가 좋아도 질 수 있고, 드라이버의 실력이 뛰어나도 경기에서 패하기도 하니까. 어쩌면 그가 바지 주머니에 넣는 패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레이스를 펼치기 전 긴장감 속에서 오는 불안, 그리고 이겨야 한다는 극도의 부담감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그는 몰입의 순간을 경험하기 위해 레이스에 참가한다. 몰입의 순간에는 공간이 좁아지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평온함이 펼쳐지며, 마치 나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한다. 30년 전 예측할 수 없었던 불의의 사고 이후 그는 매일같이 공포와 불안과 싸워왔을 것이다. 종종 꿈속에서 반복되는 사고 장면에서 그는 매번 핸들을 잡고 트랙 위를 달리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미래를 알 수 없기에 그런 사고가 다시 재현되지 않는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어서, 소니는 다시 사고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도박판에서 이길 수 있는 좋은 패조차 승리를 보장하지 않으니까. 차라리 패 모양대로 결과가 그대로 나온다면 불안은 없을 텐데.


jalopnik.com | 'F1 The Movie' Is A Cinematic Spectacle That Must Be Seen In Theaters


레이스 도중 그는 지면에 닿아 달리고 있음에도 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순간 불안과 공포가 사라짐을 경험한다. 그런 몰입이 주는 순간을 다시 경험하고 싶은 그는 계속해서 레이스에 참가하고 끝없이 출발선에 선다.


"가끔 차에 있다 보면 모든 것이 조용해지는 순간이 있어요. 심장은 천천히 뛰고 평화로운 순간이죠. 난 모든 걸 볼 수 있고 어느 누구도 나를 해하지 못해요. 난 매번 차에 탈 때마다 그런 순간을 쫓고 있어요. 언제 다시 그런 순간을 경험할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 들거든요."


카드를 뽑고 결과를 보지 않는 것처럼, 그는 결과보다는 그 순간의 경험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희생할 수 있습니까?


"차를 몰다가 죽어도 좋다"는 소니 헤이스의 외침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모든 것을 걸 수 있습니까? 당신만의 유일하게 해낼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것을 해내기 위해 오늘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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