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사랑일까요?" 묻는 순간,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오래전에 한 팟캐스트에서 청취했던 사랑에 관한 강연 내용을 정리한 글이 있어 그 내용을 들려주려 합니다.
사랑에 대한 강연이었는데요. 첫 질문이 재밌었어요.
"사랑에 대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뭘까요?"
답은 간단했습니다. "이게 사랑일까요?"랍니다.
강연자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런 질문을 하는 순간, 이미 사랑이 아닙니다."
왜냐고요?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거든요. 걷다, 뛰다, 눕다처럼 그 자체로 완전한 행위죠.
진짜 사랑이라면 '이게 사랑일까?' 묻지 않습니다. 그냥 확 느껴지기 때문이죠.
사랑은 원래 실패하는 거래요.
"사랑처럼 항상 실패로 끝나는 모험은 없다."
이 말, 참 잔인하죠? 하지만 동시에 아름답기도 합니다.
사랑은 늘 새롭고 낯섭니다. 아무리 연애를 많이 해도 소용없습니다.
연애 고수? 그런 건 없습니다.
연애를 많이 한다고 사랑을 잘하는 건 아닙니다.
그건 그저 연애유희에 불과합니다. 설렘, 기쁨, 충만한 감정. 초기 증상이 너무 좋아서 반복하는 거죠.
진짜 사랑의 본질까지는 가지 못한 채로요.
미국 평론가 수전 손택은 이렇게 고백했대요.
"나는 네 명의 남자와 다섯 명의 여자와 사랑을 했다."
사랑 때문에 실수하는 게 아닙니다. 사랑 자체가 실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이상을 얻습니다.
사랑에는 이별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실패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많은 걸 얻을 수 있죠.
하지만 조심하세요. 모든 아픔이 성장은 아니니까
"아픈 사랑도 사랑이니까." 이런 노래 가사, 들어보셨나요?
이건 틀렸습니다.
그대 앞에 서서 내가 작아진다면,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자존감에 상처를 받는 건 내 몸의 한 부분이 괴사되는 것과 같아요.
내가 좋아져야 하는데, 내가 초라해진다면? 그건 아무 의미 없는 상처입니다.
그럼 의미 있는 상처는 뭘까요?
철학자들은 사랑을 이렇게 말했어요
니체: "사랑은 망치와 정으로 하는 것이다." 정으로 때려서 그 사람 안에 숨어있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거라고.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개발하는 거죠. 그래서 그 과정이 아프긴 합니다.
바디유: "두 존재가 맞부딪혀서 진리를 만드는 것."
진리가 뭐냐고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반짝이는 무언가입니다.
소크라테스: "서로의 영혼의 덕이 높아지는 것."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말인데요. 술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치고는 꽤 심오한데요.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여자는 그렇지 않대요.
왜일까요?
프로이트가 설명합니다. 이별할 때 우리는 세 단계를 거치는데, 부정, 분노, 슬픔이라고.
여자들은 슬픔의 단계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어요. 충분히 울고, 충분히 애도하죠.
반면에 남자들은 잊기 위해 게임하고, 일하고, 술 마셔요. 제대로 떠나보내지 못하는 거죠.
사람은 완성하지 못한 것에 더 집착합니다. "그녀가 여전히 날 사랑했으면..." 이런 생각, 결국 외로움입니다.
첫사랑 얘기를 자주 하는 남자를 만나면 알아두셔야 한답니다. 그 사람, 지금 외로운 거라고.
우리는 종종 착각을 합니다. 사랑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 나 자신을 사랑하는 착각을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롯데는 사실 별로인 여자였습니다.
베르테르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하인에게 태연히 권총을 건네주고, 베르테르 앞에서 종달새에 키스하고, 의미 없는 나비리본을 선물하죠.
소설 후반부로 가면 롯데는 3인칭으로 묘사돼요. 객관적으로 보면 별로라는 거죠.
개츠비의 데이지도 마찬가지. 물욕의 화신이었어요.
개츠비가 준 셔츠를 보고 운 건 물건이 아름다워서였고, 자동차 사고 후엔 책임을 전가했죠. 개츠비가 죽어도장례식엔 안 왔어요. 중요한 건 이거예요. 사랑할 가치가 있는 사람을 사랑하셔야 한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밀당 얘기.
밀당은 상대를 불안하게 만드는 전략이에요. 근데 그거 아세요? 밀당하면 영감이 안 나옵니다. 재치도 사라지고요.
사랑은 시소예요. 균형점이 저절로 움직이는 시소. 밀당으로 조작하려는 순간 시소는 부러집니다.
랭보가 말했어요. "사랑은 발명되어야 한다."
맞아요. 계산하지 말고 발명해야 한답니다.
"어떻게 하면 날 더 원하게 할까?" 이런 생각 말고, "내가 뭘 원하지?" 이렇게 물어보라고 합니다.
사르트르는 "그녀가 주체가 되었을 때 사랑했고, 객체가 되었을 때 사랑이 끝났다."
소모적인 밀당은 그만두세요. 중심엔 내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을 시작하는 데 나이는 없습니다. 부모를 떠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고민하는 사람은 두 부류입니다.
시련을 당해본 사람, 그리고 시련을 아주 많이 당해본 사람.
어느 쪽이든 괜찮아요.
사랑을 잘하는 사람은 사랑받을 가능성도 높대요. "사랑밖에 몰라도 돼요. 사랑이 그 이상을 알게 해주니까."
좋은 사랑은 항상 좋고, 항상 낯설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게 당연해요.
여러분께 묻고 싶네요.
지금, 사랑하고 있나요?
아니면 사랑을 기다리고 있나요?
둘 다 아니라고요?
그럼 이제 시작해보는 건 어때요? 어차피 실패할 겁니다. 하지만 그 실패가 당신을 더 아름답게 만들 거란걸 아시면 좋겠어요.
사랑은 그런 거니까요.
(참고 : 한귀은 교수의 연애 다상담,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