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다는 말의 함정

하라리의 책을 읽다가 생각에 빠진 밤

by 박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다가 멈췄다. 216페이지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과 단지 사람들이 생물학적 신화를 통해 정당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연스럽다', '부자연스럽다'고 말할 때, 그 기준은 정말 과학적인 걸까?


"자연은 허용하고 문화는 금지한다"


하라리가 제시한 경험법칙이 마음에 들었다. "자연은 가능하게 하고 문화는 금지한다." 생각해보니 맞다. 인간의 몸이 할 수 있는 건 다 자연스러운 거다. 우리 몸이 그렇게 진화해왔으니까.


다른 예를 들어 볼까. 인간의 몸은 다양한 것을 소화할 수 있도록 진화했는데, 각 문화는 특정 음식을 금기시한다. 힌두교에서 소고기, 이슬람에서 돼지고기, 또는 곤충 섭취에 대한 서구의 혐오감 등이 그 예다. 영양학적으로는 전혀 문제없는 것들이 문화적으로 "더럽다"거나 "부자연스럽다"고 여겨진다.


여성의 사회 참여도 마찬가지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인지 능력과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오랫동안 많은 문화에서 여성의 교육, 직업, 정치 참여를 제한해왔다. "여성은 원래 그런 일에 맞지 않는다"는 식으로 자연을 끌어다 쓰면서.


감정 표현에서도 볼 수 있다. 남성도 생물학적으로 눈물을 흘릴 수 있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데, 많은 문화에서 "남자는 울면 안 된다"거나 "약해 보인다"고 가르친다.


결국 우리가 "자연스럽다/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특정 시대, 특정 문화의 규범이었던 거 같다. 그걸 보편적 진리인 것처럼 포장하려고 '자연'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쓰는 거다.


'자연스럽다', '부자연스럽다'는 구분은 과학에서 온 게 아니라 권력을 쥘 수있는 집단 또는 힘의 논리로 좌우되는 집단으로부터 정의된거다. 그 중 종교가 가장 영향력이 높다. 신이 의도한 것에 맞으면 자연스럽고, 어긋나면 부자연스럽다는 식으로.


그러고 보니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것 중 상당수가 사실은 종교적 세계관에서 나온 거였다.


현상 유지를 위한 핑계


인간은 계속 변해왔다. 직립보행도, 언어 사용도, 옷 입기도, 요리해 먹기도 다 한때는 '부자연스러운' 변화였을 텐데. 더 웃긴 건 이들이 앞에서 동의한 "자연은 가능하게 한다"는 원칙을 스스로 어기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기술로 몸을 바꿀 수 있다면, 그것도 자연이 허용한 범위 안의 일이다. 그런데 이때는 갑자기 '자연'을 들먹이며 반대한다.


결국 이들이 말하는 '자연'은 자신들이 편한 현상유지를 정당화하는 도구일 뿐이다.


과학을 빌린 가치 싸움


생각해보니 양쪽 다 마찬가지다. 보수 쪽에서는 '자연의 질서'를 들먹이며 변화를 거부하고, 진보 쪽에서는 '자연의 다양성'을 내세우며 변화를 옹호한다. 둘 다 과학적 사실을 가져다가 자신들의 가치관을 포장하는 거다.


사실 이 논쟁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의 문제다. 과학은 그저 도구로 쓰이고 있을 뿐이다.


정답 없는 질문들


하라리의 경험법칙은 명쾌하다. 하지만 새로운 질문들이 생긴다. 자연이 허용하는 모든 걸 문화가 받아들여야 할까? 폭력도, 거짓말도, 배신도 다 자연스러운 건데 그것도 용인해야 할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자연 vs 문화'라는 흑백논리가 아니라, 생물학적 가능성과 사회적 가치 사이에서 적당한 선을 찾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나의 질문, 당신의 생각


40년 넘게 살면서 '자연스럽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정작 그 기준이 뭔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자연스러움'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기준을 정하는 권한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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