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니까 그런거야, 알면 괜찮아져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업무를 맡게 되는 경험이 있는가?
순간 머릿속이 하얘진다. 용어도 어색하고,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디까지 진행되는지 알 수 없다. 지금껏 수행했던 업무와 다른 내용이다. 마치 나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으니까 비행기도 운행할 수 있지 않냐고. 그저 지면 위 도로가 하늘 길로 바뀐 거 아니냐고. 그리고 잘 하지 않냐고. 뭐 그런 느낌이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밤잠을 이루지 못하며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이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실패하면 어쩌지? 회사에서 쫓겨나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 이런 일들이 계속 생긴다면 나는 직장인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불안을 키워간다.
하지만 며칠 후 비슷한 업무를 경험한 동료의 조언을 듣고, 구체적인 실행 단계를 알게 되는 순간, 그토록 거대했던 불안은 관리 가능한 과제로 변한다.
인간의 불안은 대부분 알지 못함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확실하지 않은 것, 예측할 수 없는 것,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불안을 느낀다. 내일의 면접 결과를 모르기 때문에 밤새 뒤척이고, 연인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의심하며, 미래의 경제 상황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저축 통장만 바라본다.
무지는 상상력과 만나 괴물을 만들어낸다. 실제보다 훨씬 크고 무서운 괴물을. 아이가 어둠을 무서워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보이지 않는 곳에 무엇이 숨어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을 켜는 순간 그곳에는 평범한 옷걸이와 책상만이 있을 뿐이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 『불안』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불안은 대부분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사회적 불안, 즉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은 결국 타인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근본적 한계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추측할 뿐이고, 그 추측이 대개 부정적 방향으로 기운다.
조던 피터슨은 『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 "혼돈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라"라고 조언한다. 그는 불안을 혼돈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본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 두려움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질서를 만들어내게 하는 원동력이다." 무지에서 오는 불안은 인간이 학습하고 성장하게 만드는 촉매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지에서 오는 불안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해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아는 것이다. 그리고 아는 것의 가장 강력한 방법은 몰입이다.
돋보기로 햇빛을 모으면 종이를 태울 수 있다. 흩어져 있던 빛이 한 점에 집중될 때 놀라운 힘이 생긴다. 몰입도 마찬가지다. 흩어져 있던 의식을 현재 순간,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집중시키면 불안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왜냐하면 몰입하는 순간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걱정이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에.
피아니스트가 연주에 몰입할 때 그는 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잊는다. 외과의사가 수술에 집중할 때 그는 다른 모든 걱정을 잊는다. 화가가 캔버스에 몰두할 때 그는 세상의 시선을 잊는다. 몰입은 불안을 태워버리는 돋보기의 초점과 같다.
불안 대부분이 무지에서 온다면, 그리고 그 무지의 상당 부분이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것이라면, 해결책은 명확하다.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현재뿐이다.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 이 글을 읽고 있다는 것. 이런 명확한 현재의 사실들에 의식을 고정시킬 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은 자연스럽게 약해진다.
몰입은 현재에 뿌리내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무엇인가에 깊이 빠져들 때 우리는 시간의 흐름도 잊고, 불안도 잊는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곳에 서 있기 때문이다.
결국 불안은 무지의 그림자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현재라는 빛 아래서 사라진다. 돋보기로 빛을 모으듯 의식을 현재에 집중시키는 몰입의 힘. 그것이야말로 불안을 극복하는 가장 근본적인 해답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