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에 대한 책임, 이거 당연한거잖아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결정을 미루는 사람이 되었을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면 직접 나가야 했다. 전화를 걸어 주문하려면 메뉴를 외워야 했고, 주소를 정확히 말해야 했다. 어색한 통화가 싫어서 그냥 나가 먹곤 했다.
시골 사무실에서 야근하던 어느 날이었다. 밤 10시가 넘어 피자가 먹고 싶어졌는데, 가장 가까운 피자집도 차로 30분은 가야 했다. 전단지도 없었다.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 있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신지식인 선배가 말했다.
"야식을 인터넷으로요?"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로 그랬다. 메뉴가 사진으로 나와 있었고, 클릭 몇 번이면 주문이 끝났다. 전화 통화도 필요 없었다. 신기했다. 그리고 편리했다. 전화하지 않아도 된다니. 주소를 불러주며 마을 초입에 있는 정자나무와 김씨 아저씨네 배나무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니. 흔히 말하는 '테크놀로지'였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어떤가? 배달앱을 켜고 몇 번 터치하면 30분 뒤 문 앞에 음식이 도착한다. 현금도 카드도 필요 없다. 문만 열어주면 된다.
편리해졌다. 하지만 뭔가 잃어버린 기분이다.
그 '뭔가'가 무엇인지 한참 뒤에야 알았다. 바로 선택하는 힘이었다.
세상에는 정보가 넘쳐난다. 유튜브에는 모든 것에 대한 리뷰가 있고, 블로그에는 비교 분석이 가득하다. 선택지는 무한히 많아졌는데, 정작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
점심 메뉴를 정하는 것조차 어렵다. 배달앱을 열면 수백 개의 음식점이 나온다. 별점을 보고, 리뷰를 읽고, 가격을 비교한다. 그러다 보면 점심시간이 끝나 있다.
스티브 잡스가 "고객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고 한 말이 이해된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지만, 동시에 선택의 고통도 떠안게 되었다.
왜 이렇게 결정하기 어려워졌을까?
완벽한 선택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작은 실수도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잘못된 선택은 곧바로 후회로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변수를 고려하려 한다. 모든 가능성을 따져본다. 완벽한 답을 찾을 때까지 기다린다.
하지만 완벽한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고민은 '할까, 말까'로 귀결된다.
할까? →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말까? → 놓칠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두려움과 아쉬움 사이에서 우리는 머뭇거린다. 결정을 미룬다. 시간이 지나 선택의 여지가 없어져서야 어쩔 수 없이 움직인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결정을 미루는 것 자체가 하나의 선택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다.
정말 문제는 선택 그 자체가 아니다. 선택의 결과를 책임지기 싫어하는 마음이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고, 나쁜 결과가 나오면 '운이 나빴다' '환경이 안 좋았다'고 말한다.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성숙한 어른이라면 자신의 선택에 책임져야 한다. 좋든 나쁘든 그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오늘 점심 메뉴를 5분 안에 정하기. 주말 계획을 미리 세우기. 하고 싶었던 취미 하나 시작하기.
작은 선택들이 쌓여 큰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출판업계에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영미 에디터는 세바시에서 용기에 관한 강연을 했다. 워낙 어린 시절부터 약한 체력이라 뭐 하나 제대로 하기 어려웠는데, 어느 날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운동을 늘려나갔더니 철인3종 경기까지 소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상하게 체력이 좋아지니 용기가 생겨 다양한 프로젝트에 도전할 수 있었다고.
"체력 하나만 달라져도 인생의 많은 것이 변합니다."
작고 왜소한 몸이 콤플렉스였던 그녀가 자전거 종주, 철인경기, 마라톤에 도전했고, 체력을 기르면서 동시에 용기도 키워나갔다.
용기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작은 도전들을 통해 조금씩 만들어진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통과 어려움이 찾아올 때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선택도 마찬가지다. 오늘 잘못 선택했다면 내일 다시 선택하면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 짜장면을 먹었으면 언젠가는 짬뽕을 먹을 날도 온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선택하는 것이다. 미루지 말고, 완벽을 추구하지 말고, 책임질 각오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만들어갈 내일을 기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