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철 Jul 25. 2018

#25 <방향>

머리와 심장은 왜 항상 어긋날까?

01 | 수많은 선택이 만들어낸 지금의 나


회사에서 지역 이동으로 대전, 세종에 정착한 지 작년 9월 이후로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어제 일이 터졌다. 벌써 세 번이던가.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때가. 사람들이 왜 그런지 모르겠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같이 잘해볼 생각은 안 하고 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지. 내가 조직을 파괴하려 온 것도 아니고 나도 새로운 분야에서 다 같이 잘해보고자 하는 건데.. 모르니까 못하고 안 하고 있던 거지, 알려주면 되지 않나. 아마 본인도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당했던 모양인데, 그래도 그렇게 큰소리치면서 감정을 드러내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까지 해도 되는 건지. 안 그래도 일이 맞지 않는 것 같아 매일매일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마냥 하루하루 묵묵히 버티고 있었는데,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사건이 터졌다. 나는 일 보다는 누구와 무슨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사람이다. 현실을 따지자면 따박따박 월급 잘 나오고 회사는 탄탄한데 행복한 고민 한다고 한다. 이성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게 회사 생활인 걸 모르나. 그렇게 좋은 환경이면 왜 매일 퇴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날까.


난 어렸을 때 그리 유복한 환경은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잘 사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집에 가면 어머니가 맞이해주는 풍경을 무척이나 그리워했다. 그림도 잘 그렸고, 노래도 잘 불렀다. 근데 춤은 못 췄다. 초등학교 시절, 학원 선생님의 추천으로 백일장에 나가보라 했지만, 부끄럽고 자신이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팝송에 빠져 살았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는 에릭 클랩튼의 <Tears In Heaven>과 015B의 <슬픈 인연>을 듣고 기타를 독학으로 배워 연습했다. 축제에 나가 밴드의 보컬로 실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여기까지 보자면 당연히 인문 예능계로 대학교를 갔겠구나 짐작할 수도 있지만, 난 공대를 선택했다. 음표보다는 숫자를, 글보다는 공식을 썼다. 돈을 벌기 위해선 당연히 그래야 했다. 그래서 개발 엔지니어로 회사에 입사했고, 지금은 철저히 사업성을 따지고 관리를 하는 업무를 보고 있다. 분위기와 사람을 좋아하고 다소 감성적인 내 감수성을 숨기며 살아왔다. 


내 인생의 방향은 머리와 심장이 어긋난 채로 삐뚤빼뚤 서로 싸워가며 우상향으로 진행해왔다. 

어떤 길을 선택하던 목적지는 같겠지
 
 




02 | 남이 바라는 대로 살다 보면 성공한다는데


전에 후배가 본인이 다니는 교회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내게 이야기해줬다. 나름 업계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 있는데 본인의 성공 비결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봤단다. 탁월한 사업성, 뛰어난 전략, 끊임없는 노력 등 여러 가지 답변이 나왔는데, 본인은 모두 "땡"이란다. 본인은 솔직히 여러 면에서 뛰어난 게 없단다. 그런데 남들이 좋아하는 걸 하다 보니 자연스레 성공의 반열에 오르더란다. 예를 들어 본인이 고집하는 패션을 버리고 남들이 멋있다는 옷을 입어보니 모두가 칭찬일색이고 덩달이 기분까지 좋아져서 자신감이 생겼고, 그게 사업의 성공으로 이어졌다는 거다. 내 입장에서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논리이다. 


나도 그렇게 살아온 거 같다. 남들이 좋다 하는 안정적인 길만을 선택해왔다. 가슴보다는 머리가 이끄는 삶 말이다.


03 | 서른 후반, 방향을 틀어도 되는 나이일까?


솔직히 말하면, 지금 회사에서 마음을 못 잡겠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어도, 그간의 관성이 있어 자꾸 현실과 타협하게 된다. 


'대출금은 퇴직금으로 갚으면 되잖아, 근데 좀 남겨둬야 하는 거 아니야?'


'당장 벌이가 없는데, 통신비, 관리비, 대출금은 어떻게 할 거야?'


'금방 취업이 될까?'


'취업을 운 좋게 빨리 해도 똑같은 환경 또는 더 안 좋은 환경이면 어쩌지?'


'부모님 용돈을 드리고 있는데, 안 드려도 생활이 가능하실까?'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매일 밤 잠을 설치게 한다. 이제 내 나이 서른여덟. 서른 후반이다. 40대는 이직 시장에서 헤드헌터들이 꺼려하는 나이라던데, 회사 입장에서는 돈이 많이 들어가고 차라리 그럴 바엔 더 싼 신입을 채용하는 게 낫다고. 그런데 인생 50대 후반에 대부분 은퇴를 한다고 가정하면, 앞으로 20년은 더 해야 하고 많은 날이 남았는데, 너무 억울하다. 나이 먹은 게 억울하다. 가끔은 진지하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나중에 내 자식에게 말로만 도전을 강요할 순 없지 않은가. 실패를 보더라도 그 실패는 인생의 마이너스가 되진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백수생활이 장기화되었을 때 나 자신을 비하하고 다시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나머지 인생을 후회만 하다 늙어버린 그런 초상화로 기억되긴 싫다. 사실 그게 더 두렵다. 




언젠가는 이 고민을 끝내야 할 텐데.




답이 없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나는 퇴사를 외치며 잠이 들고 날이 밝으면 회사에 어김없이 출근한다.

작가의 이전글 #24 <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