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철 Oct 31. 2018

#26 <애완>

길들여진 걸까? 선택한 걸까?

01 | 내 목줄은 누가 채우는가


애완(愛玩) : 동물이나 물품 따위를 좋아하여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거나 즐김.



요즘 나의 유일한 낙은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것. 근데 요 것이 꾀를 쓰는 게 풀 냄새를 맡을 때 가자고 줄을 당기면 팽팽해지도록 움직이지 않는다. 여간해선 한 발짝 내딛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면 나도 지쳐서 '에라 모르겠다' 싶어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땐 줄을 풀어놓는데, 이후로 내 옆에 딱 붙어서 잘 따라온다. 오히려 줄을 풀면 잘 따라오지 않는 게 정말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도 말썽 안 피우고 멀리 달아나지도 않고 내 옆에 착 달라붙어 오는 거 보면 그래도 스스로 발을 내딛는 게 더 좋은가 보다. 비록 줄은 내가 채웠지만 그 녀석 스스로 줄을 푼 것이다.


좀 가자! 해도 고집이 세다.
 
직장생활 어언 10년 차가 다 되어간다. 내가 처음 진급했을 때 나 스스로 업무에 있어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 직급에도 여전히 줄에 묶인 강아지 마냥 하라는 대로 해야만 했던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뭔가를 선택해서 나아가는 일은 좀처럼 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새로운 접근법을 들고 오는 후배들을 외면하는 일도 있었다. 보고서를 만들 때도 내 생각은 최소한으로 상사가 좋아할 만한 말들을 문서에 담았다. '어떻게 설명할까?'보단 '어떻게 하면 혼나지 않을까?'만 생각했다.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남이 보기 좋을 문서는 인정을 받는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누군가의 '애완 직장인'이 되어버린다. 반려견 '아지'의 견생 목적은 주인으로부터 1년 365일 24시간 내내 사랑받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아지'도 스스로 목줄을 불편해한다.



02 | 애완 직장인이 되지 않으려면


여러 번 생각해본다. 내가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 있었던가. 몰라서 두려운 거지 알면 어렵지 않다. 계속해서 탐구하고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 대해 충분히 남들에게 자신만의 논리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쉽지 않다. 글을 쓰고 있는 나 조차도 말만 앞섰지 직장 내에선 그러지 못했다.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하고 고민하면 그냥 눈치만 본다. 여담이지만 조선 시대 최악의 왕으로 평가받는 '선조'는 어려서부터 눈치가 빨라 선왕의 눈에 들었고 결국 그 능력으로 왕이 된다. 눈치가 빠르다고 좋은 건 아니다. 비록 내가 내린 결정이 나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오더라도 판단할 때만큼은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 목줄을 풀어야 한다. 그래야 자유롭고 여유 있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25 <방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