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미국 CIA 소속 맷(조슈 브롤린)은 자국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 문제에 개입하기로 한다. 은밀하고 더럽게. 복수와 실력을 갖춘 전직 멕시코 검사 알레한드로(베네시오 델 토로)는 유명한 갱단 두 곳을 서로 자극하여 자멸시키려는 그의 계획을 받아들인다. 알레한드로는 자신의 가족을 죽인 칼리 카르텔에 대한 복수의 완성을 꿈꾸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일로 계획은 틀어졌고, 알레한드로는 작전의 일환으로 납치한 반대파 조직 두목의 딸, 이사벨라(이사벨라 모너)와 함께 물 한 방울 없이 건조한 사막을 헤매게 된다. 가까스로 죽을 위험을 넘기지만 왠지 이 친구는 아직 어리고 살리고 싶다. 그런데 앞이 보이지 않는다. 사막 너머 국경이 있고 그곳만 넘으면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확신이 안 선다. 뭐 하나 진심으로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세계는 믿음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국경 너머엔 행운은 없어'
그가 멀리 해가 지고 있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말한다. 자신의 운명도 노을과 함께 사라질지도 모를 두려움이 둘 사이를 휘감으며 지나간다. 어둠이 대지위에 낮게 깔릴 때 둘은 언덕을 내려온다. 낡은 옷차림을 하고 일을 마치던 한 남자를 발견하고 알레한드로는 본능적으로 총부리를 그에게 맞춘다. 지친 행색을 하고 힘겹게 두 손을 올린 그에게 위험이 없다고 판단하자 공손히 도움을 청한다.
'우리는 길을 잃어 오랜 시간 먹지를 못했는데.. 조금의 음식과 전화를 도움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 집으로 가시지요.'
아직 경계를 풀지 않은 남자가 하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답한다. 알레한드로와 이사벨라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하곤 그를 따라나선다.
'고맙소, 근데, 이름이 뭐요?'
'앙헬.'
'앙헬'. 스페인어로 '천사'라는 뜻이다. 국경 너머엔 행운이 없을 거라 했던 알레한드로. 그는 절망의 끝에서 행운을 만났고 천사의 대접을 받았다. 작전을 제시한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보장해줄 수 없었고, 생면부지 처음 본 노동자에게서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가족 몰살에 대한 복수의 최종 완성을 나머지 인생의 목표로 살아온 그. 앙헬이 건넨 한 모금의 물과 음식으로 잠시나마 긴장을 푼다. 천사를 만난 알레한드로는 과연 지옥 같은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영화 <시카리오 : 데이 오브 솔다도>는 2015년 개봉한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의 속편이다. 긴장감 있고 촘촘한 플롯으로 유명한 '테일러 쉐리던'이 각본을 썼다. 전편이 인물 간의 갈등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번 편은 알레한드로의 감정 변화를 주목했으며 '복수와 용서'에 대한 키워드를 장착했다. 알레한드로는 자신의 가족을 몰살한 조직의 반대파 두목의 딸도 같은 족속이라 마땅히 그 자리에서 죽여야 하지만 쉽게 그러질 못한다. 생명을 대하는 인간의 본성이 의식 위로 드러나는 순간 복수는 얼굴을 달리한다.
서로 낄낄대며 살가운 관계는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멧의 시카리오(스페인어로 자객이라는 뜻)되어 준 알레한드로. 작전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멧은 복수를 다짐하고 건조한 사막의 한 도로 위를 질주하는 카르텔 조직원 무리를 몰살시킨다. 이성을 잃은 채 모든 무기를 동원하고 총알이 다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총을 난사한다. 분노는 에너지를 싣고 복수를 낳는다. 분노 위에 군림한 복수는 예리한 칼날 같다.
음악을 들으며 평화롭게 운전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뒤에 차가 빵빵거리며 상향 등을 올리고 난리다. 서로 얼굴 보며 말할 수 없으니 오해가 있는 듯하다. 창문을 내리고 입술이 씰룩거린다. 아마 쌍시옷(ㅆ)을 사용한 듯 보인다. 맞다. 그거다. 억울하다. 복수하고 싶다. 오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빨리 가다가 저승길로 빠지라고 말하고 싶다. 갑자기 타이어가 펑크 나서 차가 고장 나길 바란다. 분노의 전개가 잔인한 결말로 치닫는다. 차는 멀리 떠났고 눈앞에서 사라지자 이내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리곤 생각한다. '제 운명대로 살겠지'.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빅토르 위고는 '복수는 개인의 일이며, 벌은 신의 일이다'라고 하였다. 인간은 제 의지로 태어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어찌 보면 탄생 자체가 실수이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더 많은 실수를 하며 살아간다. 신은 인간이 완벽해지길 대신 감정을 선물했다. 에덴의 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자신들의 벌거벗은 보았을 때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지금 거울 앞 내 몸만 봐도 충격인데. 감정은 종종 자괴감을 들게 한다.
이성적인 사람. 논리적인 사람. 감정이 철저히 배제된 판단. 감정에 충실한 사람은 아마추어라 취급받기 일쑤고 건조하고 눈에 보이는 구조적 틀만이 인정받는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면 된다. 내 눈앞에 보이고 증명 가능하게 하는 것. 과학이 존재하는 이유다. 과학은 감정 자체보다 감정이 일어나는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내 분노와 행복이 일어나는 과정을 물질적으로 해석해준다. 당이 떨어지면 괴팍해지는 나를 이성적으로 설명해주면 난 문득 내가 낯설게 느껴진다.
어차피 이성도 감정이 기초 것이다. '희노애구애오욕'으로 대표되는 칠정은 인간의 자연적 감정을 일컬으며 성리학의 오랜 학문적 주제가 되었다. 인간의 감정을 이성적인 학문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감정이 없다면 복수 따윈 없겠지. 행운도 없겠지. 이렇게 생각하니까 괜히 삶이 퍽퍽하게 느껴진다. 욕심만 잘 다스리면 애초 복수란 감정은 없을 텐데.
순간순간 떠오르는 마음의 소리를 다스릴 줄 안다면 분명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겠지. 카페에서 파는 케이크 한 조각. 내 기분을 좋아지게 할 테지만 건강에는 안 좋다. 건강에 안 좋지만 언젠간 먹겠지. 그럼 지금 먹고 다음에 안 먹으면 되잖아? 설득력 있다.
아, 다시 감정에 휩싸였다. 괜찮다. 다들 그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