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죽거리 잔혹사>
영화가 곧 현실이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던 시절. 내 주변엔 전설들이 많았다.
'누군 새우과자 먹으면서 김경호의 <금지된 사랑>을 부른대.’
‘누군 17대 1로 싸워서 이겼대.’
‘누군 기타에 손만 스쳤을 뿐인데 스스로 연주가 되던데?.’
그 시절 전설과 영웅이 많았다. 근거와 증빙은 없었지만 딱히 반론은 없었고 그냥 그렇구나 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곤 언젠간 그런 뒷 담화의 주인공이 되길 바랐다. 사내들의 영웅담은 그러했다. 전설을 부정하면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다. 명분과 폼이 우선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작은 사물놀이 동아리에서 임원직을 맡고 있던 나와 내 친구는 바다를 찾았다. 태평양, 대서양, 심지어 동해도 아닌 곳. 햇살이 피부를 그을리는 여름 시즌도 아닌 찬 바람만 얼굴을 베며 지나가는 겨울. 서해의 작은 해수욕장. 서로의 신발을 든 연인들의 행복한 웃음소리를 멀리하고 남자 둘이 해변에 섰다. 모래사장 위로 바닷물이 우리와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폭신한 모래 위로 회색 푸른빛을 반사하며 얕은 파도가 치고 있었다. 흰 게거품을 품으며 조심스레 모래사장 위에 서있는 신발 가까이 왔다 갔다 한다. 파도의 움직임은 경쾌했고 오가는 소리는 리듬이 있었다. 가끔씩 멀리 날아가는 갈매기가 ‘꽤액’하며 소리를 낼 때면 짠 바다 냄새와 함께 보물을 가득 실은 선박이 보이는 듯했다.
아직은 파도가 저 멀리 있다. 바다 끝 수평선을 바라봐도 여유가 있다.
둘은 별로 말이 없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두 사내는 길게 늘어선 해안선을 바라보며 바람을 곧바로 안아버렸다. 파도가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다. 친구가 말을 꺼낸다.
‘남자는 바다를 바라보며 살아야 한대.'
‘그렇지. 우리 사나이는 바다와 함께 성장하는 거야’
어디서 보고 들은 것도 없는데 꽤나 멋있어 보이는 말을 서로 지껄였다. 1492년, 콜럼버스가 먼 바다로 나아가면 떨어져 죽을 수도 있다는 지배적인 믿음을 뒤로하고 항구를 떠났을 때, 그의 선원들은 두려움과 불안을 데려왔다. 미래는 불확실, 불안, 불안정했고 현재는 따분함과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매시간 일정하게 요동치는 파도를 타며 그저 묵묵히 앞을 향해 나아갈 뿐이었다. 마침내 그들은 미지의 대륙을 발견했고 두려움이 이내 곧 희망과 용기로 바뀌었다. 그 순간만큼은 그랬다.
우리 스스로 어른이라 부르기엔 아직 피부는 뽀송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장착한 10대 소년 둘은 파도를 피하지 않기로 한다. 마침 파도가 우리가 발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파도의 놀림에도 용기 있는 척, 두 남자는 먼저 피하지 않는다. 서로 어디선가 들었을 멋진 말들을 주고받는다. 어떤 시련이 와도 피하지 않고 마주 하기로 한다. 비장하게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입술을 굳게 닫으며 끄덕인다.
발 바로 앞에 잔잔했던 파도가 갑자기 쑤욱 들어왔다.
‘이런, 신발 젖었네. 양말도 젖었잖아, 쳇.’
바닷물에 젖은 신발 위로 한 발자국씩 움직일 때마다 모래가 그 위를 가득 덮었다.
발걸음이 질척인다. 신발 위로 짠내가 진동한다. 저 멀리 수평선만 바라봤나 보다. 바로 발 밑에 신발 젖을 줄 몰랐다. 아니 친구가 먼저 달아나길 바랬다. 그렇게 전설이 되고 싶었다. 계획은 실패했다. 남자고 뭐고 젖은 신발이 찝찝하다. 그날 하루 망쳤다.
쓸데없는 호기가 기분을 망쳐버렸다.
그날 소금에 절여진 신발은 오래가지 못했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나머지 걱정과 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는 믿음이 있던 시절. 대학을 나와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고 세뇌받은 시절. 공부보단 무술이 더 좋았던 소년이 있었다. 이소룡 아니 브루스 리(라고 해야 매니아적 충성심을 보일 수 있을 것 같다)를 좋아했고 그와 같은 '전설'이 되고 싶었다. 아들이 공부로 성공하여 운동하는 자기보다 더 잘 나길 바랬던 아버지. 아버지의 기대와 본인의 꿈 사이에서 그는 고민한다. 인간은 이성과 감정이 싸울 때 고민하고 방황한다.
현수(권상우 님)는 자기보다 한 살 많은 은주(한가인 님)를 좋아한다. 그녀는 친구 우식(이정진 님)의 관심을 받고 있고, 괜히 우정이 깨질까 봐 고백하지 못한다. 사내라면 사랑보다 우정을 우선해야 하며 그것이 바로 '강호의 도리'라서?. 그건 모르겠다. 수업을 빼먹고 소소한 일탈을 즐기는 10대 소년소녀들은 신나는 리듬 아래 춤을 춘다. 음악은 Eruption의 <One Way Ticket>. 사랑에 실패(했는지 고백에 실패했는지 모를)하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한 남자가 편도행 티켓 한 장을 들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왕복 티켓이었다면 현수가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할 텐데.
그녀에 대한 그의 마음도 편도행이다. 전설이 되고 싶은 사내는 고백하면 안 되었다. 마음이 괴롭다. 그래 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도 지금까지 해왔던 룰을 깨보고 싶다. 지금껏 그가 선택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운동도 아버지가 시키니까 했고, 공부도 선생님들이 하라니까 했고, 싸움도 하면 안 되었다. 판을 엎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 떡볶이집 아줌마도 그랬다.
'현수 하고 싶은 거 해'
그는 그동안 표현하지 못한 답답함을 쌍절곤에 담아 미친 듯이 휘둘렀다. 그리고 그 대가는 잔혹했다. 아버지가 피해자 부모들께 무릎을 꿇었고, 학교에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버지는 의외로 아무 말이 없으셨다. 차라리 화를 내고 때려줬으면. 앞을 먼저 걷다 갑자기 뒤를 걷고 있던 나를 본다.
'야, 근데 이소룡은 대학 나왔대냐?'
모두 세상의 중심은 본인이며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고 한다. 선택은 어렵지 않다. 그 선택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무제한적인 책임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책임의 무게는 결과에 따라 가벼울 수도 무거울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그 무게는 견뎌야 한다는 의무는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인간은 진실 앞에 죄인이다. 그 크기를 축소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현수는 그 책임을 기꺼이 감내하기로 한다. 인생 그래프는 본인이 그리던 방향과 다소 차이가 나지만 목적지는 같다. 어찌 되었든 살아내는 것.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낸다.
참고로 이소룡은 대학 중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