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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Sep 07. 2019

#12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

<12가지 인생의 법칙> 조던 피터슨



가족의 아픔을 대신할 수 없는 고통


  조던 피터슨 교수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2명의 자녀가 있다. 그중 딸 미카일라는 어려서부터 다리에 문제가 있었다. 별 조짐이 없어 보이다가 어느 날부터 큰 고통을 호소했고 그때부터 가족은 그녀와 함께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어린 나이에 이른 관절염에 대한 치료과정은 해결책이 마땅히 없었다. 그렇기에 본인이 느끼고 있는 고통(때론 아편 성분의 약을 먹어야만 잠을 들 수 있었던). 그리고 그걸 지켜봐야 하는 가족의 슬픔과 안타까움. 모든 부모가 그러듯 차라리 본인이 아팠으면 하는 심정이 더 컸으리라.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한 것에 대한 본능적인 미안함도 들었을 거다.


  몇 해전 인기리에 방영된 <응답하라 1988>에서 유독 심장이 약해 어렸을 적부터 병치레를 하고 인공 판막을 삽입하는 큰 수술을 받았던 정봉이와 그의 부모 이야기가 나온다. 정봉이는 주기적으로 인공 판막을 교체해야 하는데 매번 하는 수술이지만 부모와 동생 정환은 걱정스럽다. 혹시라도..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사고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부모는 그가 깨어나길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눈을 뜬 정봉이를 보며 끓어오르는 울음을 참지 못했던 어머니 '미란'은 정봉이의 손을 잡으며 눈물을 흘린다.


  '미안해, 정봉아. 엄마가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사랑하는 가족 구성원이 고통을 느낄 때면 차라리 내가 대신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리고 부모 입장에선 본인의 약한 유전자를 물려준 것에 대한 자책감까지 이어진다. 난 아직 부모가 되어보진 못했지만 나의 행동과 말을 따라 하고 성장해가는 자식은 분명 신기하게 느껴질 거 같다. 단순한 신기함을 넘어 생명의 경이로움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 거다. 그런 나의 하나뿐인 자식이 아프다면 그에게 연민을 넘어 세세한 감각 하나하나까지 느끼게 될 거 같다.


  다행히 현재는 완치를 하고 결혼하여 그녀의 좋은 점을 다 물려받은 딸을 낳고 살고 있다 한다.



삶의 문제로 고통스러울 때마다 지켜온 규칙


  <네이비씰 승리의 기술>은 미국의 비밀 특수부대 네이비씰의 대원들의 강한 정신력 비결에 대한 이야기다. 책에서 포탄이 쏟아지고 들리는 총소리에 내 몸 일부를 관통할지도 모를 전투 속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오너십에서 비롯되는 '침착함'이라고 했다. 어떤 상황이든 침착함을 유지하고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라는 말은 매우 일반적이고 당연스러운데 실천에 옮기긴 쉽지 않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보자. 그의 딸이 어떤 치료를 받아야 좋을지 모르고 약물치료로 인한 고통에 잠을 못 이룰 때가 많았던 힘든 시간에도 그가 지켜온 몇 가지 원칙이 있다.


  먼저, 오로지 그 문제만을 생각할 시간을 따로 두었다. 인간은 끊임없이 생각하는 존재다. 대부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부정적인 나선의 사고에 빠진다. 대개 그 끝은 인간 본연의 질문이자 답인 '죽음'인 경우가 많다. 시간을 잘게 자르고 허용된 시간에만 그 문제에 몰두하기로 했다. 그리고 남은 치료를 위해 계획을 세우는 데에 온 힘을 쏟는다. 사람은 계획이 있을 때 불안을 덜 느낀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 가족은 큰 홍수를 맞아 집이 잠겨버렸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아들 '기우'의 질문에 아버지 '기택'은 이렇게 말한다.


  "무 계획. 무 계획이 계획이야"


  아이러니해도 무계획도 계획의 일부이다. 무계획이라는 계획이라도 세워놔야 황량한 사막 위에 펼쳐진 모래 위에서도 '누군가 나를 발견하고 도와주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이 생긴다.



출처: 영화 <기생충>, 씨네 21


  다음으로, 저녁이나 밤에는 가급적 그 문제에 대해 얘기도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잠을 잘 자야 생각이 명료해진다. 이렇게 힘을 아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전쟁이므로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고 더 큰 상황을 맞이할 때 싸울 힘을 모았다. 우리가 롤플레이 게임을 할 때 최종 보스를 만나기 전 수많은 중간 보스들을 만난다. 낮은 단계의 보스들을 물리치면서 노하우와 경험치를 쌓게 되고 자신감을 얻는다. 그 모든 에너지가 쌓이면 비로소 최종 보스와 1:1로 정면 대결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최대한 에너지를 아낀다.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일을 한다. 그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질 때면 애니메이션 <심슨가족>을 1.5배 빨리 재생해서 보곤 했다. 그렇게 별 다른 이성의 개입 없이 만화를 보다 보면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고. 좋아진 기분으로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의지를 만들었다. 내 안의 본능에 충실하다 보면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다. 


  며칠 전 계속되는 회사 불합격 소식으로 마음 안정이 쉽지 않았다. 특히 아침 일어났을 때와 저녁 해가 질 때면 더 심해졌다. 앞이 보이지 않고 뭘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할지도 몰랐다. 분명 출입구는 앞에 있는데 칠흑같이 까만 방에 홀로 남겨져 더듬더듬 그걸 찾아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럴 때면 난 밖으로 나가 걷는다. 음악을 듣고 동기부여 영상을 시청해도 처진 마음을 쉽게 올리기 힘들었다. 그러다 문득 몇 해전 낄낄거리며 들었던 팟캐스트가 생각났다.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이었다. 


  그 둘은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까지 꽤 잘 나가는 개그우먼이었다. 그러다 우리의 기억에서 점점 잊혀갔다. 어느 날 그 둘이 모여서 팟 캐스트를 개설했다. 공중파도 아닌 팟 캐스트에 말이다. 전문 인력도 없어서 송은이 님 본인이 직접 오디오 시스템을 구입했고(약 200만 원 가까이) 예전에 같이 일했던 작가들에게 부탁해서 파트타임을 부탁했다. 제대로 된 오프닝 시그널 음악이 없어서 예전에 종영한 홍진경 님의 미방송 음악을 재생했고 '홍진경' 이란 이름이 나오는 타이밍에 '송은이 김숙'을 외쳤다. 


  공중파에서 보여주었던 방식과 다르게 진행된 방송은 기대 이상의 화제를 불러 모았다. 표현의 자유를 맘껏 분출하며 쏟아낸 이야기들은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그들이 다시 대중매체로 떠오르는데 큰 역할을 했다. 단지 좋아하는 일을 시작했을 뿐인데. 남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하는 걸 좋아했을 뿐인데. 과장스럽게 웃기지도 않아도 되고(그렇게 하지도 못하지만) 고민 사연을 듣고 주변 지인에게 전화해 마치 친한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듯한 콘셉트가 먹힐지 아무도 몰랐다. 때론 유의미하고 원대한 목표가 있는 일을 억지로 하는 것보단 무의미해 보일지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삶에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다. 대부분 그 기회는 좋은 일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축적된 긍정적 에너지는 기회가 왔을 때 큰 힘을 발휘한다.



길을 가다 고양이를 만나면 쓰다듬어 주어야 하는 이유


  살아가며 고통스럽기까지 한 시간들을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면 마음이 다소 가벼워진다. 어려움에 빠질 때면 잠시 그 상황을 벗어나야 해결책이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다녀온다. 현실과 다른 장소에 나를 놓으면 그 조차도 인생의 한 일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매번 여행을 다닐 수 없지 않은가. 대신 삶의 순간을 쪼개 놓고, 시간을 짧게 끊어 생각하면 여러 인생의 장면을 맞이할 수 있다. 1년이 막연하다면 한 달. 한 달이 걱정되면 하루. 하루가 불안하다면 시간 단위로 좋은 생각을 한다. 사람은 생각 외로 강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다 보면 더 큰 문제를 마주할 용기를 얻는다.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사소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삶의 문제 해결에 몸과 마음을 긴장시킨 상태로 다니다 보면 기분 좋아질 기회를 발견하지 못한다. 바로 앞의 귀여움과 친근함을 표시하고 있는 고양이를 보고도 그냥 지나친다면 그 작은 생명체와 누릴 기쁨의 순간을 놓치게 된다. 삶이 퍽퍽하다 느껴질 때면 주위를 둘러보고 생명체가 있다면 그와 대화를 시도해보자. 당장 문제가 해결되진 않겠지만 최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의지는 생길 테니.


p.s. 왜 하필 고양이일까? 생각에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가 개보다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는 결론밖에 없다.


p.488 
길을 걷다 고양이와 마주치면 존재의 경이로움이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을 보상해 준다는 것을 잠시나마 떠올려 볼 수 있지 않을까?



3줄 요약


  - 존재의 경이로움은 고통을 보상해준다.

  - 삶의 과정이 힘들다 느껴지면 시간을 쪼개 순간에만 집중해 보라

  - 긴장을 풀기 위해서라도 좋아하는 일에 잠시 집중해보자




마무리하며


  <12가지 인생의 법칙>을 하나씩 전 보다 세밀하게 읽어 내려갔다. 분명 익숙한 문장이고, 페이지가 접혀있는 걸 보면 한 번 읽었단 빼박 증거인데도 새롭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둘 중 하나다. 대충 읽었거나, 문장의 의미가 오묘하여 읽을 때마다 새로운 영감을 주거나. 작가가 오랜 시간 공들인 문장은 시간의 깊이만큼이나 울림이 크다. 예전엔 책을 읽을 때 완독에 의미를 두었다면 요즘엔 좋은 책을 곱씹어보며 정도 하는 게 즐겁다(시간이 많아서..)

  지금껏 읽어왔던 심리학, 자기 계발류 서적과 다른 점은 즉각적인 처방전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몸이 아파 찾아온 환자에게 증상만 듣고 맞는 약을 턱 하니 내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그런 환자들 대부분이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다시 찾아온다. 나 또한 그렇다. 몸이 아픈 원인이 나의 생활습관이나 환경에 있는데 그걸 고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약에 대한 내성만 쌓아진다. 그러다 보면 더 강한 약을 찾게 되고 몸이 망가진다. 

 이런 의미에서 <12가지 인생의 법칙>은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감정과 존재, 죽음, 고통에 이르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다.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서로 질의응답하며 같이 고민하는 이야기다. 당분간 이 책은 서재 책꽂이에 얌전히 먼지를 쌓아 올리며 한 자리에 있을 것이다.

  올바른 목표를 정하고 나아가는 과정에서 의심이 들기 시작할 때 손을 뻗어 다시 찾을 것 같다. 내 의심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왜 생겼는지, 어떻게 의심을 다스려야 하는 건지. 조던 피터슨 교수가 내 질문을 들어주고 같이 울고 웃어주며 대화해줄 것 같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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