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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Aug 29. 2019

#2 나를 돌봐줘야 할 의무에 대해

<12가지 인생의 법칙> 조던 피터슨


처방받은 약을 다 먹어본 적 있나요?


  몸이 아파 병원을 찾은 환자들의 3분의 1은 의사의 처방전을 받고 약국에 들르지도 않는다. 나머지 중 절반만 약을 받고 끝까지 복용한다. 대부분 진단에서 치료를 멈춘다. 의사와 약사는 무심한 환자를 탓하지만 심리학자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다. 우리가 별 보잘것없어 보이는 힘없는 애완동물들에게는 최상의 의료서비스와 보살핌을 나눠주면서 정작 본인의 건강에는 관심을 덜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모라면 이해가 되지만. 자기보다 애완동물을 더 아끼는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던 피터슨 교수는 <구약 성경>의 <창세기 전>에서 그 답을 찾았다.



인간은 혼돈과 질서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살아가는 존재


  경험과 관찰을 주로 하는 20세기 초 실존주의의 등장은 과학적 세계관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고 개념과 사유의 철학을 대신했다. 그리고 '진리의 왕좌'를 차지했다. 삶을 이루는 모든 요소 중 경험은 '존재'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중 '혼돈', '질서', '중재'로 이루어진 경험의 3요소가 어우러져 인간은 '의식(consciousness)'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그가 설명하는 '혼돈', '질서'의 의미를 조금 더 파헤쳐보자. 


  '혼돈'은 미지의 영역이다. 탐험의 대상이다. 형태가 없는 잠재적 기능이다. '질서'는 사회 구조다. 종교이며, 가족이고, 국가다. 안전한 모든 것을 뜻한다. 혼돈은 복잡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 엔트로피 입장에서 보면 질서는 흥미가 없다. '엔트로피(Entrophy)'는 혼잡도가 증가할수록 더욱 많은 에너지를 품을 수 있는데,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풍경이 상기되는 질서는 에너지 상태가 '0(zero)'이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가서, 인간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자.  인간은 혼돈과 질서 사이에 항상 균형을 잡고 살아간다. 질서를 지향하지만 다시 혼돈에 빠지기도 하고 그 속에서 다시 질서를 이끌어낸다. 이렇게 이 둘을 중재하며 '존재'한다.



선악과를 베어 먹은 자들이여, 부끄러워 말라


  하나님은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시면서 저해상도의 '인간'을 탄생시켰다. 아담과 이브. 에덴동산에서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베어 먹은 후 신 앞에 초라한 본인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숨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죄로 유한한 생명과 평생을 속죄하며 살아 아하는 운명을 부여받았다. 조던 피터슨 교수는 지면의 반 이상을 창세기전을 할애했다. 이 이야기와 내 몸을 잘 돌보지 않는 이유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혼돈과 질서, 그리고 존재로 다시 돌아간다. 질서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가 혼돈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그 자체가 질병, 배신, 공포, 절망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쌓아올린 모든 의미들이 무너졌을 때 도착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혼돈속에서 항상 질서를 찾으려 노력한다. 질서를 찾는 과정은 나를 아는데서 출발한다. 


  하나님은 본인의 '형상'대로 인간을 빚었다고 했다. 저해상도로 탄생한 인간은 스스로를 파괴한다면 모체인 하느님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본인을 잘 돌봐주는 일은 곧 하느님의 곁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의미고 그와 함께 동행하겠다는 의지다. 비록 발가벗고 부끄러움이 많지만 우리는 언젠간 하느님의 곁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본인을 제대로 보살펴야 한다.



자신을 제대로 보살피는 방법


  본인을 존중하라. 

  우리가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 이유는 타락한 피조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가족이나 친구, 연인을 대할 때 그들을 챙길 때만큼 본인을 잘 챙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나는 노예, 상대는 폭군이 된다. 어느 쪽이나 약한 것 보다 모두 강한 존재가 되는 것이 낫다. 

  

  책임을 지고 본인을 스스로 도와줘라.

  나에게 진정 좋은 것을 주어라. 그 전에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아라. 내가 원하는 것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단순히 좋은 것도 아니다. 사탕과 초코렛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싫다고 해도 어떻게든 이를 닦도록 하고 추운 날 외출할 때 불편하다 해도 외투를 입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도덕적이고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깨어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남을 배려하고, 정정당당하게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라. 그리고 나아갈 방향을 정하라.

  미래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깊이 사유하라. 과거와 현재로부터 본인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고 미래를 그릴 수 있다면 한계가 무엇이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있다. 또한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있다. 마치 네비게이션의 안내와 같이 말이다. 네비게이션을 이용하면 목적지에 도착하기 까지 있을 혼돈을 줄여준다. 그렇게 혼돈을 줄이고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세상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다. 


  과정 중에 뜻하지 않게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 당신만의 원칙을 명확히 세우자. 그래서 당신을 부당하게 이용하려는 자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안전하게 삶을 즐길 수 있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나의 삶을 바칠 수 있는 다른 길을 항상 생각하자. 이 모든 희망과 행복으로 가는 시작은 볼품없이 느낄 수 있는 자신을 계속해서 도와줘야 할 대상으로 여기자. 아프면 약도 꼬박꼬박 먹고 몸과 마음을 질서의 상태로 놓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자. 



정리하며


  태어나면서 원죄를 지닌 우리 인간은 스스로를 볼품없다 여기기 쉽다. 본인의 가치를 떨어뜨리며 스스로 좋은 것을 취할 자격도 없다고 한다. 조던 피터슨 교수는 구약성경의 창세기전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 그리고 에덴동산 이야기를 통해 혼돈에서 질서를 창조한 하나님과 그의 저해상도 버전인 우리 인간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질서로부터 혼돈의 나락으로 빠져들지 않게 하고 스스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알려주었다. 우리 인간은 영원히 혼돈과 질서 사이에 균형을 잡아가는 중재의 과정 속에 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질서로 나아가는 가장 첫 번째로 할일은 본인을 돌봐줘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 그래야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고 그 에너지로 행복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나 자신에 대한 존중에서부터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가슴 속 밑줄


p.76
근본적으로 다른 두 세계의 경계에 서 있으려면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한 발은 질서와 안전의 세계에, 다른 발은 가능성과 성장, 모험의 세계에 디디고 있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삶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때, 혹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엇인가에 몰입할 때, 그 순간 바로 혼돈과 질서의 경계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p.77
삶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일은 혼돈과 질서의 상호 작용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 둘은삶의 근본적인 구성요소다.

p.89
왜 아픈 강아지에게는 처방 약을 열심히 먹이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까? ..(중략).. 아담의 후손만큼이나 발가벗고 추하고 방어적이고 비판적이고 무가치하고 비열한 존재가 있다면, 우리가 그 존재를 애지중지 보살펴야 할까? 만약 그 존재가 우리 자신이라면?

p.96 
놀랍게도 이 의문의 대답은 <창세기> 1장에 이미 함축되어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으니 혼돈으로부터 좋은 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뜻이다.

p.97 
자신을 제대로 보살피려면 먼저 자신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 스스로 타락한 피조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실하게 살고 진실을 말한다면, 우리는 다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고 우리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존중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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