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철 Aug 27. 2019

변화와 분리에 관한 이야기

<악마와 미스 프랭> 파울로 코엘료

완벽히 위장된 '선(Goodness)'의 진실  


  프랑스의 작은 마을, 베스코스. 이곳에 한 이방인이 방문을 한다. 그날 그는 한 숙소에 묵기로 하고 짐을 푼 후 큰 가방을 등에 짊어 메고 밖으로 나선다. 그가 도착한 곳은 근처 깊은 산속. 가져온 금 12 덩이를 땅 속 깊숙이 묻는다. 산길을 오가는 도중 그의 시선을 끈 한 여인, 미스 프랭(샹탈)은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샹탈은 도시로 나가 화려한 삶을 꿈꾸지만 그럴만한 용기가 없는 여인이다. 

  이방인은 자신을 악마라고 소개하며 이 마을에 선과 악을 시험하기 위해 왔노라 밝힌다. 그리고 제안을 하나 한다. 오늘을 포함 1주일 내에 마을에 한 사람이라도 죽으면 이 금 모두를 마을에 바치겠노라고.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본인은 금을 챙겨 떠나겠노라고. 샹탈은 고민에 빠지고 마을에 곧 이 소식을 알린다. 

  마을 내에서 분분히 의견이 갈리고 결국 죽은 남편을 잊지 못하는 정신 나간 노부인을 희생의 제물로 삼기로 한다. 서로에게 좋을 명분이었다. 총살을 하기로 하고 혹시 모를 죄책감에 괴로워할 사람을 위해 한 자루의 총에는 공포탄을 장착하기로 했다. 그리고 노부인에게는 동의를 얻고 수면제를 먹였다. 모든 상황이 완벽해졌고 악이 교묘하게 선으로 위장했지만 샹탈의 외침에 모두 정신을 차린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샹탈은 모든 소동이 끝나고 이방인의 금을 모두 받았다. 사전 서로 약속된 사항이었다. 완벽히 뒤탈이 없을 정도로 마무리를 했다. 곧 그녀는 마을을 떠날 것이고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했다. 한낱 잡부였던 그녀의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같은 듯 다른 변화와 분리에 대하여


  분명 에필로그에서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악마와 미스 프랭>은 '분리'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선과 악이 분리될 수 없다는 말이다. 최후의 만찬을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예수와 유다의 모델로 삼은 사나이가 동일 인물이었듯이. 

  난 그보다 주인공 '샹탈(미스 프랭)'에 마음이 갔다. 우리 모두 마음속에 화려한 삶을 꿈꾸지만 실제 실행에 옮기기까지 심리적 저항이 크다. 분명 기회가 왔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오히려 부정까지 하면서 변화에 주저한다. 샹탈은 베스 코스라는 마을에 오래 머물렀지만 그 처럼 많은 고민을 한 1주일을 잊지 못할 것이다. 기회가 변화로 이어지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변화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항상 우리는 불확실함과 싸운다. 어떻게든 확실한 자료와 검증을 통해 안갯속을 헤쳐나가는 논리를 만드는지도 모른다.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 기회는 우연을 가장하더라도 변화를 선택하는 건 오로지 나의 몫이니까.

  선과 악이 분리될 수 없듯, 기회와 변화 또한 달리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문제이다. 우리는 선을 행하며 악도 저지른다. 기회가 왔음에도 변화하려 들지 않고 변화하려 해도 기회가 없음을 탓한다.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어쩌면 행동과 머무름의 중간에 있다는 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1 패자의 늪에 빠지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