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우리를 빨아들여요
탁, 탁, 탁.
펜은 돌아갈 때마다 책상에 부딪히며 규칙적인 타격음을 냈습니다. 하루종일 그런 상태였어요. 어제는 어쩐지 현실이 아닌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꿈이었던 게 아닐까? 요즘은 가뜩이나 꿈을 자주 꾸니까요. 숨이 쉬어지지 않는 공포보다도 더 공포스러운 게 그 방 안에는 분명 있었습니다. 병운의 그 무감각한 눈빛이 여전히 나를 내려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는 내가 어떻게 들어왔는지조차 묻지 않았습니다.
“웬 일이야.”
“어,어—“
나는 여전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그는 성큼성큼 내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습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두 팔을 올려 얼굴을 감쌌습니다.
“……팔은 왜 이래?”
그는 하얗게 굳은 석고와 붕대를 보고는 천천히 물었습니다. 내가 대답이 없자 소년 같은 목소리로 한 번 더 말했어요.
“다쳤어?”
나는 꼼짝하지 못하고 빨려들어가듯 그의 눈동자를 바라봤습니다. 코를 찌르는 초록 빛 소주 냄새. 귀에 들리는 나의 숨소리는 누가 사포를 가져다 문댄 듯이 거칠었습니다. 간신히 목소리를 내려 배 아래쪽부터 무언가를 끌어모으는 찰나, 그 목소리가 다시금 내 귀에 진동했습니다.
“택시 불러줄게. 나 술 마셔서 운전 못 해.”
이유 없이 괴물이 떠올랐습니다. 침을 질질 흘리는 모습. 나는 그를 옆으로 밀쳐낸 뒤 기겁하며 그 집을 나왔습니다. 태연한 척하려 했지만 불가능이었어요. 그는 쫓아오지 않고 가만히 서서 나를 쳐다봤습니다. 계단은 유독 높았고, 나는 코너를 돌다 넘어지는 바람에 무릎이 욱씬거렸습니다. 그 고통만이 아직도 내 몸에 남아 어제는 꿈이 아니라고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병운에게 연락을 해야 하나 하는 것입니다. 그 이상한 사람으로부터 아무런 말이 없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인데, 내가 무언가 보내야 하는지는 통 알 수 없어요. 게다가 나는 그 집에 그를 혼자 두고 나왔어요. 그 곳에 또다시 그 사람을 혼자 남기고……혼자……. 나는 그가 정말 살아있기나 한 건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오전 내내 머리를 붙잡고 오른손으로 관자놀이를 콩콩 때리고 있었어요. 그러고는 고개를 들었는데, 박 부장님의 그 회색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는 바람에 나는 의자 채로 뒤로 조금 밀려났습니다. 박 부장님은 검은 자켓의 라펠을 만지작대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오늘 다들 시간 괜찮나? 술 한 잔 할까?”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비싼 정육식당에 앉아 우리는 잔을 채웠습니다. 이틀 연속 술자리라니, 이처럼 불량한 환자는 또 없을 겁니다.
“그래도 한창 바쁜 겨울시즌 지나가고 이제 좀 낫지? 다들 여름시즌 오기 전까지 힘내서 달려 보자. 건배사는 생략.”
“잘 부탁드립니다!”
박 부장님다운 짧은 연설이 이어지고 우리는 모두 잔을 들었습니다. 내 잔에는 물론 물이 가득했습니다. 김 대리님과 이 과장, 최 사원 모두 기분이 좋아 보였어요. 하긴, 우리 팀 사람들이 회식을 피할 인물들은 아닙니다. 바빠서 시간을 못 내면 못 냈지.
“이거 좀 먹어라.”
박 부장님은 쌓인 고기들 중 하나를 집어 내 앞접시에 놓았습니다. 아까 내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분명 봐 놓고, 그건 언급도 안 하고. 육즙이 흐르는 고기를 씹으면서 내일부턴 분명 좀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고는 옆자리로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오늘도 하얀 셔츠를 단정하게 입고, 생글대는 미소와 또렷한 눈빛. 나는 그 사람을 모릅니다.
“드세요, 찬우 씨.”
“감사합니다, 대리님.”
돼지고기를 입에 넣고 우물대지만 소리는 내지 않는 모습. 흠 잡을 데 없이 정갈한 사회인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나는 분명 봤습니다. 송주를 바라보던 그 병든 눈빛을요. 애정이 없는 것과는 또 다르지만, 아무튼 내가 아는 찬우 씨가 지을만한 표정은 아니었습니다. 요 즈음 나는 사람이란 것에 대해 점점 더 알 수가 없고 무서워집니다. 비로소 본격적으로 살아 볼 작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좀 괜찮아요?”
그가 전화를 받으러 나가는 걸 본 나는 조심스레 따라 나가 물었습니다. 아직은 입김이 하얗게 나오는 밤이었습니다.
“아, 대리님. 괜찮습니다.”
찬우 씨는 사람 좋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왜 나오셨어요? 담배 안 피우시잖아요.”
“그냥요. 혼자만 안 취하니까 쉽지가 않네요.”
“하하, 그렇죠.”
“찬우 씨,”
나의 비장한 목소리에 그는 침을 꼴깍 삼키며 나를 봤습니다. 어쩐지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어요. 그게 뭐가 되었든 이 사람이 연기하고자 하는 본인을 두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마음. 누구나 본인의 캐릭터를 꾸밀 권리는 있는 거니까. 그걸 굳이 내가 깨부수고 들어갈 필요가 있나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말에도 관성이란 게 있습니다.
“송주랑은 어떻게 만났어요?”
찬우 씨는 고개를 힘껏 돌리고는 나를 바라봤습니다. 눈동자가 꽤나 커져 검은자위가 전부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어떻게……, 송주 씨를 어떻게 아세요?”
“같이 사는데요.”
“예?”
“같이 산다구요. 알고 지낸 지 육 년이 넘었어요.”
“아니, 어떻게 그게…….”
분명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직장과 그 밖의 삶을 분리하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닐 텐데요. 정작 나는 송주에겐 찬우 씨에 대해 단 한 마디도 꺼낸 일이 없었어요.
“아니, 이상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구요. 우연히 봤어요. 둘이 지나가는 거. 그러니까 그게,”
“…….”
“요즘 회사는 좀 어때요? 찬우 씨가 계약이 얼마나 남았죠?”
“6월까지니까, 삼 개월 정도 남았습니다.”
“그렇네요.”
“업무에 지장 없게 하겠습니다.”
“예? 아니, 그거야 찬우 씨 마음이죠. 그런 얘기 하려는 거 정말로 아니에요. 제가 뭐 송주 엄마도 아니고. 연애야 알아서 하겠죠. 송주가 저보다 나아요.”
“…….”
“그냥, 그냥 미안하다구요. 제가 요즘 너무 이상하고 못나게 굴었던 것 같아서.”
하지만 그런 말을 건네는 와중에도 나는 나라는 인간이 몹시나 미워졌습니다. 우리 사이에 송주가 끼어들지 않았다면야 내가 오늘 또 무슨 날카로운 말들을 지껄였을지 알 수가 없었던 겁니다. 찬우 씨는 아닙니다, 하고 중얼거리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쪽을 잠시 쳐다봤습니다. 송주가 내게 털어놓은 그 불쌍하고 우울한 면모라는 것이 나는 물론 궁금했지만, 그 정도는 이 사람이 알아서 관리할 수 있도록 두는 편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두꺼운 가면 몇 개쯤 쓰지 않는 사람이,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는 생각도 들었구요. 아무튼 나는 모두에게 미안했고, 그 중 나에게 가장 미안했으며, 그 날의 회식자리에서 우리 팀은 모두 내 가족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시계를 보니 열한 시 삼십칠분이었습니다. 나는 온통 엉망진창이라 속상한 마음에 병운의 연락처를 몇 번 만지작거렸고, 어두운 염리동을 홀로 몇 바퀴째 돌다 다빈 씨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다빈 씨는 여전히 그 병원에 있었습니다. 나는 내일 보러 가도 되냐고 물은 뒤 전화를 끊었습니다. 볼록 거울을 마주치고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대로 집 주변을 한 바퀴 더 돌았습니다. 귀갓길은 아무래도 긴 편이 좋은 것 같았습니다.
다음날, 퇴근한 뒤 편의점에서 산 박카스 박스를 내려놓으며 나는 이번 주에만 몇 번째일지 모를 말을 또다시 뱉었습니다.
“미안해요.”
“하하.”
병실에는 다른 누구도 없었고, 푸른 빛이 도는 환자복을 걸친 다빈 씨는 신이 나 보였습니다. 앙상한 듯 보이는 몸 안쪽을 어느 정도 드러내고는 생글생글 웃었어요.
“연락주실 줄 몰랐는데.”
“아무래도 늦은 감이 있죠? 저 때문에 다치셨는데. 정말 미안해요. 학교도 못 가서 어떡해.”
“괜찮아요. 그래도 해야 할 건 곧잘 하는 훌륭한 학생이거든요.”
다빈 씨는 장난치듯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그의 말이 정말일 것 같아 함께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게 정말 하나도 없었습니다.
“전공이 뭐예요?”
“건축이요.”
“아아…….”
“저와 잘 어울리는 것 같나요?”
“글쎄요. 저는 다빈 씨를 잘 모르니까…….”
다빈 씨는 나를 똑바로 쳐다봤습니다.
“잘 아실 걸요.”
“그럴 리가요. 몇 번이나 봤다고.”
“관계의 진척도가 꼭 함께한 시간과 비례하는 건 아니죠. 따지자면 오히려 우리가 서로 얼마나 친절한지가 중요할걸요.”
“다빈 씨는 친절한 사람이에요?”
“다정하려고 하죠. 적어도 선생님 앞에서는요.”
나는 그를 바라볼 수가 없어 괜히 자리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움직였습니다. 그는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것처럼 보이더니 명랑하게 말했습니다.
“뭐라도 좀 드세요. 냉장고에 뭐가 있을 텐데.”
그리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멀쩡한 왼손으로 냉장고를 열었습니다. 냉장고 안쪽은 과일주스와 이온음료가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 위에도 바나나와 토마토가 이리저리 올려져 있었습니다. 나는 조금도 비꼬는 식으로 들리지 않도록 노력하며 말했습니다.
“친구들이 많이 왔나봐요.”
“감사하게도요.”
다빈 씨는 얼굴을 좌우로 흔들어 곱슬대는 머리카락을 치우고는 토마토 주스를 꺼내 나에게 건넸습니다.
“오늘만큼 감사하진 않지만.”
글쎄, 나는 이 사람과 있을 때마다 느껴지는 이 이상한 기분의 정체가 뭘까 생각하며 주스를 받아들었습니다. 의자를 끌어와 앉고 그 뚜껑을 여는 와중에도 그런 생각은 머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새빨간 주스를 한 입 마시고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그에게 물었습니다.
“다빈 씨는 나를 좋아하나요?”
그 환자는 침대에 앉아 한 손으로 이불을 뒤적대다 돌연 행동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습니다. 나도 그에게서 눈을 피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대략 십오 초 정도 그러고 있었습니다.
“그럼요. 좋아하죠.”
“거짓말.”
그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해 나는 약간의 서운함을 느꼈습니다. 믿기지가 않을 만큼.
“제 말을 믿지 않으세요?”
“나는 누구의 말도 믿지 않아요.”
“하하, 거짓말.”
그는 유쾌하게 웃었습니다. 나는 우리는 무슨 요상한 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정말로 좋아해요. 여기엔 일말의 거짓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욕심을 부리는 거예요.”
“……사랑하세요? 나를?”
매일같이 욕하던 단어를 입에 담는 게 조금 부끄러웠지만 대체할 무언가가 없었어요. 다빈 씨는 그 말을 듣고는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나는 잠깐 눈을 맞대다간 피하고 구두 언저리를 훑었습니다.
“그건 선생님께 중요한 문제인가요?”
“아마, 아마도…….”
“네.”
눈 뒤쪽에서 무언가 부끄럽게 맺히는 소리가 났습니다.
“저는 분명 선생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저를 사랑하세요?”
“…….”
“선생님에겐 그거야말로 중요한 거 아닌가요? 대답하실 필요는 없지만, 한 번쯤 생각은 해 보셔야죠.”
“연애하고 싶은가요? 나랑?”
“그만 좀 하세요.”
그의 목소리에는 원망의 줄기가 여기저기 자라 있었습니다.
“제가 선생님이 쓴 편지를 몇 번이나 읽었는지 아세요? 눈을 감고도 전부 외울 수 있어요. 왜 마음에도 없는 걸 물으세요?”
나는 말 없이 주스를 한 번 더 마셨습니다. 꿀꺽꿀꺽 소리가 나며 병은 텅 비었습니다. 다빈 씨는 내가 가져온 박카스 박스를 열고는 두 병을 꺼내 차례대로 뚜껑을 열었습니다. 그러고는 하나는 내 손에 쥐어주고, 또 하나는 본인이 꼴딱꼴딱 소리를 내며 마셨어요. 그는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한 글자씩 떨어트렸습니다.
“난 연애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에요.”
“어째서요?”
“상대에게 뭘 줄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으니까요. 것보다야 상대가 나에게 뭘 줄 수 있을지— 아니, 상대에게서 뭘 훔칠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어요. 그저 뼛속까지, 여기 안쪽까지 나밖에 모르는 겁니다.”
아무래도 저번에 말했던 나를 도와준 이유와도 연결되는 이야기 같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만이 그런 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사실 모두가 그런 것 아니냐고. 무장강도와 연인은 그저 연기력의 차이인 것뿐 아니냐고 그의 귀에다 대고 호소하고 싶었어요.
“내가 가뜩이나 불안정할 때 연애를 하면 더욱 심해요. 연인의 발목을 잡아채 끌어당기는 기분을 아시나요? 그 사람을 끌어내려 여기 아래에 붙잡아 두면, 그럼 계속 같이 있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못된 심보를 아세요? 그런 쓰레기 같은 생각을 반복하는 겁니다.”
“그치만 맞잖아요. 같이 있을 수 있잖아요.”
나는 의자를 당기고는 그의 말을 찢고 들어가 속삭였습니다. 그는 나를 한 번 노려보고는 눈동자를 내리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건 연애 따위가 아니에요. 아무도 그런 연애를 할 필요가 없어요.”
“다빈 씨는 필요 때문에 연애를 해요?”
“그럼요. 누구나 그럴 걸요?”
“내게 편지를 돌려보낸 것도 필요에 의한 일인가요?”
나는 어느새 그에게 따지듯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병실 안은 여전히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고, 비어 있는 다섯 개 침대의 커튼을 흔드는 바람이 조심스레 귀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건,”
그는 무너지기 시작한 건물처럼 천천히 아래로 몸이 기울며 말했습니다.
“정말 우리의 관계에 대해 의심하고 계신 건가요?”
“뭐가 되었든간에요.”
“편지를 백 번도 넘게 읽을 즈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다빈 씨는 조금 뜸을 들이고는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에 나도 개입하고 싶다고, 나도 한 명의 인물로 둘 사이에 등장하고 싶다고요.”
그의 눈썹은 파르르 떨렸습니다. 하지만 환자복을 입은 그 사람은 쏟아내듯 다음 말을 계속해서 뱉었습니다.
“그저 이 사건들이 만들어내는 흐름이란 게 너무 강력해서, 나를 빨아들여서……. 나도 모르게 그러고 만 거예요. 그 결과로 지금 나는 선생님 앞에 앉아 이렇게 눈을 마주하고 있는 겁니다. 나는 이렇게나 수동적인 사람이에요.”
“지금 그런 이유로 편지를 빌미로 나를 협박하고, 또 쫓아다니다가는 폭행 사건에 연루되고 했다는 거예요?”
“내가 했다기보단, 이 이야기가 나를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단 겁니다.”
“미쳐버릴 정도로 책임감 없는 소리네요.”
“나만 그렇다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이 왜 자꾸 불안정함을 손에 넣으려 하는지 아세요? 연인들이 왜 결핍을 해소하려다가 결국엔 서로에게 긴 상처를 남기고, 그러면서도 그걸 계속 반복하는지 아세요? 우리가 왜 자꾸 하등 쓸모없는 짓을 찾아서 발걸음을 옮기는지 아세요? 죽고 싶다는 말과 죽기 싫다는 말이 왜 결국엔 같은 발음처럼 보이는지 아세요? 전부 이야기에 휩쓸리고 싶은 거예요. 그뿐인 줄 아세요? 지독하게 알 수 없는 선생님의 머리가 왜,”
그는 혀로 입술을 한 번 핥고 마저 말했습니다.
“왜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그 병운이란 사람만을 하루종일 떠올리고 있는지 아세요?”
그 즈음부터 나의 시야는 급격하게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눈 언저리로 뜨거운 것들이 모이기 시작했어요. 열매를 맺듯 그 투명한 게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데, 다빈 씨는 조금도 미동이 없었습니다. 나를 위로한다거나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왠지 그런 모습이 더욱 눈물을 멈출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나에게 변하라고 말해 놓고, 피부를 핥으면 쇠 맛이 날 것만 같은 태도. 그러든 말든 그 사람은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시리도록 하얀 봉투를 하나 꺼내 손에 쥐었습니다.
“괜찮으세요?”
나는 입을 벌리며 그 사람을 쳐다봤습니다. 그는 내게서 눈을 떼지 않고 한 번 더 물었습니다.
“……괜찮으세요?”
대체 뭐가 괜찮냐는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괜찮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 사람이 원하는 답인 것 같아 입을 열지 않았어요. 다빈 씨는 조심스레 봉투를 내밀어 이불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습니다.
“이제 한 번 남았네요.”
“안 괜찮아요.”
나는 하늘색 셔츠 소매로 얼굴을 문대고는 그 봉투를 집어든 채 곧바로 병실을 나왔습니다. 이미 캄캄해진 하늘을 올려보며 정문을 지나쳐 나올 때에도, 눈에는 여전히 미련 비슷한 게 고여 있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그들의 모든 동작을 끌고 가는 수백 개의 이야기가 보이는 것도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