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편지

by 이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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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두오모 광장에서 청혼을 했어.

겨울인데도 햇살이 수직으로 들어와 광장을 흠뻑 적셨고, 덕분에 춥지 않은 바람이 기분좋게 머리를 흔든 데다가, 모여 있던 사람들과 가이드가 노래를 부르며 박수를 쳤어. 그런 분위기에서 거절을 외치는 거야말로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겠지. 청혼을 받은 여자 분은 딱 맞는 반지를 끼고는 남자에게 온 힘을 다해 포옹을 하고, 또 웃으며 키스를 나눴어. 결혼이란 건, 아무튼 함께 있자는 거겠지? 박수를 치고 웃다가는 아차, 하고 정신을 차렸어.

나는 조금 변한 것 같아.


나는 이 성당들이 좋아.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거대하고 웅장한 분위기를 뿜어내거든. 또 이 고대의 도시라는 것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일관된 냄새를 풍기는 거야. 건물, 음식, 사람들, 전부 다. 역사를 입고 돌아다니는 느낌. 나는 왜 종교가 없지?


신이라는 게 있고 없고를 떠나서. 무언가 초월적인 것을 숭배하는 게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먼 옛날로 돌아가면 아무래도 모두가 신을 믿었을 것 같아. 종교와 결합된 나라들이 그걸 증명하잖아. 그리고 그건 아마 그들이 지금 우리들보다 모르는 게 많아서 그랬을 거야. 별들이 움직이는 이유, 가끔 달이 빨갛게 타오르는 이유, 저 멀리에서 뜨거운 바람이 불어닥치는 이유……. 모르니까. 모르니까. 모르니까 신께서 행하신 걸로 믿어버린 거야. 무언가 믿어야만 하잖아. 그저 아무것도 믿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설계된 거잖아. 진실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이 기괴한 운명에서 벗어나질 못한 거지. 그렇게 신이란 게 꼭 필요해진 게 아닐까. 나, 혹시 지금 불경한가?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에서는 기도를 했어. 제발 존재해 주세요. 신님, 사라지지 마세요. 기도할 곳이 되어 주세요. 북서풍이란 게 왜 불어오고 또 달이 왜 자꾸만 모양을 바꿔 가는지, 하늘과 땅은 왜 나뉘게 되었는지. 그 이유가 되어 주세요. 우리가 진정 못 견디는 건 그거 하나니까.


가끔은 내가 신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있어. 대체 뭐가 다른지 모르겠거든. 내 모든 방황의 증거, 내 모든 희망과 연결된 뿌리들. 나는 늘 나를 찾아헤매고 있어. 그치만 새롭게 알게 되는 것보다 새롭게 모르게 되는 것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우주에는 물질이란 게 4.9%밖에 없다는 것 아니? 나머지는 전부 암흑 물질이거나 암흑 에너지야. 나는 시꺼멓고 썩어빠진 곳을 매일같이 목격해. 그럼 곧바로 비명을 지르고 도망쳐. 발견하는 것들이라곤 네게 보내는 우편이 전부야. 이게 그나마 발견해낸 것들이라구.


돌아가면 우리 만나자. 만나서 서로가 어떻게 생겼는지 만지작거려 보자. 부서지듯 끌어안아서, 정말로 부서져도 괜찮으니까, 한 번은 그래 보자. 나는 겁이 너무 많아. 그래도 우리 함께 모르는 거면 좀 낫잖아……. 서로의 빈 공간이나 장기의 모양을 더듬대며 알아가 보자. 이젠 보여줄 게 많아.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아.


밥이나 한 끼 하자고 아무렇지 않게 말 걸어볼게.


2019.3.8

산처럼 높은 첨탑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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