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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집트에 들어와서 가장 많이 얘기를 나눈 게 어느 나라 사람들이게요? 바로 한국 사람들. 이 곳에는 두 번째 한국이 있거든요. 따지자면 천국에 가까워요. 여길 못 와보고 사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느껴질 정도라니까요.
건물들은 낡아 무너지기 직전인 것들이 많구요, 또 샤워하는 물에서는 금속 맛이 나서 양치를 할 때는 조심해야 해요. 인터넷은 느린 데다가 아예 터지지 않는 때도 많고, 거리에선 물이 주기적으로 역류해 올라옵니다. 가게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으면 아기들이 들어와 물건을 사거나 머리 장식을 하라고 떼를 써요. 거절하다 보면 가끔 화내는 아이도 있어요. 또 무슨 일도 있는지 아세요? 다같이 먹을 걸 싸들고 무인도로 들어갔을 때에는, 열 살도 되어 뵈지 않는 아이가 트럭을 운전해 우리를 천막 앞까지 데려다 줬어요. 면허가 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말을 전혀 못 하는 아이였거든요. 무인도 안쪽에도 요리를 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고기 위에 파리가 너덧 마리 정도 앉아있는 걸 봤어요. 재빨리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봐 버린 걸 어떡하나요. 게다가 다들 샤워 같은 건 안 해도 신경도 안 쓰기로 합의라도 한 듯 합니다. 꼭 샤워만 그런 게 아니고, 모든 것들이 그래요. 그저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그만. 사회가 요구하는 인내나 희생을 몇 스푼이나 덜어내야만 도달할 수 있어요.
그런 곳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눈을 뜨면 그대로 바다로 뛰어가 달려들어요. 슬리퍼를 질질 끌며 팔 분 정도 걸으면 바닷가에 죽 이어진 카페들이 나옵니다. 거기에 우선 자리를 잡고, 석규 씨는 시를 쓰고 은빈이는 그림을 그리고, 지환이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깁니다. 재용 씨는 덥다며 먼저 바다에 뛰어들어 버렸고, 나는 그들 옆에 앉아 편지를 써요. 선생님에게, 아니면 병운이에게. 둘을 따로 구분하고 적지는 않는 것 같아요. 어차피 우선은 같은 사람에게로 향하니까. 그리고는 다같이 물 아래로 잠수. 프리다이빙을 해 본 적이 있으세요? 제 다이빙 스승님은 한 손으로 코를 잡고는 저기 깜깜한 곳까지 내려갔다 올라와요. 아가미라도 달린 게 아닐까 싶어요. 내려갔다가, 결국은 다시 올라온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 스포츠가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영을 삼십 분 정도 하고 나와서는 담배를 태우고, 그러고는 망고 스무디를 마셔요. 두세 잔 마실 때쯤 되면 슬슬 해도 넘어가고 주변에선 고기나 밀가루 굽는 냄새가 납니다.
그러고 나면 이제 밤. 여기가 하이라이트예요. 우리는 마당에 모여 앉아서 해가 뜰 때까지 있어요. 위스키를 병째 집어들고—물론 이집트 전용 위스키입니다— 또 카드를 섞고, 시 한 편을 나눠 써요. 한 줄씩. 두 줄씩. 그리고 세계에 대해 밤새 논쟁. 음란하고 처절한, 명랑하거나 구역질이 나는 것들에 대해서요. 콤플렉스나 데이트 규칙, 지나간 애인들, 욕지거리와 감사, 그리고 모두의 첫인상과 또 구름의 반댓말과— 사랑. 그리고 사랑. 또 사랑. 에이, 지겹다. 그래도 또 더럽게 사랑. 폐수 속에서 일렬로 발길질을 해요. 그럼 서로의 언어, 표정과 말투, 눈을 깜빡이는 습관 같은 것들이 거꾸로 매달리고 뒤죽박죽으로 섞여요. 온통 엉망진창으로 몽롱해집니다. 그쯤 되면 해는 올라오고 우리는 어딘가에 누워 잠들어요. 정말 가끔은 술병을 내려놓고 시커먼 밤바다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다들 잠겨 안심하고, 나체가 되어 수영. 까만 물 안쪽에선 뭐라도 가릴 수 있으니까.
해가 뜨면 또다시 같은 걸 반복.
어때요?
선생님, 나는 낭만성이란 게 인간의 제일 안쪽에 있는 단어인 것 같아요. 그 이름을 붙이려면 어딘가가 꼭 낙후되어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완벽하지 못하고, 불안정할 뿐더러 굳이굳이 엉망진창인 상황을 만들고 맞닥뜨려야 해요. 하잘것없고 무용한 것들로 가득찬 하루. 비효율. 그거야말로 인간에게 숨겨진 본성입니다. 그저 지름길이나 절차대로 진행되는 걸 견디지 못하는 거예요. 효율이 바닥으로 처박을 때만 우린 눈을 반짝이며 진정 낭만이란 단어를 들먹입니다. 나와 병운은 너무 효율이 높았어요. 내일을 향해 일직선으로 이동했습니다. 갈 수 있는 최단 거리로. 짧게. 안전하게. 선생님께 변명하기에 좀 늦었단 거, 알아요. 그래도 이런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치만 어째서일까요? 왜 우리는 이렇게 돌아서 갈까요. 왜 이걸 아름답다고 말하는 거예요. 나는 정말 모르겠어요.
뭐, 중요하진 않겠죠. 아무튼 분명 나는 이 낙후된 땅에서, 그리고 직업을 벗어 던져버리고 떠나 온 이 여정에서 계속해서 빙빙 돌고 있어요. 숫자로 범벅이 된 서울이란 도시에서 자리를 비우는 것 자체가 아마도 그들을 배신하는 일일 겁니다.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갈 거란 사실은 분명해요. 나는 사회를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우선은 더 우회하고 싶어요. 나는 지름길이 싫어요. 가는 길에 최대한 많은 도시와 언어를 경유하겠습니다. 그리고 돌아갈게요. 선생님은 내가 이렇게 말하면 분명 좋아하셨을 거죠? 완전히 같은 행동이니까요. 나는 선생님이 정말로 인간이었던 것, 그러니까 진정으로 살아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에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고 있어요. 그 삶을 닮아가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지금 계신 곳 옆자리로 갈 수 있도록, 그렇게 숨을 쉬려구요. 병운이는 걱정하지 마세요, 이상한 길로 빠진다면 제가 어떻게든 몸을 던져서 구해낼 테니.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요.
2019.4.17
이 지저분한 동네!
선생님께 읽어드려 줘.
네 욕을 했다고 섭섭해하진 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