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꽤나 따뜻해진 주말의 햇살이 테이블 안쪽까지 푹 찌르며 들어왔습니다. 초록색 식물들에 둘러싸인 우리는 카페에 몇 없는 야외 자리에 자리를 잡고 숨을 헐떡였습니다. 팔의 깁스를 풀자마자 송주의 새로운 계획인 ‘주말 오전 러닝 프로젝트’인지 뭔지에 끌려나온 참입니다. 초보자가 무리를 하면 안 좋다고 내가 그렇게 달랬는데, 이 말괄량이 여인은 기어이 나를 끌고 육 킬로미터의 뜀박질을 채우고 나서야 카페에 앉는 걸 허락했습니다. 본인도 저렇게 힘들어할 거면서. 송주는 커피를 내려놓고는 심술궂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물에 흠뻑 젖은 모양새로 의자에 축 늘어져 있구요.
“그러니까, 병운 오빠가 좋다는 거잖아요, 지금.”
“그게 또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긴, 외간 남자 둘에게 이리저리 흔들리고 계시는구만.”
길쭉한 선글라스를 낀 송주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대체 왜 본인이 의기양양한 건지는 모르지만요. 나는 초록색 모자를 벗어서 집어들고 짜증내듯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너는 모든 문제를 사랑으로 보려는 습관이 있어.”
“칭찬 고마워요.”
“에이씨,”
“아, 미안해요! 미안!”
당장 꿀밤이라도 때리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자, 송주가 다급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거의 눕다시피 의자에 기대 앉아 눈을 감았습니다. 잠이 올 것 같았습니다. 그 날 것의 편지를 새벽이 깊도록 계속해서 읽었어요. 투박한 글귀가 아직도 내 머리에 남아 울렸습니다. 이불 아래서 한 번씩 다시 읽을 때마다 심장은 점점 크게 뛰고 거리가 조금씩 밝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자꾸 떠오르고 신경쓰인다는 게, 그게 아니면 대체 뭐가 좋아하는 거예요. 말했잖아요, 우린 연민이랑 사랑 같은 거 구분 못 한다니까.”
“그게 아니라, 그냥 얽힌 게 너무 많아서 그래. 자꾸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는 말을 하다 흡, 하고 입을 닫았습니다. 꼬부랑대는 그 갈색 머리칼과 울먹이는 항변이, 떨어지는 중인 낙엽보다도 쓸쓸한 그 사람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레 고장난 내게 송주는 의심의 눈초리를 쏘아댔습니다. 나는 그 압박을 모르는 체 고개를 돌리고는 말했습니다.
“근데 설령, 정말 혹여나 이게 병운이를 좋아하는 거라 치더라도 이건 좀…….”
“왜요, 또?”
“아냐, 아니다.”
“또 이러네! 뭔데요, 말해요.”
이번에는 송주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벌떡 일어났고, 나는 양 손을 앞으로 내밀며 다급하게 말했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이런 이유로 누군가를 좋아해도 괜찮은 거냐고.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
“무슨 이윤데요?”
“그게, 그러니까,”
송주는 눈을 찌푸리고 나를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나는 회색 트레이닝복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습니다.
“돌아가려고. 돌아가려고…….”
나는 정말로 돌아갈 요량이었습니다. 내가 깨끗하게 지워버리고 만 신연정이라는, 지독하게 살아 있는 사람으로요. 돌이켜 보면 송주도 내게 돌아오라 소리를 질렀고, 박 부장님도 그렇게 지시했으며, 다빈 씨도 그 축축한 목소리로 애절하게 빌었어요. 요 즈음 내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끔찍한 사고로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닌데, 나는 너무 오랫동안 나를 묶어두고 있었어요. 고집을 부려왔다 싶었습니다. 사회라는 짐승에게 소화당하면서 다들 포기하고 내려놓는 무언가, 나는 그 무언가를 가슴 안쪽에 다시 품어 보기로 작정한 겁니다. 그러니까 이 시점에서 내게 가장 거슬리는 사람은 병운이 되었습니다. 분명 그 때처럼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뿜어내야 할 사람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비실비실 죽어가고 있으니까……. 혹시, 혹시나 내 편지가 제때 도착했다면 어땠을까. 오만하려는 건 아닌데, 그래도 뭔가 달라졌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나는 사랑스럽고 싶었습니다. 다시 그 편지의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 겁니다. 내가 그 때 병운을 많이 좋아했으니까, 그 편지에 꼭 사랑이라고 적혀 있으니까. 나의 회귀하려는 욕구가 그 주변의 모든 것들을 끌어당겼고 병운은 그 중 가장 큰 것이었습니다. 그를 돌려놓고 다시 사랑한다 고백을 저지르는 치졸한 수를 써서라도 나는 돌아가고 말 겁니다. 어딘가 고장났다거나 치사하게 보인대도 어쩔 수 없어요. 그러니 다시 묻겠습니다.
“이렇게 이기적이어도 괜찮은 거야? 내 결핍을 채우는 수단으로 애정을 활용해도 되냐고.”
“아닌 사람을 본 적이 있어요?”
송주는 검은 후드집업의 지퍼를 내리며 기다렸다는 듯 물었습니다. 탄탄한 몸에 딱 달라붙은 아이보리색 운동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베품만을 목적으로 사랑한다는 거, 어쩐지 수상하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는 송주는 왼쪽 입꼬리가 냉소적으로 올라가 꽤나 건방져 보였어요. 대체 무슨 일들을 겪고 다니는 건지. 나는 고개를 돌려 토요일 아침에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봤습니다. 후줄근한 차림으로 천천히 걷는 남녀, 그리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바람막이를 입고 숨을 헐떡이며 지나가는 또래의 남성, 하얀 솜뭉치 같은 강아지 두 마리에게 오히려 끌려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여자. 여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얘네 때문에 못 살아요’ 하는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웃었습니다. 갑작스레 나는 모든 사람들의 이해관계란 것이 눈에 보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모두가 음흉하게 느껴져 어쩐지 오싹했고, 또 마음이 놓였어요. 관계란 게 아무튼 손익 없이는 안 굴러간다면야, 그렇다면야 한결 낫다. 병운에게 당장 달려가 사랑한다고 속삭이더라도 죄의식 같은 건 끄집어낼 필요가 없다. 나는 여전히 나에게 유리한 결론을 내리고 객관적이라 착각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송주는 잔을 들어 남은 커피를 후룩 마시고는 일어나며 말했습니다.
“좋아, 다시 집까지 뛰어서 가보자고요.”
씻고 머리를 말리면서도 나의 다리는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후들거렸습니다. 첫 날부터 팔 킬로미터씩 뛰는 건 대충 봐도 무리였는데. 이 러닝 프로젝트인지 뭔지 하는 게 대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나는 모르겠어요. 송주도 마찬가집니다. 아야야— 소파에 누워 골골대는 소리를 내며 커다란 눈동자를 꿈벅댔어요. 그러다간 휴대폰을 잡고 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나, 브라질은 이런 축제를 하네.”
“뭔데?”
“리우 카니발이라고, 퍼레이드를 엄청 하고 다들 삼바를 추네요. 우리도 한 번 갈까요?”
“뭐?”
나는 너털웃음을 지었습니다.
“해외 한 번 가본 적 없으면서. 브라질을 갈 수 있겠어?”
“그거야, 언니가 워낙 여기저기 다녀 본 베테랑이니까요.”
“나도 이제 옛날이라 기억도 안 난다. 근데 브라질은 위험하다는 얘기도 많아.”
“괜찮아요. 그것까지가 삼바니까. 그 축제까지 가는 길부터가 축제니까요.”
“안 가본 사람들이 말은 잘 해.”
“뭐야. 어디 나가요?”
송주는 여행 얘기를 하다가는 곧바로 옷을 골라입고 화장하는 나를 보며 웬 일이냐는 듯 물었습니다. 그야 그럴 게, 내가 셔츠를 입는 일 같은 건 보통 일어나지 않습니다. 나는 대답 없이 오른쪽 눈으로 윙크를 하고는 몸을 돌려 가방을 챙겼습니다. 송주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 아기처럼 뒹굴뒹굴 몸을 뒤집었습니다.
“너, 지금 좋아하는 사람 어디서 만났다고 했더라?”
“네?”
“그 있잖아. 불쌍해서 좋다는 사람.”
“그렇게 말하는 건 좀 이상한데요.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에요. 알잖아요.”
“그래, 그래. 아무튼 그 분. 어디서 만났어?”
“길 걷다가 말을 걸었어요, 제가.”
“네가? 뭐라고 했는데? 술 마신 상태였어?”
“아뇨, 저는 안 마셨고 이 사람은 취해 있었어요. 그것도 만취. 제가 가방을 흔들면서 연희동을 쫄래쫄래 걷고 있었는데, 눈앞의 보도블럭에 어떤 덩치 큰 사람이 걸터앉아 있더라구요. 얼굴은 새하얀 데다가 울음을 억지로 참는 것처럼 보여서, 그래서 제가 궁금해져서 지나가다 말 걸었죠.”
“뭐라고 걸었는데?”
그러자 송주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습니다.
“……갑자기 왜 이렇게 궁금해해요?”
“그럼 안 궁금하니? 네가 어떤 사람을 좋아라 하는지 당연히 알고 싶지.”
나는 당황하지 않은 척 가방을 뒤적거리며 말했습니다. 송주는 몸을 뒤집어 엎드리고는 잠깐 곰곰이 생각하더니,
“옆에 앉아도 돼요? 했죠.”
하고 사랑스럽게 말했습니다. 나는 송주를 빤히 쳐다봤어요. 장난스러운 미소를 생글생글 달고 아이처럼 고개를 까딱까딱 흔드는 한송주. 늘 내 입가에 만족스런 웃음이 맺히게 만드는, 과거로부터 온 나의 미래. 나는 곧바로 다녀올게, 하고는 문을 벌컥 열고 나왔습니다. 적당히 미지근한 봄의 냄새가 코를 간질였습니다.
회색 소나타는 웅웅 소리를 내며 아스팔트 위를 달렸습니다. 나는 운전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특히나 이렇게 주말에 차를 끌고 어딘가로 가는 성격은 절대 아닌데, 가끔씩 이렇게 꼭 운전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노래는 틀지 않았고, 창문을 열어 봄 색깔이 밴 공기를 한껏 들어오고 나가게 두었습니다. 빨간 신호 앞에 차가 멈춰설 때마다는 고개를 돌려 물이 빠진 듯 파란 하늘을 훑었습니다. 나는 하늘을 좋아하지만, 낮에 하늘을 올려다보는 건 드문 일입니다. 오늘따라 구름이 이상한 모양으로 엉겨붙어 인위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몇 초간 그 구름이 뭘 닮았나 고민하다 뒤에서 빵— 하는 소리가 들려 다급하게 악셀을 밟았습니다.
서울추모공원.
몇 번을 봐도 낯선 글자가 내 얼굴을 스쳐 뒤로 지나갑니다. 절반 정도 채워진 주차장에 안전히 차를 세워 두고 나는 햇살을 온 얼굴로 받으며 내렸습니다. 저 멀리 상복을 입은 남자 둘이서 아무런 말도 없이 담배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나를 짓누르는 이 모래 같은 공기는 몇 번을 들이마셔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하긴, 이것에 익숙해진다면 나는 나를 몹시 미워하게 될지도 몰라요.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은색 건물 안쪽으로 향했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따뜻하고 눅눅한 공기가 내 하늘색 셔츠와 자켓을 타고 얼굴로 올라왔습니다. 고개 위쪽으로 네모난 갈색 안내판에 딱딱한 글자들이 황망히 적혀 있었습니다.
수골실. 운구길. 고별실.
이 건물에 있는 방들은 어떻게 이렇게 유별난 발음을 갖는 걸까. 어디로 가야 할지 확인하면서도 곧바로 힘이 빠져버리게……. 나의 의식은 어느새 십오 년 전쯤의 황량한 하루를 더듬대고 있었습니다. 죽은 사람을 반질반질하게 닦아 놓으면 인형처럼 보인다는 걸 알았던 날. 화장을 하고 나면 어떤 조각도 남지 않고 가루가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는 걸 알았던 날. 선생님을 떠나보내는 중에도 병운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나는 옆에서 그의 손을 꼭 잡고 서 있었습니다. 늘상 둥실대기만 하던 죽음이란 게 어쩌다 우리 피부까지 다가오고 말았을까. 우리는 분명 살고 싶었는데. 우리는 사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내 학창시절의 가장 중요한 만남을 딱 두 개 꼽으라면 하나는 선생님이고, 하나는 병운이 될 겁니다. 아마 내 짧은 삶 중 가장 운명이라 부르기 적합한 것 같아요.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건실한 학생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뻔하게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친구들을 괴롭히고 또 불법적인 행동을 일삼았다는 건 아닙니다. 그런 건 멋이 없잖아요. 내가 모두의 지시를 순순히 따르지 않았던 건 그저 멋있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올바른 어른으로 가꾸어 나가겠다는 담임 선생님의 격언들과, 그걸 듣는 척 연기하지만 결국 아무런 의미도 보상도 없는 짓만 해대는 학생이란 족속들. 나는 둘 모두 미워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러니 둘 모두에 가깝게 가지 않고 그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어설픈 라이프스타일을 고집했습니다. 집단에 대항하고 혼자가 되는 게 대체 뭐가 멋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한 번쯤 반항과 고독의 유혹이 찾아오는 겁니다. 당연히 내게도 처음에는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치만 함께 모여 카페를 가고, 노래방을 가고, 미니홈피를 꾸미고(아시다시피 그 땐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지쳐 깨달아버린 겁니다. 여기엔 우리의 의지라는 게 없다. 무얼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없어. 그저 대한민국의 십 대 여학생이라면 무릇 해야 할 것들을 정신없이 쫓아다닐 뿐이야. 이런 식이면 몇 년이 지나도 달라질 게 없다. 학교가 나를 멍청하게 만들고 있어— 이상하게 말이 없어진 내게서 친구들은 점점 멀어졌고, 나는 그걸 어떤 진화처럼 여겼습니다. 필요없는 부위는 퇴화시켜 가며 인류는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렇게 나는 혼자가 되어 개인적인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첫째로 배운 것— 혼자란 것은 우선은 즐겁습니다. 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과 있으면 어떤 규약이 생겨요. 배려나 도덕은 알게 모르게 우리를 묶고 피로하게 만들고 있었던 겁니다. 옆 사람들과 묶었던 밧줄을 풀어던지고 나는 어떤 행동도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프다며 수업을 종종 빼먹고 학교 밖으로 나돌아다니고, 당구장에 들어가 사장님께 여러 기술들을 배운다거나, 아니면 급식실에 숨어들어 점심으로 나올 돈가스를 몰래 훔쳐 달아나기도 했어요. 나는 이제서야 진정 어떤 교육을 피부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진실 1. 수업이란 사실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배우는 자가 리드하는 것.
나는 진실을 수집하는 데 상당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상가 잡화점에서 구매한 아이보리색 노트에는 계속해서 메모들이 쌓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귀여운 수준의 방황입니다. 나는 규약에서 벗어나는 짓거리를—범죄까지 가닿지 않는 선에서— 무엇이든 해내고 그걸로부터 아찔한 감상을 얻어가고 싶었습니다. 한 번은 급식의 메뉴가 형편없다며 반찬으로 나온 생선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탓에, 뒤에서 지켜보던 영양사 선생님이 눈물을 훔친 일도 있습니다. 그 눈물을 우연히 목격한 나는 방에 혼자 앉아 머리를 붙잡고 후회했어요. 진실은 예외없이 몇 줄이 추가됐습니다.
진실 7. 예의란 걸 갖추는 편이 좋다. 깡패 쪽은 아무래도 품격이란 게 없어. 스스로 영혼의 순도를 떨어트릴 필요는 없다.
이런 날들이 이어지는 중, 우리 집에 한탄의 목소리가 가득했던 건 자연스런 일입니다. 나의 부모님은 잘 닦인 길을 따라 튼튼한 가족과 집을 건설해 오신 착실한 분들입니다. 나처럼 제멋대로에다가 한심한 짓거리만 해대는 딸이 나오기엔 너무나 안정적인 가정이었어요. 아버지는 나를 보면 언제나 의문이 먼저였습니다.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유별나려고 하는 거지? 어떻게 이렇게 학업을 못 따라가? 막상 중학교 때까진 공부도 곧잘 했으면서. 너를 어떻게든 잘 교육시키려고 서울로 이사까지 왔는데. 우리 중 그런 유전자를 물려준 사람이 대체 누구야? 하며 어머니를 탓하는 일도 있었구요.
하루종일 공원을 서성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가면, 부모님의 불신이 방 안쪽까지 따라와 누웠습니다. 거실에서 아버지의 친구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제 때 왔어야 할 중이병이 이렇게 늦게 와서 어떡해’ 하는 목소리가 누워 책을 읽는 내 귀까지도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또 그걸 듣고 공감한다는 듯 깔깔 웃는 어머니와 그 친구분들의 어른스런 목소리도. 그 날 나는 얼굴을 베개에 묻고 입을 막아가며 울었습니다. 부모님에게 신뢰를 받지 못해서라거나 하는 이유는 전혀 아닙니다. 그런 거야 달갑진 않아도 견딜 수 있었어요. 진정 두려웠던 건, 내가 겪는 이 풍랑이 정말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무언가일까봐. 그러니까, 주류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내 행동이야말로 사실 그저 무한하게 주류에 속하는 일일까봐 겁이 났던 겁니다.
어머니는 애를 썼습니다.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 하지 않겠냐고 이곳저곳의 학원에 나를 끌어다 놨어요. 세상에 대학을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학원을 갈 때마다 돈이 너무나도 아까웠습니다. 대체 저 수학이나 영어 같이 어딘가에 틀어박혀 알아가는 게 얼마나 대단하길래 매달 삼십 만원은 훌쩍 넘는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는 걸까. 모두 합치면 백 만원 가까이 되는 그 돈이라면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지상낙원 같은 곳으로 훌쩍 여행을 떠날 수도 있을텐데……. 그러다가는 정말로 궁금해졌습니다. 수업이란 게 그 정도의 값어치를 하는지요. 한두 번쯤은 진정으로 노력해보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팔짱을 끼고 딴청이나 피는 게 아니라, 정말 그 수업이란 체계를 뼈까지 발라서 흡수해 보자는 작정으로.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아 이글대는 눈빛을 쏘며 열심히 그 내용을 받아적었습니다. 부모님 말대로 유전자가 나쁜 건 아니었던 건지 나름의 이해는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체, 대체 이게 어디에 그 쓸모가 있는 건지가 내게는 다시 문제였어요. 수학으로 따지자면, 친구들과 돈을 나눠 내거나 잔돈을 계산하는 데에는 초등학교 때 배운 것들로 충분했어요. 피로한 어른들은 일상 중에 미적분 같은 걸 잘도 사용하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그저 허울뿐인 공식들이었습니다. 영어도 같아요. 아무래도 외국인을 마주쳤을 때 분명히 쓸모가 있겠지만, 뭔가 이상했어요. 나는 그 학원이란 데서 영어를 입 밖으로 꺼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현재형, 과거형이나 수동태 같은 이상한 한자를 오히려 더 많이 중얼거린 것 같습니다. 정작 해외에 떨어졌을 때 그런 것들이 도움을 줄 거라는 기대는 들지 않았습니다.
국어의 경우가 그나마 나았습니다. 대부분의 것들은 빽빽한 암호처럼 머리를 아프게 했지만, 정말 가끔은 문제라고 등장하는 지문들이 나의 가슴을 쿡쿡 찔렀어요. 몇 개의 지문은 나의 풍랑을 함께하는 것처럼 위로를 주기도 했습니다. 분명 그들도 비슷한 고민을 했던 거예요. 끝없이 괴롭고 미워했던 겁니다. 우리에겐 그저 무얼 미워할지가 중요한 거니까요. 세상에는 천만 가지 아름다움이 있을 텐데, 그 중 무엇을……. 두 번째 수업이 끝나고 나는 비밀스럽게 이런 문장을 끄적였습니다.
진실 12.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
- <실화>, 이상
하지만 결국 그 수업이란 것이 결국에는 매한가지로 아쉬워졌습니다. 우선은 도가 지나친 암호 같은 글들에 머리의 퓨즈가 나가 버리고 말았어요. 친절하고 읽기 쉽게 써 주면 어디 문제라도 생기는 건지, 어렵고 싶어서 안달이 난 글들을 볼 때마다 그 책이라는 것에 흥미가 뚝뚝 떨어졌습니다. 또 자잘하게 귀찮게 구는 문법이란 건 차치하고, 작품 해설이라는 그 공식들도 자꾸만 나에게 억지를 부리고 강요했어요. 자, 이건 현대인의 자아 분열을 뜻하는 내용이야. 이건 죽음을 뜻하는 거고, 꽃은 그걸 두려워하는 주인공의 마음을……. 나는 더 이상 문제를 풀기 싫어졌습니다. 작가가 직접 내 귀에다가 그렇게 속삭인대도, 나는 귀를 막고 도망갔을 겁니다. 좀 내버려 두세요. 글이 본인 손을 떠났으면, 그러면 이제 우리가 알아서 좀 하게 두세요. 나는 결국 저녁을 먹던 중에 숟가락을 내려놓고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나, 학원을 아무래도 바꾸고 싶은데요.”
“어?”
어머니는 된장국을 퍼올리던 숟가락을 멈추고 나를 똑바로 쳐다봤어요. 몇 초간을 말없이 그러더니, 활짝 웃으며 빨라진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래, 그러자.”
그러고는 채 반찬을 다 집기도 전에 한 마디 더 덧붙였어요.
“뭐가 마음에 안 들어?”
“그냥요. 수업이 좀 답답해서.”
어머니는 신이 나셨는지 곧바로 여기저기 학원을 수소문했습니다. 그렇게 바로 다음 주,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하는 늦가을 무렵부터 곧바로 새로운 학원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사실 학원이라기보다 소규모의 공부방이라 부르는 게 적합해 보였어요. 그 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선생님과 마주했습니다.
그 곳은 공부를 하는 곳이라 부르기엔 너무 친밀했습니다. 그 날 처음 등장한 나에게 모두들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을 걸고 이것저것 물었어요. 학교는 어디냐, 연예인은 누구 좋아하냐, 집은 어디냐 하는 식. 게다가 어떤 학생들은 선생님께 반말을 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나는 그것에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관계 그 이상을 넘보는 관계. 나는 그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멍하니 그들의 대화를 듣다 고개를 돌리자, 선생님의 눈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눈동자를 어떻게 설명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어요. 무서울 정도로 객관적인 시선이 웃지도 않고 나를 관통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나는 무서웠어요. 선생님은 잠시 그러고 있더니 내게 물었습니다.
“그래, 연정이는 뭘 좋아하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갑작스레 나에게 관심이 쏠린 게 부담스러운 것도 맞았지만, 뭘 좋아하냐는 그 말에 ‘혼자’가 곧바로 떠오른 게 사실입니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르고, 나는 선생님을 똑바로 쳐다보고 속삭였습니다.
“글쎄요, 싫어하는 건 많은데.”
그게 선생님께 건넨 나의 첫 문장입니다. 선생님은 눈을 크게 떴어요. 으음, 사실은 내 쪽에서도 그 말을 하는 나의 모습이 한참은 못나 보여 놀랐습니다. 나는 그저 좋아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무언가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저 입술을 잔뜩 내밀고 모든 걸 바라보는 그런 사람. 세상에는 싫어할 게 많은 게 아니라 그저 내가 싫어하고 싶은 게 많아. 오 초만에 내가 싫어지는 경험을 했어요. 선생님과의 대화는 그런 거였습니다. 별 말이 오가지 않아도 나의 무언가를 일깨우는 힘이 있는 것. 수업은 받는 자가 리드하는 거라고 했지만, 리드하는 것 자체도 따라오는 사람이 중요한 듯 싶었어요. 서로의 알 수 없는 주도와 순종. 배운다는 것은 생각보다 복합적으로 서로를 끌고 가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식으로 나는 늘 무언가를 주먹으로 깨부수고 나왔습니다. 애초에 그 수업이란 것도 조금 특이했어요. 우리는 교재를 펼쳐 놓고는 오히려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더욱 많이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어머니가 들으면 기겁을 할 거예요. 하지만 그러고 나서 교재를 다시 들여다보면 결국 나만의, 정말 나만의 사건일 게 분명한 것과 맞닿아 있는 진술이 꼭 지문으로 등장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방면에서 엄청난 재주가 있었어요.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수업시간에 둘러본 지문을 다시 읽고, 또 잠들기 전에도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내 한 번 더 읽곤 했습니다. 나를 세공하는 시간은 즐거웠습니다.
우리는 날씨가 좋으면 대여섯 명이서 근처의 공원으로 나들이를 가고, 겨울이 오고부터는 아파트 앞에 쌓인 눈을 서로에게 마구잡이로 던져버리기도 했습니다. 나는 고등학생 이 학년씩이나 되어서 다들 아이처럼 논다고 부끄러운 티를 내었지만, 꼭 한 번 시작하고 보면 그런 건 신경쓰지 못할 정도로 몰입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위선자. 아마도 그게 나를 대표하는 소개가 될 겁니다. 자꾸만 어딘가 깊은 곳에 잠겨 혼자서 고뇌하는 척하지만, 실상은 그저 모두와 눈밭에서 구르고 싶을 뿐인 소녀. 모두를 아래로 보고 무시하는 동시에 그들을 한없이 선망하고 질투하는 사람. 이런 기질이 발견된 것 또한 바로 그 시절이에요. 틱틱대는 나를 철저히 무시하고 눈을 던지는 그 친구들 덕분일지도 몰라요. 확실한 건 그 학생들 중에 고상한 체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습니다. 함께 뒹굴며 웃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천진함이 학생의 의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부끄럽게도 계속해서 고독을 연기하겠지만, 먼 훗날에 누군가 학창시절을 물으면 나는 별 수 없이 이 순간을 떠올리겠구나— 몇 달 동안 거역할 수 없는 장면들이 쌓였습니다.
그 날도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서로의 얼굴을 몽당연필로 그려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적당한 피로감이 몸을 맴돌고 있었고, 셔츠 아래로 습한 공기가 아랫배를 찔러 대 아무래도 이제 여름이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몇 분이 지나자 쿠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무거운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산은 물론 없었어요. 이런 데 물론이란 단어를 쓴다는 걸 알면 어머니는 화를 냈을 겁니다. 나는 도림천 아래로 슬그머니 내려갔습니다. 빠르게 가도 젖고, 느리게 가도 젖는다. 그렇다면야 나의 선택은 뻔한 겁니다. 나는 젖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내 온 몸 위로 물이 흐르고 튄다는 것. 그게 무엇이 되었든 흠뻑 내 전신을 맡길 수만 있다면…….
물가의 산책로에는 정말이지 아무도 없었어요. 비는 나를 때렸습니다. 주변의 모든 소리는 쏴아아—로 덮였어요. 차들도 쏴아아, 강물도 쏴아아, 나도 쏴아아. 문득 주저앉아 있는 힘껏 울음을 쏟아내고 싶은 충동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무슨 연기자도 아니고—사실을 따지자면 언제나 연기를 하고는 있었지만—엉엉 울고 싶다고 해서 즉시 그럴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어찌저찌 눈물을 뽑아낸다고 해도 그건 차력 같은 것밖에 안 됩니다. 빗방울은 점점 거세져 내 얼굴을 세차게 때렸습니다. 우는 것도 마음대로 못 하는 나약한 사람. 울지도 못하는 인간이란 것. 나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뛰었습니다.
“으아아아아!!”
끈이 반쯤 풀린 단화 안쪽에서는 계속해서 찰박대는 소리. 회색 세상은 뒤로 천천히 지나가고. 이 분 정도 뛰고 나서 나는 헉헉대며 무릎을 잡고 멈췄습니다. 내가 아무리 악을 쓰고 소리를 질러도 전부 남들에겐 쏴아아—하며 흘러갔을 겁니다. 조금은 후련했어요.
그 때 저 멀리서 한 남자가 걸어왔습니다. 대체 언제부터 걷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천천히 발걸음을 유지하면서. 그는 분명히 검은 우산을 뒤집어쓴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회색 교복 바지를 무릎 위까지 걷어올리고는 슬리퍼를 신고 있는 또래의 학생이었습니다. 옆 동네 신림고등학교 교복이었어요. 부끄러운 마음이 슬쩍 든 게 사실입니다. 봤을까? 봤겠지? 생각하는 사이 그 남자는 점점 나와 가까워졌습니다. 마침내 서로의 안광을 마주했을 때, 나는 그 사람이 내게 말을 걸 거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냥 알 수 있었어요. 그야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괜찮으세요?”
예, 그럼요—
말 대신 헉헉대는 거친 숨소리가 튀어나왔습니다. 예, 하고 다시 입을 열려고 하는데 그 남자가 뒤로 멘 가방을 앞으로 넘겨 뒤적대더니 접는 우산 하나를 꺼냈어요. 그는 전반적으로 다급해 보이지는 않았어요. 이왕 건네줄 거면 좀 빠르게 움직이면 좋으련만, 그는 먹색 구름처럼 미적대며 그걸 조심스레 꺼내 나에게 건넸습니다. 사실 나는 이미 젖어서 더 비를 맞아도 무방하다고 판단했고, 그에게도 그 판단을 공유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괜찮다고 말하려 하는데— 그런데 그 사람이 웃고 있었어요. 나는 그 웃음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무언가 산뜻하고 짜릿한 일이 있었던 건지, 혹은 내가 그의 입꼬리를 올려버릴 만한 이유가 되었던 건지 헷갈렸어요. 그 사이 그 입꼬리는 좀더 올라가 이제는 잇몸까지 보일 지경이었고,
“제가 이 동네에 살아요.”
“예?”
“제가 아끼는 우산이거든요. 저를 다시 마주친다면 꼭 이 우산을 돌려주셔야 해요. 꼭이에요.”
“아, 예.”
그렇게 그는 부슬대며 멀어졌습니다. 나는 우산을 쓰지 않을 것이었고, 그걸 이미 알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내 손에 느릿느릿하게 뭔가 쥐어주고 떠나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어요. 무림 고수의 칼은 느리지만 막을 수 없다던데, 아마도 그가 웃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막을 생각을 미처 떠올리기도 전에 베였어요.
그렇게 나는 모르는 사람이 건네 준 우산을 펼쳐 썼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산은 서너 개 살이 나가 도저히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어요. 나는 정말이지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머리 위에 치밀하게 얹어도 빗줄기 하나 막을 수 없는 우산. 막아도 막을 수 없는 것. 피할래도 피할 수 없는 것. 누군가 길을 걷던 나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호의로 볼 수 있나? 누군가 길을 걷던 나를 놀렸다. 쫄딱 젖은 나에게 구원이 되려 하는 척 하면서 우두커니 좀더 젖게 만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의문을 무단 투기하고 도망쳤다.
그렇게 나는 한동안 외출할 적마다 가방 한 구석에 고장난 의심을 잊지 않고 챙겨넣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을 찾고 싶었습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대체 왜 벌어진 건지 묻고, 그에게서 진실을 하나 캐낼 생각이었습니다. 이 주 뒤 여느 날처럼 수업을 들으러 발걸음을 옮기는데, 아파트 앞에서 나는 그 사람이 선생님과 옥신각신 다투고 있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나는 두 눈을 의심하며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선생님은 반갑게 나를 보며 말했습니다.
“처음 보지? 별 사이는 아니고, 내 아들이야.”
“예?”
그 아들은 아무런 말이 없이 나를 보다가는 말했습니다.
“김병운입니다.”
“웬 존댓말? 둘이 나이도 같은데.”
내가 요 즈음 정신을 빼앗긴 사람이 선생님의 아들이라는 것. 어안이 벙벙한 중에 선생님은 나에게 지시사항을 내렸습니다.
“아, 잘 됐다. 연정이가 병운이 데리고 레스토랑 좀 다녀와라. 예약 힘들게 했다고 애가 화를 내네.”
나는 그 알 수 없는 고등학생의 이름이 김병운이고, 그는 그 날 도림천 물가에서 미친 척 뛰고 있는 여자를 보고는 헐레벌떡 내려와서 우산을 건네준 거였으며, 원래 쓰던 우산의 살이 나가 편의점에서 새로운 걸 구입한 뒤였음에도, 그러니까 잔뜩 고장이 난 우산임을 알면서도 그 여자에게 굳이 다가가 그걸 건넸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이해가 안 가. 그 때 대체 그 고장난 우산은 왜 준거야?”
병운의 침대 옆자리에 누워 물으면 그는 파하하 하고 웃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뭐라도 해야지.”
나와 병운은 거의 매일같이 함께 있었습니다. 아, 당장 연인이라 부를 만한 관계는 아니었어요. 나는 연애란 걸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또 그게 나에게 딱히 필요하다 생각해본 적도 없었어요. 그렇지만 병운과 함께 있는 것은 나에게 알 수 없는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그건 병운이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말이 잘 통해서라던가 하는 이유는 아닙니다. 그는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중에 가장 이해할 수 없었어요. 모두에게 굳이 말을 걸어 개입하고 또 도움을 주려는 사람. 그는 분명 내가 아니라 그게 누구였든간에 빗속으로 뛰어가 우산을 건네줄 것이었고, 그 오지랖을 내세워 보란 듯이 신림고등학교의 학생회장까지도 맡고 있었습니다. 같이 걷다 보면 자꾸만 처음 보는 사람과 인사가 오갔어요. 누군가 무거운 걸 옮기기라도 하면 어느새 그 옆에 붙어 낑낑대며 나에게 얼른 와서 도우라고 소리를 질렀구요. 나는 그걸 보통 멍청하다 불렀습니다. 세상엔 굳이 피곤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하지만 그것이 나를 병운과 함께하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멍청한 사람들을 미워하지만, 도가 넘게 멍청한 사람은 오히려 좋아하는 편입니다. 선생님을 따랐던 것도 같은 이유라고 말한다면 나는 건방진 걸까요? 아무튼 나는 학교가 끝나면 매일같이 병운에게 달려가 함께 여기저기를 걷고 또 공부를 했습니다. 그 공부라는 것이 사실 재미가 있었어요. 병운은 성적도 꽤나 좋았습니다. 나는 어른으로서의 미래, 병운과 함께하는 대학 생활을 꿈꾸며 매일같이 잠들기 전까지 공부에 매진했어요. 한 명의 인간이 습관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는 모두가 알 것이라 믿습니다. 그는 이미 나의 심장 안쪽 대체할 수 없는 자리에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나는 그 사람에게 얼마나 특별한 걸까?
아침 8시, 등교를 하고부터 마지막 수업이 끝날 때까지 나는 거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혼자가 되어 공부를 하는 편이 편했던 겁니다. 내 손으로 그 친구라는 관계를 포기하는 바람에 모두들 돌아서게 되었으니, 전부 내 잘못인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병운에게는 몇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있고, 나에게는 정말로 병운밖에 없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간절함의 불균형. 이것이 문제였어요. 매일같이 만나는 건 특별한 사이라는 말은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욕심이 커진 겁니다. 더 깊숙히 침투하고 싶어. 애인이 되고 싶다. 서로만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애인. 그 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어요. 애정이란 기본적으로 결핍을 생산하는 일이란 걸. 독점. 그가 나를 독점하도록 두고 있으니, 나도 독점을 해야 만족하겠다는 장사치 같은 마음가짐. 병운과의 만남은 나를 자꾸만 못난 사람으로 이끌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또 그 사람이 한없이 미워지기도 하고, 아무튼간 알 수 없이 위태로운 날들이 이어졌어요.
“자, 여기서 당신이란 게 뭘까?”
“저, 얘기할 게 있어요.”
복잡한 근대시 위로 신이 나서 줄을 긋는 선생님께 나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내가 병운을 이렇게나 애틋하게 생각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또 얼마나 하찮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만큼 나는 지저분한 사람이라는 것. 또 그게 나를 얼마나 못 견디게 만드는지. 좋아하는 사람의 아버지에게 연애 상담을 하는 것도 참 웃긴 일입니다만 선생님은 웃지 않고 들었습니다.
“다행이네.”
“뭐가요?”
“아무도 못 좋아해보고 졸업할까봐 걱정했거든.”
선생님의 입가에는 인자한 미소가 서려 있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아들을 좋아해도 아무 걱정도 안 돼요? 솔직히 요즘은 어디 다리 같은 데를 부러뜨려서 다른 사람들 못 만나게 옆에만 두고 싶다는 생각도…….”
나는 말을 하다가 말았습니다. 이런 것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는데.
“너 같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데?”
“사람들이랑 어울리지 못하잖아요. 사회란 거랑 자꾸만 못 섞이고 이리저리 나뒹굴잖아요.”
“연정아,”
선생님은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빨간색 체크 무늬의 셔츠를 살짝 만지고는 펜을 탁 내려놓았습니다.
“그럼 나는 어떤 것 같아? 사회랑 잘 섞이려나?”
“선생님이야 이렇게 학생들도 잘 다루시고, 나 같은 사람도 편하게 만드는 거 보면 상당히 사회성이 있으시죠.”
“그래?”
“그럼요.”
“나는 몇 년 전에 죽을 뻔 했어.”
어느새 목소리엔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무서운 듯 초점이 나간 눈을 살짝 찡그렸고, 몸을 살짝 떨며 침을 삼켰습니다.
“숨이 안 쉬어지더라고. 대치동에 있는 큰 학원에서 일할 때. 학생들이고, 학부모들이고, 동료 선생들 하며, 전부 진절머리가 나고 토할 것 같고. 또 나도 그렇고.”
“…….”
“그래서 도망쳤지.”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몇 초간의 회상과 공포를 어렴풋이 상상하면서. 선생님은 그러다가는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고개를 살짝 흔들고는 다시 날 보며 웃었습니다.
“지금 내가 괜찮아 보인다면, 아마 그 곳을 그리워하기 때문일 거야.”
“그립다구요? 돌아가고 싶다는 거예요?”
“어쩔 수 없는 거지.”
나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교재를 만지작거렸습니다. 그러던 중 그 따뜻한 목소리로 차가운 말이 날아왔습니다.
“연정아, 사람들이 전부 바보인 것 같아?”
“…….”
“사람들이 다들 멍청해서 이 사회라는 데 착 달라붙어 사는 것 같아? 다들 수동적으로. 죽을 만큼 힘든 것 없이, 그런 고민 한 번 없이 살아오는 것 같아?”
나는 조금 억울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뭐가 억울한지는 고민해봐도 알 수 없었습니다.
“선택할 수 있잖아요. 어떤 직업을 가질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또 만날지. 어떻게 살아갈지 스스로 고를 수도 있잖아요.”
“……연정아, 선택했다고 믿는 것들.”
“…….”
“정말로 우리가 직접 고른 게 맞을까?”
“그건…….”
“나는, 나는 모르겠다. 나는 결국 사회 안에 발을 담그고 있어. 그래서 계속 싸우는 중이야.”
“뭐랑 싸워요?”
그 때 선생님의 눈빛은 쓸쓸함보다는 어떤 비장하게 타오르는 불길 같았습니다.
“모자란 지금과 도달할 수 없는 미래 사이에서. 인류가 쌓아온 규칙과 그걸 벗어나려는 은밀한 열망 사이에서. 능동과 수동 사이에서, 법과 욕구 사이에서, 부유와 침전 사이에서. 매일같이 진동.”
나는 그 지점에서 알 수 없이 나의 위선에 대해 떠올렸습니다. 위선자 신연정이란 어떤 모습인가.
“나는 네가 사람들을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도 그만두고, 덮어놓고 부정하지도 말고. 그들로부터 빼앗을 수 있는 걸 잔뜩 빼앗고, 네가 누릴 수 있는 걸 한 방울도 놓치지 않고 누렸으면 좋겠어.”
선생님은 그러고는 살짝 웃으며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이미 그러고 있는 거겠지만.”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선생님이 얼마나 사람들을 좋아하는지는 얼추 알 것도 같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실 나도 사람을 좋아했습니다. 누구보다 좋아하니까 그렇게 억울하고 분했던 거예요.
“저는 너무 부당한 것 같아요. 내 선택마저 직접 고른 것들이 아니라면.”
“우리가 언제 한번 완전히 공평한 적 있어? 늪에 빠진 채 시작하는 게 인간이야. 꿈으로 가득한 누군가가 가차없이 짓밟히고, 저 먼 곳에서 일어난 일로 내 세계가 무너져. 정당하지가 않다고. 억울해서 정신이 나갈 것 같아. 그런데,”
그 때 선생님은 거의 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선생님은 말 한 번 더듬지 않고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 비장함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그 뒤로도 선생님은 다시 수업을 재개했지만, 나는 좀처럼 집중을 못하고 부모님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나의 부모님. 안정적인 가정이란 걸 구축하기 위해 어머니와 아버지가 얼마나 큰 것들을 감내했는지. 나는 손쉽게 그 안정성을 폄하해 왔습니다. 그걸 매일같이 누려 놓고서, 이 위선자. 어쩔 수 없는 모자란 사람이란 생각. 왠지 나도 그 포장된 길이라는 걸 착실하고 꿋꿋하게 한번 걸어보고도 싶었어요. 거칠고 거룩한 길. 분출하는 욕구와 끊임없이 싸우고, 서로의 꿈을 공유하는 그런 사회라는 길. 선생님 말이 맞아요. 나는 그저 겁쟁이였습니다. 건실함을 미워했던 게 아니라, 그저 그 보편이란 걸 따라갈 능력이 없었습니다.
다시 겨울이 되었고, 나는 학교에서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옆자리 친구에게 밥을 함께 먹어도 되냐고 물을 땐 확실히 수줍고 부끄러웠어요. 그렇지만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무서워하기로 했습니다. 남김없이 쟁취하기로요. 친구들은 얘가 뭘 먹고 갑자기 이러나 하는 표정이었지만, 몇몇은 점차 원래부터 그랬던 양 나를 편하게 대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는데, 온전히 그 친구들의 대범함 때문이었을 겁니다.
또 나는 병운을 붙잡고 마음을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애정을 고백하는 일이 그렇게 신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심장이 쿵쿵 소리를 내고 머리가 뜨거운 게, 아픈 것도 같았구요. 토해내야 했어요. 그 순간을 나는 뺏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물론 우리 사이의 공공연한 사실입니다만, 아무튼 선언하는 것과 아닌 것은 분명히 달라요. 병운은 놀란 표정도 없이 함박웃음을 짓더니 나도 네가 좋아, 하고 말했습니다.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나는 수줍음을 정말로 좋아합니다. 수줍음이야말로 상대방의 태도를 전부 잡아먹어 버립니다. 완전히 무적인 거예요. 사람들을 무방비로 만들고 강하게 덮칠 수 있도록…
여러가지 대화들이 나를 새롭게 조립하고, 굵직한 사건들로 못을 박아대던 날들. 그 즈음 나는 분명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이었습니다. 매일매일 축제라도 있는 것처럼 아침에 눈을 뜰 때 미소가 얼굴에 붙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당함. 그것은 언제나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모양새로, 집채만한 파도처럼 삶을 덮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학원 안에서 싸늘하게 식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박진서는 내가 처음 선생님께 수업을 받으러 갔을 때부터 먼저 인사를 건넨 동갑내기 남학생이고, 그 때부터 이미 선생님과는 친구사이인 것마냥 반말로 대화했습니다. 아마 중학생 시절부터 학원을 다녀와서 그런 것 같았어요. 진서는 병운과 같은 학교를 다녔는데, 상대의 기분을 파악하고 대화를 유리하게 끌어가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와 처음 이야기할 때 나는 확실히 눈치는 빠른 녀석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또 한껏 줄여 잔뜩 좁아터진 남색 교복바지에 회색 후드를 걸쳐입고 다니는 진서는 언뜻 보기에도 불량함을 담당하고 있었어요. 실제로 진서는 우리끼리 나들이를 간다던가 하면 어디서 났는지 모를 담배를 자꾸 꺼내 물고는 멋진 체를 하며 피웠습니다. 그렇다고 막 유해한 사람처럼 보이지는 또 않았어요. 내가 몹쓸 놈이라며 혀를 끌끌 차면 진서는 그저 웃었습니다. 그 웃음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사실 진서를 크게 나쁘게 생각하진 않았어요. 껄렁대는 면모는 가득하지만 나름의 선은 지킬 줄 아는 놈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랬던 진서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온라인 불법도박에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나에게는 그런 언급도 하지 않을 뿐더러 티도 낸 적이 없어 그런 사실은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만 원으로 따고 잃고를 수없이 반복하다가, 조금의 돈을 따내자 이내 손이 바들바들 떨린 겁니다. 이게 만 원이 아니라 백만 원이었다면……. 아니, 천만 원이었다면? 그렇게 진서는 주변 친구들로부터 돈을 빌리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도 물론 내켜하지 않았지만 진서는 그 약은 언변으로 총 오십만 원이나 되는 돈을 빌려 모았습니다. 그리고 운이 정말 나쁘게도 그 돈은 도박을 통해 일주일만에 삼백만 원이 되었습니다. 빌렸던 돈은 이자까지 쳐서 소위 투자자들에게 돌아갔고, 그 학생들은 진서에게 모종의 신뢰를 가졌을 뿐더러 본인이 직접 도박에 뛰어드는 경우도 많이 생겼어요.
진서가 더욱 대담해지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습니다. 벌어들인 돈으로 금세 명품 옷가지들을 사들인 뒤, 그는 곧바로 다시 돈을 여기저기 빌렸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진서의 옷들이 작은 기업을 운영하는 그의 아버지의 재력인 줄만 알았습니다. 어디서 샀는지와 같은 질문을 건네지 않은 나의 잘못을 아직도 후회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조금씩은 의심하는 분위기였지만, 학생들은 진서에게 이전보다 큰 돈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로 모인 돈이 총 삼백만 원입니다. 어떤 어른에겐 한 달이면 벌 수 있는 돈이겠다만, 열여덟 살의 고등학생이 단 삼 일만에 모두 잃어버리기엔 분명 꽤나 큰 금액이죠. 첫 번째 도박에서 돈을 따낸 게 진서에게는 크나큰 불행이 되었습니다. 아니, 나는 이것을 불행이라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불행이란 건 자연재해처럼 막을 수 없어야만 하니까. 이런 비극 같은 건 누군가가 조금만 개입했다면 금세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하물며, 하물며 내가 조금만 주변에 관심이 많았다면. 내가 조금만 진서를 살펴 봤다면, 돈을 모두 잃고 손을 달달 떨고 있는 진서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를 다가가 물었다면. 그 때까지 나는 여전히 병운을 제외하고는 대화할 가치가 없다며 고결한 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진서가 그 돈 문제로 자신의 부모님이 아니라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음을—그것도 아마 반말로요— 또 선생님이 그 삼 백만원을 모두 자신의 돈으로 해결해 줬음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병운은 몇 년이 지나도 그 무지에 대해 후회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알지 못하는 게 문제가 된다. 그런 건 당연한 겁니다. 우리에게 생기는 모든 문제는 전부 뭔가를 알아서 생기거나, 알지 못해서 생기는 거니까요. 다만 알지 못했던 사람은 피눈물을 흘리며 한참을 자책하는 겁니다.
진서가 그 도박을 멈추지 못했던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 나이에 그런 방식으로 돈을 벌어보는 것은 마약보다도 중독성이 강한 일이니까. 손을 아예 안 대면 안 댔지, 한 번 경험해 놓고 그걸 내던지는 일은 있을 수 없었어요. 진서는 당연하게도 또다시 돈을 빌려 도박을 했습니다. 점점 그 방식이 치졸해진 것이, 이번에는 친구들에게 어머니가 아프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어머니가 입원을 했는데 본인은 할 수 있는 게 없다느니, 도박을 통해 수술비를 벌겠다며 눈물 연기까지 펼쳤습니다. 연극의 희열. 어쩌면 진서는 돈보다는 남을 속이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꼈던 건지도 몰라요. 결국 그는 투자자들과 쌓아 둔 나름의 신뢰로 다시 오백 만원을 모았습니다. 몹쓸 연기였어요. 진서의 어머니는 건강하셨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는 어느새 벌써 네 번의 수술이 진행되었고, 그 사이 진서는 결국 그 도박 사무실이라는 곳과 또 친구들에게 총 이천 만원에 달하는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첫 번째로 진서가 찾아왔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 문제였습니다. 나는 처음엔 그게 문제가 된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저 위태롭게 엇나가는 제자의 부탁을 귀기울여 들었을 뿐인데……. 그저 아무도 다치지 않기를 원했을 뿐인데. 진서는 자신의 부모님에게는 단 한 번도 도박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는데, 선생님께는 돈이 떨어질 때마다 달려와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처음에는 스승으로서의 충고 정도로 따끔한 조언을 주셨을 겁니다. 제가 아는 선생님이라면 그래요. 그렇지만 진서가 계속해서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그 도박이란 기질을 벗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돈은 스스로 해결하거나 부모님에게 상의를 하는 편이 좋다. 책임지지 못할 일은 하지 마라. 돈이라는 게 그런 식으로 쉽게 들어오려면 당연히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나는 더이상 네게 돈을 빌려줄 수 없다. 진서는 이런 말들을 들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리고 그 단호함과 가르치려는 말투에 화가 나 선생님과 몸싸움을 했다는 것도요. 덩치가 더 큰 선생님이 적당히 힘을 써 가며 진서에게 그만하라 호통을 쳤지만, 진서는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고, 미리 품에 숨겨놓은 칼을 마구잡이로 들이밀었습니다. 그런데 실수로, 정말 실수로 그게 연한 피부 안쪽으로 밀려 들어가는 바람에 선생님의 피가 너무 많이 바깥으로 새어나오고 말았다…….
여기까지가 판결을 받기 전 만난 진서가 들려 준 이야기입니다. 진서는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듯 말했습니다. 후회라는 감정을 진서가 여전히 가지고 있다면야, 그는 정말 후회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미 어머니도 연기로 입원시킨 전적이 있는 사람을 내가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어요. 그 하얗고 얄상한 얼굴이 그대로 찢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온 머리에 가득했습니다. 정당하지가 않다고. 억울해서 정신이 나갈 것 같아. 왜 선생님이, 병운이, 그리고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하는지. 이딴 쓰레기 같은 새끼가 여전히 숨을 쉬는데 다른 목숨 하나가 희미하게 사라져 갔어야만 했는지. 이 염치없는 놈이 선생님을 찌르고 손을 떨며 도망치는 게 아니라 119라도 불러 응급 조치를 취했다면. 이 새끼가 조금만 인간답고 조금만 감사함을 알고……, 아니, 이딴 새끼 같은 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교통사고로 신체가 대여섯 개로 분리되었거나 아이 때 지독한 전염병에 걸려 피를 토하고 죽어버렸다면.
다시 말하지만 선생님을 떠나보내며 나는 병운의 눈물을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감정이란 게 제거된 게 아닐까 의심했던 나의 눈에서 그 눈물이란 게 하염없이 흘러내렸어요. 이러면 안 되는데. 병운도 울지 않는데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하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옆에서 바라보는 병운의 표정은 아마도 슬픔보다는 분노에 가까웠습니다. 그를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평온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얼굴이겠지만,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가 간신히 이성을 붙잡고 있을 만큼, 간신히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서 있을 만큼 위태롭다는 사실을요. 늘 혼자였던 나는 알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이 정도의 고립. 이 정도의……. 혼자. 곱씹어 볼수록 나는 그 혼자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알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금세 겁이 나 목 뒤쪽까지 닭살이 올라와요. 하지만 그 사람은 분명 혼자입니다. 십사 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나는 장례식 다음 날부터 정말이지 단 하루도 병운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병운은 그 뒤로 많이 달라졌어요. 이전까지의 본인은 어디갔냐는 듯 모두에게 냉소적인 자세를 취하고야 말았습니다. 그건 사실 지극히 합리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과하게 마음을 연 결과로 이런 게 돌아온다면 그 누구라도 병운과 똑같이 행동했을 겁니다. 더 다치기 싫었던 거예요. 거리를 두는 게 안전한 거니까. 그렇지만 나는 그 사람이 합리로 돌아간다는 것이 그저 마음 아팠습니다.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몇 번이나 꺽꺽대며 울었는지 모릅니다. 선생님을 돌려내고 싶다고, 진서 같은 새끼들은 몇백 명이 죽어도 좋으니 선생님이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그렇게 생각한 내가 미워졌어요. 그들 각자의 이상한 이야기들을 한 번은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일을 겪고도 자신있게 몇백 명을 죽이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고 답답했습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병운이 학업에 있어서는 큰 지장이 없어 보였다는 겁니다. 아니, 오히려 그는 어딘가 필사적인 모습이 더해져 악착같이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공부와 나, 공부와 신연정. 병운의 삶에는 이렇게 두 개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보였어요. 병운은 수능 시험을 치기도 전에 수시전형을 통해 원하는 대학교에 이미 합격했습니다. 나는 한없이 기뻤고, 또 한없이 두려웠습니다. 내가 멀어진다면 이 사람은 대체 어떻게 살아가게 되는 건가. 병운의 두꺼운 입술은 내 앞이 아니면 더이상 열리지 않았어요. 이제는 병운이 혼자가 되려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나는 결국 악착같이 얻어낸 수능 점수로 병운의 학교와 최대한 가까운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사건이 둘의 삶을 정반대로 틀어버릴 수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입니다. 나는 여전히 삶을 남김없이 들이켜라는 선생님의 말을 믿었고, 또 오히려 주변에 더욱 많은 관심을 줄 생각뿐이었어요. 그런 결과로 과의 부대표를 맡아 모두와 두루두루 가깝게 지낸 거고, 또 그게 이어져 이런저런 동아리를 전전하다 송주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반면 병운은 막 입학했을 때 그 누구와도 가까워지려 하지 않았고, 대외활동이라던가 동아리 같은 건 거들떠도 안 봤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처음 만날 때와는 달리 완전히 뒤집혔어요. 서로의 사이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진동하는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나는 다시 회색 소나타를 열심히 밟았습니다. 차는 어느새 산길로 들어서 주변은 온통 푸른 녹음으로 가득했습니다. 미소가 슬쩍 새어나오며 알 수 없는 기분이 되었어요.
“나무들 많아서 좋으시겠네.”
달마사의 주차장은 한적했습니다. 나는 차를 멈춰세우고 천천히 걸어나와 오래된 사찰들을 지나쳤습니다. 얼마 안 가 깨끗한 목조 건물이 등장했습니다. 현판에는 한자로 ‘영월당’ 세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천천히 안쪽으로 걸어들어가 더듬더듬 선생님 앞에 섰습니다. 하늘색 셔츠에 매일같이 쓰던 뿔테 안경을 쓴 선생님의 웃는 모습. 갑작스레 울컥 하며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올 것만 같아 나는 숨을 참았습니다. 아마도 미안함이 가장 많이 섞여 있을 겁니다.
“자주 안 와서 많이 섭섭하셨죠.”
선생님은 여전히 웃고 있습니다.
“죄송해요. 제가 요 몇 년간 실종이 됐었거든요. 그래도 요즘은 주변에서 선생님 역할을 대신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운이 너무 좋죠.”
눈이 뜨거워져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아래를 내려봤습니다. 그러다가는 다시 앞으로 다가가 서며 말했어요.
“또 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이상한 남자도 있고.”
나는 오른쪽 어깨에 멘 갈색 가죽 가방을 뒤적이다 하얀 종이로 된 편지 두 편을 꺼냈습니다. 합치면 여덟 장은 되는 긴 편지입니다. 나는 바스락대며 그걸 천천히 펼쳐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옛날의 제가 하고 싶었던 말. 좀 듣기 싫어하시는 내용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나는 천천히 그 편지들을 읽었습니다. 읽는 도중에는 몇 번이고 목이 메고, 또 피식피식 웃기도 하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기도 했어요. 또 첫 번째 편지를 끝내고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조금 쉬어야 했습니다. 이윽고 두 번째 편지까지 나는 온전히 끝을 향해 읽어나갔습니다.
“병운이는 걱정하지 마세요, 이상한 길로 빠진다면 제가 어떻게든 몸을 던져서 구해낼 테니.”
나는 다시 주섬주섬 편지를 접어 품 안에 넣었습니다. 자켓 안에서, 아니 셔츠 안과 온 몸에서 온통 뜨거운 게 팔팔 끓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선생님과 두 눈을 완벽히 마주하고 말했습니다.
“약속 지키러 갈게요.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고개를 푹 숙여 인사를 드린 뒤 곧바로 몸을 돌려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저 멀리 높고 각진 빌딩들이 경쟁하듯 하늘로 솟아 있었습니다. 나는 서울을 천천히 훑으며 감상에 젖다가, 곧바로 주차장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습니다. 저 도시 안쪽에 분명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