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 카페 이스케이프. 도망가자. 무엇으로부터? 뭐가 되었든간에 그것으로부터. 이제부터는 보다 치열하게 싸우는 겁니다. 나의 모든 만남은 앞으로 전쟁이에요. 나와 다빈 씨는 다시 그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았습니다. 한 달 정도가 지나 어느새 사 월이 되었습니다. 다빈 씨는 여전히 오른손에 깁스를 했지만, 청바지와 검은 셔츠 아래로 드러나는 근육이 꽤나 건강해 보였습니다.
“좀 이상한 질문일 수 있지만요, 선생님.”
“네, 다빈 씨.”
“마지막인 거겠죠? 오늘이.”
그 소년 같은 남자의 눈망울이 오래된 판자처럼 삐걱댔습니다. 처음 이 자리에서 마주했을 때는 모든 것이 본인의 이득을 위한 연기라 믿었었는데, 이제는 잘 모르겠어요. 아니, 연기라 해도 이젠 아무런 상관 없습니다. 나 또한 이미 모든 게 손익이라 고백했으니.
“뭐, 편지야 마지막이죠.”
내 대답에 그 사람은 아이처럼 방긋 웃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천진할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숙이고 몰래 웃었어요. 그는 안심이라는 듯 말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선생님이 만나자고 말씀하실 때 거절하고 도망치고 싶었어요. 사형 선고 같아서. 이제 끝이잖아요.”
“나에게는 숨은 의도 같은 게 전혀 없어요. 정말 편지가 받고 싶었던 것뿐이예요.”
“……그렇군요.”
숨겨진 의도가 전혀 없다는 말에 그는 조금 실망한 듯 보였습니다. 어째서지? 비밀이 없는 사람은 별 볼 일도 없다는 건가? 뭐가 됐든 나는 그를 조심스레 불렀습니다.
“다빈 씨.”
“네, 선생님.”
“……고마워요.”
수줍음을 좋아하고 숭배해서가 아니라, 나는 정말로 수줍게 말했습니다. 얼굴과 귀가 조금 붉어질 정도로. 나에게 아직도 그 수줍음이란 게 남아있다니. 다빈 씨는 나를 계속해서 신기하게 만들어요.
“뭘요. 저번에 말씀드렸다시피, 전부 다 제 이익—“
“네, 네. 전부 다빈 씨를 위해 한 일이라구요. 이젠 이해할 수 있어요. 사실 제가 고맙다고 말한 것도 다 저를 위한 거예요.”
“그건 좀 섭섭한데요.”
“하하, 나는 그러면 안 돼요?”
다빈 씨 앞에서 그렇게 호탕하게 웃어본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앞에서 조금씩 편해지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편해진다고 생각하니 다빈 씨 말대로 정말 섭섭한 느낌이 드는 것도 같았습니다. 이 남자가 단순한 친구가 된다면. 이 남자가 더이상, 더이상 내게 특별한 목적을 갖지 않게 된다면. 뭐, 친구라고 못할 건 없지만요.
“걱정하지 마세요.”
다빈 씨는 나를 쳐다보다가는 갑작스레 그렇게 말했습니다.
“뭘요?”
“나는 선생님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또 계속 엉망진창으로 살 거구요.”
“그러지 말아요.”
그는 살짝 웃으며 차를 들이켭니다. 백차. 백차는 뜨겁고 투명합니다. 나는 마음을 바꿔 한 번 더 읊었습니다.
“그래, 그래요. 함께 엉망진창으로 살아요, 우리.”
다빈 씨가 나의 삶에서 멀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이 조심스레 올라왔습니다. 이런 상상은 무서운 건데. 나는 비겁한 데다 변태적인 성향까지 갖춘 걸까요? 하지만 이 사람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회사에 앉아 시간을 죽이는 방법이나 고민하고 있었을 거예요. 나는 백차를 다시 들이켜는 그 사람의 얼굴에 대고 말했습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네, 말씀하세요.”
“죽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는 들던 찻잔을 즉각 가만히 멈추고 나를 쳐다봤습니다. 아, 하는 탄식이 어렴풋이 들린 것도 같아요. 그 사람은 그러고는 대뜸 말했습니다.
“저라면 그 사람에게 필요한 걸 주겠습니다.”
“필요한 거라면?”
“사건이요. 그러니까, 결핍을 말하는 겁니다. 이리저리 흔들리게요.”
“으음.”
나는 그의 말을 이해했습니다. 이제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다빈 씨는, 내 과거와 함께 살았으니까. 또 여전히 날 품에 안고 사는 중이니까. 절대 거만하려는 게 아닙니다.
“당신은 너무 이상해요.”
“……고맙습니다.”
이런 식이에요. 슬프게 말하는 것. 어떤 의문이든간에 그 이유가 나인 것.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
“편지, 줄래요?”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며 물었습니다.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남자가 의자에 매달린 가방을 천천히 뒤적거렸습니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만지작거리던 그 편지가 테이블 위로 올라왔습니다. 나는 알 수 없이 떠오르는 말을 곧바로 중얼거렸습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안아봐도 되나요?”
다빈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애절하게 말했고, 나는 사형 선고를 내린 적이 없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어요. 그가 다친 팔까지 이용해 내 어깨를 꼭 감싸쥐는 동안 나는 그 품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실은 그 무엇도 해낼 자신이 없었고, 해내서도 안 되었어요. 마지막이 아니다. 마지막이 아니다— 나는 속으로 계속해서 중얼거렸습니다. 정말이에요. 나는 이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별을 조장하는 습관도 없어요. 다빈 씨가 원한다면 언제든 만날 수 있습니다. 내게 그의 결핍이 충분하게 새겨졌다면요. 다빈 씨는 나를 놓고는 또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내게 정말 힘겨운 즐거움이에요. 고약한 꿈이기도 하고.”
그 순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다빈 씨의 휴대폰이 진동하더니, 화면이 밝아지며 누군가의 전화를 알렸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을 흘깃 돌려 그 화면을 쳐다봤고, 온 몸이 마비가 온 것처럼 달달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그건 우연이라 부르기엔 너무나도 절묘한 이름이었습니다. 말도 안 될 정도로. 저게 다른 사람일 수는 없잖아요. 이 이야기는 대체 어디까지 빨아들이고 있는 건가요.
‘김병운’
다빈 씨는 다급하게 휴대폰을 뒤집더니, 침을 삼키고 말합니다.
“제가 다 설명드릴게요.”
“어떻게, 어떻게…….”
“선생님, 선생님.”
하지만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어디서부터? 대체 어디서부터 나는 그들의 의도대로 움직였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을 자처해버린 건가요?
“둘이, 둘이 언제부터 아는 사이였던 거예요?”
“진정하시고 한번 들어보세요.”
“나는 진정하고 싶지 않아요. 진실을 원해요.”
“그러니까,”
다빈 씨는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을 질끈 감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내게 더 많은 생각과 가설들을 넘겨 주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선생님 직장으로 편지를 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
송주는 여전히 주말 오전 러닝 프로젝트를 놓지 않았습니다. 그 말인즉슨, 나도 여전히 주말마다 그 손에 이끌려 최소 오 킬로미터를 달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달리기란 것이 그래도 한강 어귀의 트랙에 올라타면 그 때부터는 평지에 달릴 맛도 나지만, 초반의 코스가 나에게는 큰 문제였습니다. 염리동의 주름진 골목들을 하나하나 만지며 내려가면 나의 무릎은 벌써 이상한 신호를 보냅니다. 올라가는 거야 충분히 버틸 수 있지만, 내려가는 것이야말로 내가 언제나 미워하고 못 견뎌하는 일이에요. 다들 그러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송주는 앞서 뛰며 나를 얼른 오라고 보챕니다. 이 아기 같던 게, 늘상 끌어줘야만 할 것 같던 녀석이 언제 이렇게 내 앞에 있기 시작한 건지. 나는 전적으로 송주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송주가 아니었다면 이 모든 일들도 시작되지 않았을 거고, 나도 옛날을 싸그리 잊고 살았을 거예요. 그 시절의 내가 보낸 사람 같기도 합니다. 송주는 나의 과거이자 시작이에요. 헉헉대며 카페에 앉아, 나는 송주에게도 저번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무슨 말이긴, 말 그대로지. 죽어가는 사람을 어떻게 살릴 거냐고.”
“병원을 데려가세요.”
“그런 거 말고. 병원은 못 간다고 치고.”
“그럼 약을 주세요. 물도 많이 마시라고 하고.”
“좀. 이게 무슨 말인지…….”
나는 말을 하다가는 입을 꾹 닫고 멍해졌습니다. 아픈 사람에겐 약을 줄 것. 물을 줄 것. 자명한 사실. 목이 아픈 사람에겐 목의 약을 주고, 마음이 아픈 사람에겐 마음의 약, 그리고 관계가 아픈 사람에게는 관계의 약을. 병운에겐 그저 약과 물이 필요합니다. 그것뿐이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에 앉은 송주를 감탄하듯 바라봤습니다. 송주는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그러거나 말거나 내게 핀잔을 줍니다.
“아무튼 언니는 달리기 좀 해야 해요. 그러니까 매일같이 골골대죠. 좀 뛰기도 하고, 근육을 쌓아놔야 건강하게 회사도 다니죠.”
“넌 회사 다녀본 적도 없잖아.”
“그야 그렇지만, 주변에서 얘기를 많이 듣잖아요.”
“다리 근육쯤은 좀 없어도 돼. 여기 근육이 많아야지.”
나는 관자놀이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송주는 곧바로 이렇게 덧붙입니다.
“누가 그래요? 둘 다 건강해야지.”
나는 웃으며 그 말이 맞다고 인정했습니다. 몸의 건강과 정신머리의 건강. 둘 중 하나라도 없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이야말로 살아가는 묘미가 된다는 진리를 나는 차가운 커피를 들이켜듯 다시 한 번 상기했습니다. 그게 무엇이 되든간에 나는 고난을 사랑한다고 말하겠습니다. 무엇이든이라는 표현이 혹여 천벌을 내릴까 두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아무튼 그 무언가를 음미하고 또 이겨낼 정신머리의 근육을 키워둘 용의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내게 와라. 살아가는 사람은 멀리서 보면 모두들 마조히스트입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인류가 이만큼 멀리 올 수 있었을 겁니다.
송주는 그 중에서도 고통을 대단히 즐기거나, 아니면 극도로 회피하는 타입일 겁니다. 아무튼간에 약간은 극단적인 포즈를 취해야만 이 정도로 명랑한 모습을 매일같이 보일 수 있는 겁니다. 또 옛날의 나도 그 비슷한 극단성을 자랑했고, 지금은 그걸 완전히 소실해 버렸습니다. 진동. 이제는 이해할 수 있어요. 형편없는 지금과 건강한 이상 사이에서 한없이 진동하는 나의 모양새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병운은 살아가야 합니다. 산 사람은 그저 살아가야만 하는 거예요. 그는 내가 없더라도 결국에는 예전을 향해 천천히 돌아올 겁니다. 다만 나는 그 경로를 좀더 아름답게 그려줄 수 있습니다. 나는 그의 웃음을 아름답게 되찾아줄 수 있어요. 조금 오만했나요? 괜찮을 겁니다. 우린 오만함 정도는 서로 가볍게 눈감아줄 수 있는 사이니까. 고집이나 질투, 결핍 같은 것들도 우리 사이에선 분명 멀쩡하게 날아다닐 겁니다. 괜찮아요. 우리는 전부 눈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껴안을 용의가 있었어요. 물론 시간이 조금 지난 이야기입니다만, 나는 그게 마치 어제인 것처럼 지금 달큰한 공기를 들이켜고 있습니다.
“송주야.”
“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나를 보는 송주에게 나는 말했습니다.
“병운이한테 네가 알려줬어?”
“……뭘요?”
송주는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잠깐 나를 보더니, 그대로 무릎에 손을 얹으며 웃었습니다. 꼭 대답을 해야만 대답이 되는 건 아닙니다. 나는 남은 커피를 모두 마시고는 말했습니다.
“아냐.”
“…….”
“아냐, 아냐.”
“좋아, 다시 집까지 가보자고요.”
송주는 영차, 하고는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나는 웃으며 다리를 통통 두들겼어요. 나는 여전히 송주의 뒤를 졸졸 쫓으며 귀갓길에 올랐습니다. 그 어깨까지 떨어지는 머리가 끈으로 묶인 채 위아래로 흔들렸어요. 늙는 데에 즐거움이 따른다면 이런 건가 싶어요. 앞서 가는 송주를 따라 뛰는 기분이 어쩐지 감동적이기까지 했습니다. 과거가 나를 앞질러 가는 중입니다. 신이 나서, 늘상 그랬던 것처럼. 어느새 다시 도시로 접어든 과거가 서른 둘 나를 두고 힘차게 멀어지더니, 골목을 돌아 금세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아, 나는 이제야 숨을 쉬어요. 여기 안쪽을 부글부글 끓이면서, 얄밉게 멀어지는 과거의 꼬리를 쫓으면서. 그 과거란 건 꽤나 친절하게, 일정한 속도로 나에게서 멀어져 갑니다.
혹시나 여기서 멈추고 뒤를 도는 편이, 나의 자리로 돌아가 노트북을 열거나 서류를 뒤적거리는 편이 안전할까요? 병운도 잊고 다빈 씨도 모두 잊어버리고 말이에요. 그렇게 하면 적어도 어제 같은 내일을 손에 받아들 수 있을 겁니다. 누구나 그렇게 해요. 무려 어제와 같이 아늑한 내일. 저 아래까지 내려가보지 않은 사람들이나 그걸 팔짱끼고 흉봅니다. 돈이 없어. 배가 고파. 부끄러워. 오 년 전 한국에 돌아온 내가 입 밖으로 낸 말은 이렇게 세 개가 전부인데. 건강이란 그런 거잖아요. 내일을 어제처럼 숨쉴 수 있는 것. 아픈 걸 좋아하는 변태들이나 사회를 미워할 자격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도 나를 떠올리면 시들어가는 화분이 먼저 그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활짝 피는 건 고사하고 피려는 의지조차 잃은 것처럼. 어째서 고개를 아래로만 처박고 있는 거야.
‘자연사에도 지름길이 있다는 식……’
이런 때에 다빈 씨의 말이 떠오르고…… 웃긴 일입니다. 어째서 내 두 다리는 뒤를 돌아 빌딩들을 마주하고 안전을 외치는 순간부터 썩기 시작하는 것 같은지. 어째서 레깅스에 반바지를 입은 송주가, 나의 지난 날들이 뛰는 길은 이렇게 향기로운 색깔이 피어나는지. 관성 때문입니다. 관성이 뒤 도는 걸 막고 무릎을 그대로 땅에 딛게, 그대로 뒷 발을 앞으로 나가게 만들어요. 이전 발과 같은 다음 발. 건강이란 건 대체 뭘 의미하는 거예요? 멈출 수 없어요. 나는 뒤쳐진 발을 계속해서 앞으로 보내며 송주가 사라진 골목을 돌았습니다. 그리고 쿵— 하는 소리.
어?
다리가 점차 멈추고 땅에 박혀버린 듯 움직일 수가 없어요. 저 멀리 가던 송주는 어느새 바로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바로 눈 앞에 있었어요.
시뻘건 웅덩이 위에 누워서. 언제든 그 웅덩이 속으로 들어가 사라질 수 있을 것처럼. 팔딱대듯 조그맣게 숨을 뱉으면서.
아, 고난 같은 말은 절대로 그런 식으로 꺼내는 게 아니었는데. 어느새 내 눈깔에도 그 찐득이는 색깔이 올라오고, 세상은 반대로 핏기가 빠지듯 표백되어 넘어가고, 나는 어깨 아래로 숨이 쉬어지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