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플레이리스트 위에서>- 사무라이 참프루

by 번뇌즉보리

여름이 제철, 사무라이 참프루



혹시 허영만 화백의 <식객>을 아시나요? 아마 한국 사람이고 만화를 좀 좋아한다 하시는 분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작품입니다. 식객은 다양한 옴니버스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 부침개 이야기를 다루는 <장마>편의 이야기를 잠깐 하고자 합니다. 돌연 진단 받은 위암으로 인해 입원해버려 제대로 된 식생활을 할 수 없게 된 환자가 눈으로나마, 또 상상으로나마 먹고 싶은 제철 음식들을 그리워하는 내용입니다. 결국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는 밖에 장맛비가 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침개를 떠올리며 눈을 감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식객을 참 많이도 읽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중 하나입니다. 이제 좋아하는 걸 왜 좋아하는지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으니 설명을 해 보자면, 죽음과 삶, 그리고 그 삶 속에서 필연적으로 넘기게 되는 무수히 많은 계절을 너무나도 잘 연결해 담담히 풀어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매해 돌아오는 계절마다 무언가 생각나는 게 있으실 겁니다. 봄은 꽃구경의 추억, 여름에는 수박일 수도 있습니다. 가을은 헤어진 연인, 겨울은 오랫동안 쓰던 머플러 같은 식으로요. 음식이든, 기억이든, 물건이든, 거기 얽힌 계절감이라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한층 더 깊게 아끼도록 만듭니다. 특히나 여름은 흘리는 땀방울만큼이나 각양각색의 추억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방학이나 휴가철이 겹쳐 있으니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여름의 더위, 그러니까 하늘이 너무나도 예쁜 푸른색을 띄게 만드는 그 강력한 뙤약볕이라는 것이 사람들을 이곳저곳으로 떠밀어 갖은 추억을 만들어 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이곳저곳이란 에어컨이 식혀 주는 방 안이나 계곡, 휴양지, 도서관이나 선풍기가 돌아가는 대청마루를 비롯해 여러분들이 여름 하면 떠올리시는 기억 속 장소들이겠지요. 저도 매미 소리와 따가운 햇살 속에서 어떤 작품에 대한 기억을 곧잘 떠올립니다. 바로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퓨전 시대극 애니메이션, <사무라이 참프루>입니다.




여름 하면 저도 참 많은 것이 떠오릅니다만, 역시 사무라이 참프루를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장마가 끝나고 살인적인 더위가 이어지는 지금 글을 쓰는 것입니다. 지난 여름 초입에 본 사무라이 참프루는 제게 정말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이제 참프루를 빼고 제 여름을 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연출, 캐릭터, 메세지, 서사로부터 느껴지는 감정선까지 무엇 하나 모자란 곳 없이 완벽한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바로 두 달 전인 2025년 5월 말에는 서울에서 팝업 스토어도 열렸죠. 그때 방문하지 못한 게 여전히 한일 만큼 이 작품을 깊게 좋아합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콘텐츠가 갖춰야 하는 것들을 모두 갖췄다는 것을 넘어 기존 애니메이션 이상의 파급력을 갖고 있었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진 숭배에 가까운 칭찬 일색이라 조금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보이실 수도 있겠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도대체 어떤 점이 그렇게나 좋았던 것인지 모두 조목조목 설명할 테니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사무라이 참프루는 여름이 제철이라는 것입니다. 매미 소리가 시끄러운 요즘에 봐야 더욱 특별합니다. 주인공들의 여행길도, 아름다운 음악도, 군더더기 없는 연출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보고 즐기며 감상에 젖거나 뭔가 가르침을 얻는 우리의 모든 순간에도 계절감이 더해져 그 깊이가 배가됩니다. 이 더운 여름날 구슬땀 흘리며 방랑하는 주인공 일행과 정말 함께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름에 볼 만한 애니메이션을 찾고 계시는 모든 분들께 사무라이 참프루를 강권합니다. 그럼 이 작품의 특징과 매력에 대해 같이 살펴봅시다.





천재 감독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두 번째 TV 장편 애니메이션


와타나베 신이치로와 커리어 초창기 그의 참여작인 기갑엽병 메로우링크, 기동전사 건담 0083


일본 애니메이션을 깊게 좋아하는 팬이라면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이름을 한 번쯤 들어보셨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그가 감독한 작품과 안면이 있을 것입니다. 선라이즈에 입사하여 <장갑기병 보톰즈>로 유명한 타카하시 료스케 감독 밑에서 <기갑엽병 메로우링크>나 <기동전사 건담 0083> 같은 굵직한 작품들에 참여하여 연출력을 갈고닦았습니다. 이후 <마크로스 플러스>의 감독으로 이름을 올리는 것을 통해 감독 커리어를 시작, 그로부터 4년 후 본인이 총감독한 전설적인 애니메이션인 <카우보이 비밥>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기술이나 콘텐츠 등 모든 산업에 있어 급격한 발전을 이룬 한편 어딘가 공허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던 90년대의 청춘들에게 카우보이 비밥은 마음을 달래 주는 재즈 연주처럼 스며드는 작품이었습니다. 방영 이전에는 스폰서의 압박과 트러블에 시달렸고, 방송 이후에도 제작사의 사정을 비롯한 여러 문제들로 인해 조기종영이라는 결과와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 가치를 알아본 수많은 시청자들 덕에 카우보이 비밥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쿨하고 멋진 캐릭터들과 세련된 음악, 영화를 보는 듯한 스타일리쉬한 연출과 기존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찾아보기 힘든, 거칠면서도 담백한 성인 타겟 감성은 비밥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천년을 맞이하기 앞서 한 시대의 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갖고 있던 마음 속 결핍이나 상실, 그리고 과거와 그것을 마주하는 일에 대한 중요성을 전하는 메시지 또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습니다. 더해서 저는 카우보이 비밥이 '애니메이션 속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의 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테크놀로지의 묘사와 그것을 내러티브에서 활용하는 방식 등에 있어서 너무나 완벽했기에 비밥 이후 비밥 만큼 장대하고 시리어스한 스페이스 오페라가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빚은 작품인들 십중팔구는 비밥의 마이너 카피, 아무리 잘 쳐 봐야 비밥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들을 테니 말입니다.(물론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 자체가 쇠퇴한 탓도 있습니다) 좌우지간 애니메이션 역사에 한 획, 그것도 엄청나게 굵은 줄을 그은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차기 행선지는 에도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펑키하고 쿨한 시대죠.



에도 시대 배경의 퓨전 사무라이 극인 사무라이 참프루는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특장점들이 듬뿍 담겨 있는 애니메이션입니다. 그러나 방영 당시에는 비밥의 전례와 같이 큰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17화까지만 방영된 후 위성 방송으로 방송국을 옮겨 나머지 9화를 심야에 방영하는 식으로 어찌저찌 완결을 향해 내달린 사무라이 참프루는 지금에서야 조금씩 재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마저도 비밥과 같이 한 세대의 아이콘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라고 하기엔 부족하고, 아는 사람만 아는 애니메이션을 넘어 '굉장히 잘 만들어진 수작', '시대를 앞서나간 명작' 등의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전작 카우보이 비밥이 너무나도 거대한 벽이었던 것인지 방영 당시 평가는 썩 좋지 못했고, 그 때문인지 와타나베 신이치로는 신작 애니메이션 제작을 잠정 중단하게 됩니다. 본인의 작품 철학과 오타쿠를 타겟으로 한 당시 애니메이션 시장은 완전히 반대로 가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는 생각입니다. 실제로 사무라이 참프루 방영 후 2년 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을 기점 삼아 일본 애니메이션은 21세기 들어 큰 변화를 겪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후 와타나베 신이치로는 TVA 제작을 하지 않고 간간히 <언덕길의 아폴론>이나 <잔향의 테러>에 감독으로 이름을 올리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가 다시금 장편 애니메이션의 총감독을 맡아 지휘하게 된 건 20년이나 지난 현재, 2025년에서였습니다. 존 윅 시리즈의 감독인 채드 스타헬스키를 포섭하여 액션 연출을 맡긴 기대작 <라자로>로 TVA 계에 복귀했으나, 역시 가장 높은 장벽은 과거의 자신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만큼 비밥과 참프루가 대단한 작품이었다는 이야기이며, 저 역시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열렬한 팬으로서 사무라이 참프루의 특징에 대해 더욱 세세히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매력적인 캐릭터 메이킹과 빼어난 연출




전작 카우보이 비밥의 주인공 스파이크 스피겔은 캐릭터 그 자체로 어마어마하게 매력적이었습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관리 안 된 곱슬머리, 캐주얼한 정장 차림에 인간미 있고 쿨한 성격이라는 요소들이 합쳐져 '멋진 애니메이션 주인공' 하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할 만한 캐릭터였습니다. 이렇게 뛰어난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캐릭터 메이킹 능력은 사무라이 참프루에서도 그대로 발휘되어, 주인공 일행 3인방의 캐릭터성과 캐미스트리가 매우 뛰어납니다.


야성미 넘치고 호전적인 떠돌이 무겐, 사무라이로서의 실력은 출중하나 자신만의 뜻을 찾지 못하고 방랑하는 진, 그 두 사람을 연결하며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감초 후우로 이뤄진 삼인조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무겐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나 상성이 좋지 않은 상대는 진이 상대하고, 진이 나설 생각도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무겐이 달려듭니다. 후우는 두 사람이 얽힐 수 있는 각종 사건을 제공하며, 극과 극인 두 사람 사이에서 갖은 리액션으로 작품의 분위기를 책임집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사무라이 참프루는 때로 코믹하게, 때로 시리어스하게 주연들의 감정선을 풀어나갑니다. 바로 이 완급 조절이 사무라이 참프루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종일관 진지하지도, 또 너무 가볍지도 않은 인물들의 감정선이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잔잔히 얹히기 때문입니다. 시청자를 지치게 만들지 않으면서 작품의 무게감을 일정히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와타나베 신이치로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잘 활용하여 이런 사항은 본인에게 있어 아무런 걸림돌이 아니라는 것을 멋지게 보여줬습니다.


유려하고 세련된 액션은 본작의 대표적인 특 중 하나입니다. 와타나베 신이치로 본인이 영화에 대한 식견이 깊은 만큼 그의 애니메이션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액션과 연출을 선보입니다. 그의 대표작 카우보이 비밥에서 이미 신기에 가까운 묘사로 정점을 찍은 그의 시퀀스 디자인은 사무라이 참프루에서도 여전합니다. 우선 액션부터 살펴보자면, 부드러운 프레임 사용으로 상당히 역동적인 움직임을 곧잘 그려냅니다. 사무라이 애니메이션이지만 검술 액션이 어마어마하게 화려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절제의 미가 특별함을 낳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춤추듯 부드럽게, 또 배경으로 흐르는 비트와 서로 이질적이지 않게 구사하는 움직임은 사무라이 참프루의 시그니처입니다.


주인공 무겐과 진이 구사하는 액션이 서로 다른 것도 유심히 보면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무겐은 힙합의 브레이크 댄스를 바탕으로 한 과장되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주로 구사하는 반면, 진은 부드러우면서도 절도 있고 절제된 액션을 선보입니다. 칼을 쥐고 있을 때도 그렇지만, 두 사람이 맨손으로 싸우는 모습에서도 이 차이는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양아치 미가 가득한 무겐의 격투와 적의 공격을 부드럽게 받아 넘기고 간결하게 제압하는 진의 격투 둘 다 시청자를 즐겁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대사나 큰 액션 없이 캐릭터들의 마음부터 작품의 감성, 메시지를 표현해내는 영화적 연출 또한 사무라이 참프루의 장점입니다. BGM의 재생과 중지 타이밍, 캐릭터의 표정과 눈빛, 옅은 몸짓이나 정적인 상황, 시점의 변주 등으로 흔히들 말하는 '감성적'인 장면을 자주 그려냅니다. 몇백 년도 전의 여름을 살아가는 감성이 현재의 우리에게 이토록 와닿을 수 있는 것은 그 세련됨이 오늘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즐거워야 하는 순간에는 개그 연출에도 망설임이 없으며, 이렇게 분위기를 넘나드는 동안 정말 작품 이름 그대로 참프루('뒤죽박죽 섞다'라는 일본어이며 오키나와 지방의 볶음 요리 이름이기도 합니다)가 어떤 느낌인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섞임이라는 것이 중구난방이거나 정신 사납지 않고 흡입력 있다는 점이 사무라이 참프루의 미(美)입니다. 이 참프루라는 요소는 비단 연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며, 작품의 분위기를 아우르는 핵심적 주제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하겠습니다.


이제는 전설이 된 OST들



https://youtu.be/Eq6EYcpWB_c?si=tA8_MPbkI8n_0bmj


https://youtu.be/mQAfG3DgG7M?si=fVOQO1ORlGxicc_6


사무라이 참프루 하면 가장 먼저 음악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본작의 OST는 수준급을 넘어 명곡들로 빼곡히 차 있습니다. 링크된 영상은 위의 것이 오프닝 <battlecry>, 아래의 것이 엔딩 <사계의 노래>입니다. 당시의 일본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힙합 음악을 사용했습니다. 감독 본인이 재즈의 열렬한 팬이니 역시나 재지한 분위기도 전작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만, 드럼 킥 스네어 사운드를 바탕으로 흐르는 비트야말로 시청자들의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드는 사무라이 참프루의 최고 강점입니다. 둘 다 음악과 연출 모든 면에서 사무라이 참프루가 추구하는 것을 너무나 잘 담아낸 훌륭한 영상입니다. 오프닝은 패기 있으면서도 우아하고, 오리엔탈리즘과 힙합 뮤직이라는 상반되는 요소를 물에 풀듯 자연스럽게 조화해냈습니다. 엔딩은 재지한 힙합 비트 위에 보컬을 얹어 여름날의 아련하고 애틋한 분위기를 그려냅니다. 이 둘도 좋은 곡이지만 사무라이 참프루의 명곡 행진은 단순히 오프닝과 엔딩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뮤지션들의 뮤지션, 전설적인 힙합 프로듀서 누자베스(nujabes)를 필두로 fat jon과 Force of nature가 담당한 OST는 어느 하나 부족한 트랙 없이 모두가 훌륭합니다. 특히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 누자베스의 음악적 역량이 가득 담겨져 있다는 점이 많은 리스너들에게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았더라도 <aruarian dance> 정도는 알고 있는 분들이 계신 것처럼요. 저는 반대로 사무라이 참프루를 통해 누자베스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경우였는데, 한국의 전설적 래퍼 빈지노가 재지팩트 시절 이미 샤라웃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최근 로파이 음악이나 재지한 힙합 비트가 궤도에 오르면서 우리에게 알려지기 이전부터 진짜들끼리는 서로 다 알아보고 있었다는 거죠.


하여간 말한 것처럼 사람들의 음악 취향이 다양해지고 누자베스의 비트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사무라이 참프루의 OST는 20년 정도를 앞서나갔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26화 분량의 애니메이션에 사용되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 아닌가 싶을 만큼 많은 양의 OST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점 역시 음악을 사랑하는 와타나베 신이치로가 분명히 의도한 바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짓수가 많은 만큼 음악을 통해 표현해내는 바가 더욱 다양해지고 깊어집니다. 적절한 사용을 넘어서 거의 매 화마다 새로운 비트가 깔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분위기를 에피소드의 분위기를 구축해냅니다. 사무라이 참프루의 대표적인 음악 하면 가장 먼저들 언급하실 aruarian dance도 정작 애니메이션 본편 속에서는 두 번밖에 흐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사무라이 참프루의 OST 볼륨의 방대함을 시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곡은 <1st samurai>, <tsurugi no mai>, <just forget>, <mystline> 정도입니다. 외에도 좋은 노래가 엄청 많이 있으니 꼭 들어 보세요.


멋진 음악을 만들어 준 누자베스와 Shing02, fat jon과 force of nature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사무라이 참프루의 OST 트랙을 돌리고 있는데, 잔잔하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게 해서 참 좋습니다. 음악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을 것을 분명히 알기에 이쯤에서 사무라이 참프루의 작품 내적 리뷰로 넘어가려 합니다.




문자 그대로 뒤죽박죽 섞어 만든 아름다움


참프루


제목에 들어가는 참프루란 앞서 말했다시피 오키나와의 전통 볶음 요리입니다. 여주나 돼지고기를 비롯한 여러 재료들을 한데 볶은 요리로, 그 어원이 우리에게도 익숙한 <짬뽕>이라는 단어와 관련이 있다고도 합니다. 실제로 그 의미가 비슷하기도 하고요. 그 참프루를 사무라이 뒤에 가져다 붙여 만든 제목의 본작은 거기에 걸맞게 여러 요소가 잘도 섞여 있습니다.


당장 주인공 세 사람의 성격부터가 괄괄한 여자아이, 냉정한 무사, 야생적이고 호전적인 양아치로 전혀 맞지 않는 구성입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시대극과 펑크, 실제 역사와 반항적인 힙합 문화, 검술 액션과 브레이크 댄스, 몇백 년 전 사람들의 감정선에 드럼 킥 스네어로 이뤄진 힙합 비트까지. 이래저래 뒤섞인 것들 천지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전혀 이질적이지 않고 오히려 개성적인 하나의 세계관으로 기능한다는 점이 매력입니다. 작품 중간중간 사용되는 힙합의 스크래치 연출이나 시대적 배경이 무색하게도 금발에 피어싱을 하고 있는 등장인물 등의 요소가 본작의 정체성과 추구미를 잘 보여줍니다. 파란만장한 에도 시대 위에 끼얹어진 펑키함은 여러 퓨전 시대극 작품 중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사무라이 참프루만의 개성입니다.


사무라이 참프루는 전작 카우보이 비밥처럼 큰 틀로는 옴니버스적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한 화 내지는 두 화에서 완결성을 띠는 에피소드들이 주욱 이어지며 각 화마다 그 편을 이끄는 매력적인 등장인물이나 설정이 존재합니다. 에피소드별로 분위기는 정말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고 할 정도로 분위기가 판이한데, 주연들의 과거와 마주하거나 갈등을 풀어나가는 진지한 회차가 있는 반면 우연히 일본 땅에 상륙한 미국인들을 몰아내기 위해 야구 시합을 하는 등의 백 퍼센트 개그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이런 회차 구성 또한 제목인 참프루에 걸맞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감정 또한 갖은 것들이 뒤섞이겠지만, 그것이 결코 불쾌하지 않으며 돌이켜 봤을 때 즐거움이라는 앙금이 마음 가득 남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작품 줄거리로 들어서면 주인공 세 사람의 여행길이 시작된 바탕부터 뒤죽박죽이며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제가 길게 설명하는 것보다도 직접 보시는 게 더욱 간편히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느낌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떠돌이 양아치 무겐은 강한 자와 겨뤄 보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도 되는 것마냥 집착하고, 방랑 검객 진은 뛰어난 칼솜씨와는 별개로 자신만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자기 멋대로들 살며 결국 대관 아들을 휘말려 죽게 만든 혐의로 사형을 당하려던 찰나, 그들을 눈여겨 본 후우가 여행길에 오르는 것을 결심하며 두 사람을 구해 주게 됩니다. 물론 이 한량들이 순순히 여행길에 동행하겠다고 할 리가 없었으나 후우는 기지를 발휘합니다. 동전 던지기를 해서 뒷면이 나오면 후우의 승리로 자신과 동행해줄 것, 앞면이 나오면 멋대로 알아서들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과는 뒷면이었고, 그렇게 세 사람은 여정을 떠나게 됩니다.


후우가 제시한 여정의 목적이란 '해바라기 향이 나는 사무라이'를 찾는 것입니다. 애초부터 해바라기는 향이 없으니 모순적인 명제이며, 진과 무겐은 애초에 해바라기가 무슨 꽃인지조차 잘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얼기설기 얽혀 시작한 여행이니만큼 그 속에서 위기에 처하는 일도, 서로 싸우고 갈라지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특히나 무겐과 진은 툭하면 티격태격하니 마음 편할 곳 하나 없는 나날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각자의 과거를 이해하고, 여러 사선과 고난을 넘나들며 세 사람은 점차 깊은 유대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 자체로서도 성장합니다. 그 특별한 과정을 함께한 시청자들에게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벅차오름이 피어납니다. 그럼 이제 세 사람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 봅시다.



아래로 스포일러 주의!


과거의 아련함, 현재의 아름다움, 다가올 날들의 기쁨



해바라기 향의 사무라이를 찾으며 알아가는 것들


어디선가 그런 글을 본 적 있습니다.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과 사무라이 참프루는 분위기로 먹고 들어가는 거지, 스토리가 좋진 않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을 차치하고도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그 '분위기'라는 것은 액션과 음악을 포함한 연출, 캐릭터 등 종합적인 요소가 조화를 이뤄 자아내는 것이니 스토리가 좋기보다도 분위기가 좋기가 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분위기가 좋으면 스토리를 어필할 수 있지만, 스토리가 좋다고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호소력이나 시청자에게 주는 인상 등 총체적인 요소에 있어서 강점을 갖는 것, 즉 요즘 말로 '느좋'이라는 감상이 들게끔 하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카우보이 비밥이나 사무라이 참프루가 그것에 치중한 나머지 스토리가 소홀한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섣부른 감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옴니버스 구성을 하고 있기에 각 편마다 기승전결이 확실하다는 것은 장점이라고 할 수 있으나 전체 에피소드에서 보이는 유기성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중간중간 개그 에피소드가 섞여 있다는 점이 몰입을 해치는 요소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엔 두 작품 모두 좋은 스토리를 가진 작품입니다. 회수하지 않은 복선도 없었고, 무엇보다 스토리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의 농도(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바가 너무 강해서 선전처럼 보인다거나, 너무 옅어서 보고 나서도 무슨 말인지 도통 가늠할 수 없거나 하지 않고 적절하다는 점에서 제가 임의로 사용한 표현입니다)가 참 좋았습니다. 요지는 세 사람의 여행을 통해 우리 삶에 있어 의미 있는 것들을 느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나 이런저런 분위기의 이야기가 26화 안에 다양하게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 제목인 참프루와 꼭 들어맞는다는 것을 재차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는 생각해 보면 기쁜 날과 슬픈 날, 즐거운 날과 재수 없는 날이 엉켜 있는 우리네 삶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치밀하게 짜여진 복선이나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반전이야 없습니다만 그 담백한 아름다움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만들기 어려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럼 스토리의 굵직한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여행의 목적인 '해바라기 향기가 나는 사무라이'는 후우의 아버지입니다. 어린 자신과 아픈 어머니를 두고 홀연히 떠난 아버지를 찾아 자초지종을 듣고 한 방 먹여 주고 싶다는 생각이 그녀를 고된 여행길 속에서도 꺾이지 않게끔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유조차 제대로 말하지 않고 떠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은 일종의 원동력이었을 것입니다. 해바라기 향기가 나는 사무라이에 대한 중요한 단서는 6화와 19화에서 마주하게 됩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총독 조지는 후우가 지닌 단도에 장식된 해골을 보고 '자세한 것은 설명해 줄 수 없으나 나가사키로 가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가사키로 향하는 도중 만난 천주교 신자 유리는 해골 속에 숨겨진 십자가를 찾아내 줍니다. 말인 즉 후우의 아버지는 천주교 신자였고, 당시 일본 막부의 가톨릭 박해로 인해 가족을 떠난 뒤로부 핍박받는 천주교 신자를 지켜 주며 살고 있었다는 진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이제껏 무겐과 진에게 너무 의지한 것은 아닌가, 혼자 남겨지더라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확인해 보고 싶다는 이유를 들어, 후우는 홀로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드디어 만난 아버지, 해바라기 향기가 나는 사무라이인 카스미 세죠는 병에 걸려 죽음을 눈앞에 둔 상태였습니다. 눈을 뜨는 것도 어렵거니와 시야마저 흐릿해 딸인 후우를 똑바로 바라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이 외진 곳까지 찾아온 손님이 자신의 딸인 후우라는 것을 알아보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아버지에게 후우는 차마 주먹을 날리지 못했습니다. 강하게 책망하지도 못했습니다.


애매한 시간이 흐르던 와중 막부의 경호대장 카리야 카게토키가 들이닥쳐 막부의 명령대로 카스미 세죠의 목숨을 빼앗습니다. 카스미는 일말의 저항조차 하지 않고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며 유언을 남깁니다. '후우, 용서를 구할 생각 따윈 없지만 너와 네 어머니를 한 순간도 잊은 적 없다. 미안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카리야의 칼날이 해바라기 향기가 나는 사무라이를 베어버립니다. 후우는 이제서야 마주한 아버지를 그렇게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후우가 마주한 자신의 과거입니다. 한편 다른 주인공인 무겐과 진 또한 지난 여행길 속에서 자신의 과거와 마주했었습니다.



무겐의 고향은 류큐 왕국(현 오키나와)입니다. 에도 시대 류큐는 사쓰마 번에 함락되어 그 지배 아래에서 인두세를 줄이기 위해 노약자를 살해하거나 임산부를 바위에서 떨어뜨려 머릿수를 줄이곤 했던 가혹하고 잔인한 곳이었습니다. 무겐은 여행길 도중 그 생지옥이나 다름없던 섬에서 함께 자란 무쿠로와 코자 남매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이미 어린 시절 무쿠로와 함께 사쓰마 번의 무역선을 습격했다가 배신을 당한 전적이 있는 무겐은 무쿠로에게 협력할 의사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때 무겐에게 연심을 품었음에도 어쩔 수 없이 무쿠로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유약한 여동생 코자의 존재가 무겐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결국 무겐은 무쿠로의 무역선 습격에 다시 동참하게 됩니다. 하지만 무쿠로는 또 무겐을 배신했고, 무겐은 땡전 한 푼 건지지 못한 채 간신히 목숨만을 보전하게 됩니다.


하지만 돈을 모조리 독차지한 무쿠로는 동생 코자의 계략으로 인해 허무하게 살해당합니다. 코자는 진에게 '오빠가 무겐을 배신해서 무겐이 죽어버렸다'고 호소하며, 그 말을 들은 진은 자신이 베어야 할 무겐을 먼저 벤 죄를 물어 무쿠로의 목숨을 받아갑니다. 하지만 무겐은 살아 있었고, 코자는 무쿠로와 협력하던 막부 소속의 내통자인 시렌이라는 남자와 함께 무역선을 턴 돈을 바탕으로 새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의 오빠인 무쿠로를 계획적으로 제거한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사실과 마주한 무겐은 도피를 계획하던 시렌과 코자 앞에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시렌만을 베어 코자를 혼자 남겨버립니다. 코자에게 있어 죽는 것보다도 더 무거운 외톨이라는 형벌을 내린 것입니다.


이것으로 무겐의 과거는 일단락된 것으로 보여지나, 최후반부에 다시금 지긋지긋한 류큐의 인연과 마주하게 됩니다. 류큐 시절 무겐과 무쿠로가 습격한 사쓰마 번 무역선의 관리를 맡고 있었던 삼형제가 무겐에게 복수하고자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해바라기 향의 사무라이를 찾으러 가던 후우를 인질로 잡아 무겐과 대치하지만, 사선을 넘나드는 싸움 끝에 모두 죽습니다. 정말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무겐은 이번에도 구사일생해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다. 지긋지긋한 과거를 끝맺은 채로 말입니다.



진은 과거 무주심검술이라는 유파의 제일 가는 수제자였습니다. 하지만 작중 시점에서는 스승 살해의 누명을 쓰고 떠도는 신세가 됐습니다. 때문에 무주심검술에 몸담고 있던 문하생들이 진을 배신자라 칭하며 목숨을 빼앗으려 하는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승 살해의 진실이란 사리사욕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의 스승 마리야 엔시로는 막부의 경호대장 카리야 카게토키로부터 유파를 넘기라는 압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전국시대가 끝난 시점에서 무주심검술의 도장이 쇠퇴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카리야의 압박에 못이겨 막부 아래로 들어간다면 도장은 존속될 수 있지만 막부를 위해 암살 기술을 수련하는 집단, 나아가 그 암살을 업으로 삼는 기관이 될 것이라는 사실 또한 뻔했습니다. 젊었던 진은 이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건 무술이 아니다'라며 스승에게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결국 카리야는 진의 스승인 마리야에게 '진을 죽이라'는 압박을 넣게 되고, 어쩔 수 없이 도장을 물려줄 생각이었던 애제자에게 칼끝을 겨누게 됩니다.


그러나 찰나의 몇 합에 진이 마리야를 압도해버립니다. 자신의 목숨을 걸어 청출어람을 확인한 마리야 엔시로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할복하여 자살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진은 스승 살해자라는 누명을 쓴 채 쫓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본작의 결말부에서 막부의 명령으로 카스미 세죠를 살해하러 온 카리야와 다시금 대치하게 됩니다. 그리고 두 번의 승부 끝에 카리야를 자신의 손으로 베어 스승의 원수를 갚음과 동시에 뜻 없이 떠돌며 과거로부터 도망치던 시절의 자신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무겐이 그랬던 것처럼 진도 자신의 과거를 마무리지은 것입니다.



제 기억 속의 아버지는 아주 크고 강했었어요. 하지만 만나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죠. 굉장히 작고 약해 보였어요. 하지만 역시 아버지라고, 그렇게 느꼈어요.


이렇듯 주연 삼인방은 여행 속에서 모두 자신의 과거와 마주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거라는 것들은 늘상 아름다운 것도, 우리의 추억과 똑같은 것도 아닙니다. 해바라기 밭 속에서 강인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다 사라지고 없던 것처럼요. 기억 속 해바라기 밭은 태양 아래 샛노랗게 강렬한 색채였으나, 정작 향기가 없는 꽃이라는 점이 과거란 것의 아련한 허무를 잘 보여줍니다. 오히려 과거는 괴로운 일일 수도, 우리가 나아갈 길의 걸림돌일 수도 있습니다. 떠올리기만 해도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무겐의 과거나, 쫓기는 신세의 나그네로 전락하게 만든 진의 과거처럼요. 그러나 과거는 우리의 삶에 있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며 더욱이 우리가 나아갈 길을 만들어 주는 발판이기도 합니다.


후우의 아버지, 해바라기 향기가 나는 사무라이가 후우의 어머니와 후우를 한 순간도 잊지 않았던 것처럼, 과거는 그 자리에 있으며 한 순간도 우리를 잊지 않습니다. 거기에 맞춰 우리도 과거를 잊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 과거란 것은 시간의 흐름이나 우리의 삶, 생각이 밤뀜에 따라 차츰 변질되고 흐려집니다. 병에 걸려 쇠약해진 아버지처럼 말입니다. 그런 과거를 끊어내는 것은 어쩌면 생각지도 못한 계기이거나 외부의 요인일 수도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는 부녀가 해후를 나눌 틈도 없이 해바라기 향기가 나는 사무라이를 베어버린 카리야가 그랬습니다.


하지만 과거를 마음 속에 어떻게 품고 살아갈 것인가를 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몫입니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 본다면 아무리 기분 나쁘고 싫은 과거라도 미래의 초석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주인공 세 사람은 아름답기는커녕 심신 양면으로 고생만 잔뜩 시킨 과거와 제대로 마주하고 끝을 맺는 것으로 내일을 살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그건 과거라는 것의 허울을 깨닫고 그보다 더 중요한 현실,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며 나아가는 삶의 방식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쓰마 번의 삼형제를 쓰러뜨린 무겐과 카리야 카게토키를 쓰러뜨린 진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1화에서 결판을 내지 못했던 자신들의 승부를 시작합니다. 무겐은 자신보다 강한 것 같은 상대라면 무조건 베어넘겨야 성에 차는 성격이며, 진은 덤벼드는 상대를 베지 않고 봐줄 만큼 자비로운 성격이 아닙니다. 어느 한 쪽이 죽어야 결판을 낼 수 있을 것 같던 승부는 후우의 동전 던지기라는 중재로 도중에 중단됐고, 셋은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해바라기 향기가 나는 사무라이를 찾기 전까지는 서로를 베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요. 하지만 후우가 해바라기 향기가 나는 사무라이를 만나버렸으니 이제 무겐과 진 두 사람에게 있어 서로를 베지 않을 이유는 없었습니다. 석양이 풀어져 붉게 물든 바다를 배경으로 두 사람은 칼을 뽑습니다. 하지만 두 칼날이 맞붙는 한 번의 파찰음만이 울리더니, 둘의 칼날은 부러지고 맙니다. 그와 동시에 지쳐 있던 두 사람도 쓰러져서 결국 또 결판을 내지 못했습니다. 일주일을 내리 잠만 잔 무겐과 진은 간신히 눈을 떠 서로를 바라보며 그간의 여행을 통해 변한 자신들의 속마음을 서로에게 전합니다.


무겐은 '자신보다 강한 녀석이 있으면 베지 않고는 속이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널 벨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하고, 진은 '계속 찾고 있던 걸 알게 된 느낌이 든다. 이제껏 외톨이었던 내가 처음으로 만난 동료다'라고 합니다. 틈만 나면 서로를 못 잡아먹어 으르렁거리던 초반을 생각해 보면 정말이지 감격스러운 장면입니다. 이 두 사람의 인간적 성장은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무겐은 단순한 양아치가 아니게 되었으며, 칼을 휘두르는 의미를 찾지 못하고 홀로 방랑하던 진은 동료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성장은 주인공 삼인방이 과거와 제대로 마주하는 동시에 현재에도 충실했기 때문에 이뤄낼 수 있었던 결실입니다. 해바라기 향기가 나는 사무라이를 찾는다는 여행의 목적을 위해 목숨까지 걸 만큼 모두가 전심전력을 다했습니다. 내일이란 것은 과거를 발판으로 삼아 현재에서 까치발을 들어 올려다봐야 하는 것입니다. 발끝에 힘을 가득 모아 '셋이서 함께하는 여행'이라는 현재를 누구보다도 강하게 딛고 올라선 세 사람에게는 응당 그에 걸맞는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토록 격렬한 싸움 속에서 누구도 죽지 않는 결말이 나온 것이겠죠. 참프루는 오늘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나날의 연속에서 우리 자신이 단단하게 더욱 벼려진다는 사실을 무겐과 진의 성장을 통해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무라이 참프루는 과거만큼이나 현재, 그리고 다가올 내일을 중요시 여깁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그런 성향이 잘 드러납니다. 무겐과 진을 동반자로 삼게 된 계기인 동전 던지기의 결과가 실은 뒷면이 아니라 앞면이었다는 후우의 고백은 시청자마저도 아연실색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무겐과 진이 '우리를 속인 거냐'며 화내지 않고, 조금 놀라기만 할 뿐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무겐은 '뭐였던 거냐, 이 여행은'이라며 자조하지만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과거가 괴로운 기억이라고 해서, 우연으로 점철됐다고 해서, 볼품없다고 해서 비관하거나 주눅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무겐처럼 '뭐였던 거야' 하고 웃어넘기면 그만입니다. 그 모든 과거란 결국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라는 그림 속 밑색이 되어 있습니다. 그 위에 어떤 선을 긋고 또 어떤 색을 칠할지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붓은 여전히 우리 손에 쥐어져 있으니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이 메시지는 마지막 엔딩에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세 주인공은 작품이 끝나는 시점에서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셋이서 함께한 여행'을 그리워하거나 붙잡고 늘어지지 않습니다. 단지 각자의 길을 찾아 계속 걸어갈 뿐입니다.


https://youtu.be/lmVo_4SSK5M?si=eZOloPZs48nazNLH


26화의 엔딩곡은 이제껏 사용되었던 <사계의 노래>가 아닙니다. midicronica의 <san francisco>가 사용되었습니다. 먹먹하고 그리운 마음을 들게 하는 애틋한 노래였던 사계의 노래와 완전히 반대되는 분위기입니다. 햇살 잘 드는 아침에 나른하게 일어나 느즈막한 산책으로 바깥을 계속 걷는 듯한 감성이 느껴지는 노래입니다. 경쾌한 멜로디와 흥얼거림, 일어나 계속 움직이며 나아가자는 가사 속에 이 작품의 의미가 거의 전부 함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끝나는 사무라이 참프루의 엔딩을 보고 허무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습니다만, 저는 군더더기 없이 너무나 깔끔한 엔딩이라고 느꼈습니다. 그야 우리가 살아갈 오늘과 내일이라는 것들은 아직 미지의 영역이며, 앞을 향해 계속 걸어가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세련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과거를 풀어낸 사무라이 참프루는 마지막으로 시청자들의 등을 떠밀어 줍니다. 미처 다 겪지 않은 오늘, 그리고 다가오는 내일을 향해서요.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의 성향 자체가 그렇지만, 특히나 본작에서 음악을 강조했다는 점을 들어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삶이란 작게 보면 하나의 음악이요 크게 보면 하나의 플레이리스트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과거라는 전주 없이는 현재라는 후렴도, 미래라는 후주도 제대로 즐길 수 없겠죠. 앨범이나 플레이리스트에 대입해도 그렇습니다. 1번 트랙 없이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흐려지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지나간 전주가 아쉽다고 그것만 계속 돌려 들을 순 없는 노릇이겠죠. 그래서야 후렴도 즐길 수 없고 후주도 즐길 수 없습니다. 결국 그 음악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맙니다. 지나간 전주는 지나간 대로, 이전 트랙도 지나간 대로 뒤따라 오는 음악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 줍니다. 그럼 우리가 할 일은 뻔합니다. 귀를 열고 남은 곡을 즐기는 것입니다. 삶이라고 크게 다를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본작은 과거와 현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감독의 전작인 카우보이 비밥과 비슷한 주제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비밥의 주인공 스파이크는 자신의 과거와 똑바로 마주하려 하지 않고 늘 꿈속을 사는 것처럼 살아가고자 하는 남자였습니다. 하지만 작품의 마지막에서 자신이 현재 살아 있다는 그 사실을 쟁취하기 위해 그간 눈을 돌려 오던 과거를 청산하고자 목숨을 내던집니다. 그 대가는 너무나도 무거워 결국 목숨을 잃고 말지만 스파이크는 최후의 순간에 만족했습니다. 비밥의 테마는 '현재(오늘)를 살아가기 위해 과거와 마주해 잃어버린 것을 찾는 것'입니다. 이는 사무라이 참프루에서도 여전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지만, 참프루는 과거의 중요성보다도 현재와 다가올 시간들에 대한 중요성을 더욱 강조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무겐과 진은 각자의 여행길 속에서 무수한 내일과 만날 것입니다. 그것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이야말로 사무라이 참프루가 26화를 들여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일 것입니다.


두 작품이 별개의 작품인 만큼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가 달라진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만, 저는 이 부분에 있어서 시대적 배경을 들고 싶습니다. 비밥은 한 세기의 끝을 눈앞에 두고 만들어진 작품이었습니다. 당연히 비밥 속에서 느껴지는 즐거움과 열정, 그리고 상실감과 우울함은 90년대의 것입니다. 실제로 그 시대에는 그런 감정이 깔려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멸망을 비롯한 사회 혼란이 아니라 각종 기술과 문화의 발달과 함께 도래한 21세기는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을 덜어내 주기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담백하고 수수한 셀 애니메이션 색감에서 화려하게 높은 채도의 디지털 애니메이션 색감으로 넘어간 것처럼, 작품의 분위기도 좀 더 희망차도록 현재에 충실하고 내일을 기대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90년대 애니메이션의 분위기와 2000년대 이후 애니메이션의 분위기가 판이한 것은 수요층의 성향 변화와 더불어 좀 더 거시적으로, 이러한 시대 전반의 인식을 이유 중 하나로 꼽고 싶습니다.



한편 과거와 마주하는 건 주인공들뿐만 아니라 작품 자체이기도 합니다. 사무라이 참프루는 실제 일본 역사 속 아픈 부분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작품의 핵심인 천주교 박해는 카쿠레키리시탄이라는 용어로 총칭되는 일본 가톨릭 역사의 일부입니다. 이 시기 일본의 천주교 신자들은 나가사키에서 몰살당하는 등 많은 수난을 겪었습니다. 16화의 등장인물인 오쿠루는 홋카이도 지역의 토착민인 아이누인으로, 아이누 역시 류큐처럼 막부의 마쓰마에 번에 의해 지배당하고 핍박받는 처지였습니다. 무겐은 오쿠루에게 뜻모를 동질감을 느끼는데, 무겐의 고향인 류큐도 사쓰마 번 아래에서 지배당하며 고통과 피로 얼룩진 역사를 써내렸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실로 절묘합니다. 이처럼 아프고 부끄러운 과거들을 다루는 데 있어 망설임이 없고 오히려 너무나 담담했다는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사무라이 참프루가 담고 있는 일본의 과거는 힙합 비트를 비롯한 펑키함 덕분에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중화되고 있습니다. 퓨전 시대극인 만큼 과거 그 자체에 몰두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아냈다는 것이 사무라이 참프루에게 명작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이유입니다.




마무리하며- 여름날에 전할 수 있는 최고의 플레이리스트




역시나 올해 여름도 사무라이 참프루와 함께했습니다. 리뷰를 하는 동안 작품을 되짚는 것은 곧 지난 여름의 기억을 되짚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바보 같은 짓도 많이 했고 썩 만족스런 시간을 보낸 건 아니지만 그래서 아무렴 어떨까요? '뭐 어때' 싶은 날들이 하루씩 쌓이고 쌓여 또 한 해를 돌아 오늘의 여름에 서 있습니다. 지나온 날들이 소중한 만큼 내가 살아가고 있는 날들과 앞으로 만나게 될 날들또한 소중합니다. 바로 그런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는 점에서 사무라이 참프루가 좋은 작품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러한 점을 차치하더라도 사무라이 참프루는 그 자체로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이제껏 줄줄 이야기한 것처럼 음악이면 음악, 작화면 작화, 연출이면 연출, 분위기면 분위기, 뭐 하나 빠지는 부분이 없으니까요. 온갖 즐거운 요소들을 샘플링해 만든 비트 같은 사무라이 참프루는 그 자체가 갖고 있는 다양한 매력으로 여러분들의 취향 중 적어도 하나는 만족시켜 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그리고 이 경험이 여러분들의 삶과 얽혀 덥기만 한 이 여름날을 더욱 풍요롭게 보낼 수 있는 하나의 반주 악기가 되리라고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것이 드럼 킥인지 스네어인지, 현악기인지 타악기인지는 여러분들이 작품을 받아들이기 나름이겠죠. 그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자주 쓰는 표현이지만, 좋은 작품은 좋은 독자를 만나면 프리즘처럼 분광하며 다양한 색채를 내는 법이니까요.



처음 봤을 땐 이 작품의 엔딩이 너무나도 아쉬웠습니다. 후반부에 진이 후우에게 '모든 일이 끝난 뒤라도 둘이서 계속 여행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저 역시 이 세 사람과 헤어지는 게 싫었습니다. 계속 함께해서 이들 앞에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역시 이런 류의 결말이나 '다들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하는 식의 결말에 쉽게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행복하게 살았는데? 나도 좀 끼워서 같이 보여줘!' 같은 생각을 매번 합니다. 하지만 26화의 엔딩, san francisco가 흐르며 다들 제 갈길을 가는 그 장면을 몇 번이고 돌려 보며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사무라이 참프루라는 곡은 그렇게 끝을 맺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지나간 곡이 아쉬워서 다음 곡으로 넘어가지 않고 계속 돌려 듣는다면 앨범의 남은 곡들이 서운해하겠죠. 사람이든 생각이든 물건이든 만화든 보내 줄 줄을 알아야 다가오는 것들을 온전히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그제서야 갖게 됐습니다. 고집 가득한 어린애에서 어른으로 또 한 발짝 나아간 것만 같았습니다. 매번 아름다운 이별 따위를 상정하고자 하는 건 전혀 아닙니다. 단지 한 곡이 끝나면 다음 곡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듯, 전주에서 본 곡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듯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럼 언젠가 또 보자'고 했던 후우의 마지막 말처럼, 언젠가 생각이 난다면 되돌아오거나 우연히 마주하는 식으로 다시 만날 수도 있겠죠. 올해 여름에 이렇게 사무라이 참프루로 되돌아온 것처럼 말입니다. 세 사람은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어떻게 할까요? 아마 맛있는 거라도 먹으면서 밀린 회포를 풀겠죠. 밤새 이야기꽃을 피우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시간이 되면 다시 갈림길에서 갈라져 각자의 길을 걷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것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것이라고 느낀다는 점, 그리고 저 역시 그렇게 사무라이 참프루라는 애니메이션을 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약하게나마 인간적 성장을 이뤄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본 리뷰를 작성하는 동안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작품을 어떻게 하면 잘 표현하고,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까 많이도 고민했습니다. 결국 그러다 보니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진 것도 같았습니다만, 결국 긴 시간 들여 리뷰 하나를 또 완성했네요. 글이 막힐 때는 답답하기도 했지만 끝내 마무리하면서는 사무라이 참프루가 줬던 즐거움을 다시금 떠올려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습니다. 그 말 그대로 다음 리뷰부터는 좀 더 가볍게 써내려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막힐 때마다 이제껏 썼던 리뷰 글들을 보며 글의 형식이나 포인트 등을 되짚곤 했는데, 너무 나 자신의 틀에 얽매이는 것도 썩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어깨에 힘을 빼고, 발놀림은 가볍게 해서 마치 무겐이나 진의 검술처럼 예측불허의 유려하고 치명적인 글을 쓰고 싶습니다. 꿈이 너무 큰가요? 매해 여름마다 사무라이 참프루를 되돌아보며 그 꿈에 얼마나 다가갔는지 체크해 봐야겠습니다. 이제 이 글을 마무리할 시간이 됐습니다. 해바라기 향기가 나는 사무라이를 찾는 모든 분들이 더위에 지쳐 쓰러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언제나 다양한 즐거움이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무라이 참프루를 같이 봤던 누군가, 그리고 그 결말을 이해해 준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v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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