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슬픔이 무엇에서 시작되었는지

by 사언

오래간만에 버스에 올랐다. 블랙박스가 고장 나 운전을 하기 힘들단 좋은 핑계가 있으니 마음 하나는 참으로 편하다.


버스에 앉기 무섭게 이어폰을 꽂는다. 마음속으로 골라 놓은 음악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저렴한 데다 오래되기까지 한 이어폰은 중간중간 노래를 끊어먹었다. 보통이라면 여간 짜증 나는 상황이 아니겠다만, 내가 기대하던 바는 청명한 노랫소리가 아니니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끊긴 노래에 생각을 얹는다. 내 슬픔이 무엇에서 시작되었는지, 두서없이 생각해 본다.


같은 노래가 다섯 번쯤 반복되었을 때, 어설픈 결론을 내렸다. 내 슬픔은 부질없는 나에게서 시작되었음을.


글을 쓰는 게 좋다. 그래서 무섭다. 숨 막히도록 겁이 난다.


전날의 나보다 못할까 봐 두렵다. 나는 누군가에게 글을 내보이는 사람이 아니던가. 얼굴도, 이름도 모를 이들이 오늘의 나에게 실망할까 봐 무섭다. 보잘것없는 몇 문장을 써 내려가는데 며칠이 걸린다. 회피 가득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손도 머리도 굳는다. 악의 순환이 시작되었음을 알면서도 서둘러 끊지 못한다. 그러곤 나 자신을 미워한다. 너는 참으로 못난 존재라 비난하며.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가도 금세 내리게 된다. 아둔한 시선으로 모니터를 바라만 본다. 마치 그 속에 해답이 있는 것처럼.


부정적인 생각은 미련한 실천으로 이어졌다. 없는 시간을 쪼개어 몇 권의 책을 웹에서 내렸다. 그냥 놔두기만 해도 수익을 창출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구태여 출판사에 연락했다. 책을 내리고 싶다고. 글을 보이고 싶지 않다고.


책을 내리기 전, 오 년 전의 글을 읽었다. 지금보다 더 미성숙했던 나는 심란하고 복잡한 마음을 제대로 숨기지 못했다. 문장에선 비릿한 눈물 냄새가 난다. 눈물 냄새를 맡다 보면 어떤 심경으로 글을 엮었는지, 순간순간 얼마나 참담했는지 선명하게 떠오른다.


굳은 눈물 위에 새로운 눈물이 덧대어졌다. 아주 많이.


오늘도 내가 밉다. 밉고 미운 나를 감당하고 싶지 않아 도망친다. 여전히 성숙하지 못한 나는 나에게 덩그러니 버려진 채 엉엉 운다. 눈물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면 참 좋을 텐데. 서른다섯의 나는 눈물이 별다른 힘을 가지지 못한 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유일한 도피처는 조금도 안락하지 않다. 또 다른 슬픔이 밀려온다.


언제까지 글을 쓸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점점 무뎌지는 손으로, 기민하지 못한 머리로 무엇을 써 내려갈 수 있을지 고민한다. 버스에서 내리고서도, 무작정 모르는 길을 걸으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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