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딛고

by 사언

고작 몇 장의 시험지를 풀고선 진로를 결정했다.


아니, 결정되었다는 표현이 좀 더 옳으리라.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곤 넓디넓은 배치표에 성적을 이리저리 끼워 넣어보는 것뿐이었으니.


적성을 찾아 대학을 가란 말이 공허하게만 느껴졌다. 내 적성은 오직 성적으로 결정되었다. 고작 열아홉의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쫓아갈 자신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박수를 받으며 대학에 입학하면서도 나는 이 길에 대한 의문을 떨치지 못했다. 이게 맞는 걸까, 내게 물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제대로 된 답이 나올 리 없었다. 나는 내게 그다지 좋은 스승이 아니었다. 아둔한 제자는 미련한 스승을 붙잡고 그저 불안한 시간만 쌓을 뿐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오랫동안.


외출이 금기된 시절이 있었다. 고작 오 년 전만 해도 타인과의 접촉은 해선 안 될 행동 중 하나였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던 그 긴 시간, 나는 끊임없이 침전했다. 어리석을 정도로 과거를 짚어냈다. 외면했던 과거는 내게 그 길이 아니라, 외쳐대고 있었다. 생계를 유지해야 된단 이유만으로 붙잡고 있던 일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다. 무어라도 바꾸고 싶어서.


꽤나 화려하게 첫 글을 선보였다. 벅찰 정도로 좋은 기회가 내게 왔고, 나는 안달이 났다. 하지만 기회는 맑은 물과 같아 두 손 모아 잡으려고 할수록 틈새를 찾아 빠져나갔다. 그렇게 나는 참으로 많은 기회를 잃었다.


나는 미련했고, 여전히 미련하다. 그랬기에 글을 붙잡았다. 무엇이라도 쓰면 달라질 것이라 굳게 믿었다. 이것이 내 생계가 될 것이라 간절히 기원하며 끝까지 매달렸다. 내 재능이 여기까지 인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랬기에 눈을 감았다. 귀를 닫았다. 눈과 귀를 닫으면 온 세상은 허공에 뜬 듯 현실감각을 잃어간다. 그게 좋았다. 잠시나마 이 길이 나의 길이라 생각할 수 있어서.


서른다섯의 나는 글이 내가 갈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책을 내렸다. 나의 치부를 보이는 것만 같아 세상에서 내 문장을 지워냈다. 글을 쓰던 그 꿈결 같았던 시간을 잊으려 노력한다.


다시 불안을 디딜 수 있을 것인지 물었다. 내가 다른 길을 찾아가도 되겠냐고. 그 답을 따라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나는 물었다. 그 자체가 내겐 불안을 딛는 과정이었으니.


아주 오랜 시간 꿈꿔왔던 길을 가보려 한다. 누군가는 미쳤다고, 시간을 낭비한다고 혀를 차리라. 그 비난마저 달게 느껴질 순간이 오리라 믿어보고자 한다. 조금은 헛된 망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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