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노래를 듣는다. 노래가 끝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끝과 시작이 수없이 이어진다. 마치 노래에 커다란 한이라도 가진 사람처럼 같은 노래를 반복한다. 노래에 형체가 있다면 모서리가 전부 닳아 없어졌으리라.
그 노래가 그리도 좋냐고 물으면 한 박자 늦게 그렇다,라고 답할 것이다. 세상에 좋은 노래가 얼마나 많은데 왜 한 노래만 듣냐 덧붙인다면 대답을 망설이게 될 것이고.
만일 무서워서, 겁이 많아 다른 노래를 듣지 못한다 답한다면 어떤 반응이 올 지 조금은 궁금해진다. 아마도 이상한 사람을 바라보듯, 시선의 온도가 달라질 것이다. 누군갈 놀리기 위한 말이라면 충분히 그 역할을 할 대답이다. 그러나 나는 타인을 놀릴 생각이 없고, 이럴 때면 전에 없이 진지하기 짝이 없다.
새 노래를 듣기엔 겁이 난다. 너무도 무섭다. 고작 새로운 노래를 듣는 것에 유별나게 군다. 어리석은 나는 누구 하나 공감하지 못할 감정을 품고 있다. 지하철을 타며, 버스를 타며 시간 죽일 용으로 듣는 음악에 겁을 내다니.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냐는 핀잔을 받을 게 분명하다. 그걸 잘 알기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이 노래가 좋아, 가수가 마음에 들어 한 노래만 듣는단 거짓을 뱉는다.
두려움을 피해 힘껏 움츠린다. 조금씩 밀려오는 벽을 깨는 대신, 좁은 공간에 몸을 욱여넣는다. 진절머리 나도록 무섭다. 내 세상이 넓어지는 것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너무도 무섭다. 새 노래를 들으면 그 노래 뒤 또 다른 노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싶지 않다. 터치 몇 번으로 셀 수 없는 노래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모르는 것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많다는 것을 애써 외면한다. 눈을 감고선 아는 노래를 흥얼댄다. 내 세상은 여기에서 끝났다, 그리 선을 그으며.
눈 아프게 바뀌는 것들이 무섭다. 달라지는 세상이, 그새 발전한 세상이 겁난다. 모두가 나처럼 나태하게 멈춰있기를 희망한다. 하나 나의 희망은 참으로 간사하고 어리석은 바라 누구도 따라주지 않는다. 같은 출발선상에 있던 이들이 저 멀리 뒤통수만 보이는 걸 알고 있다. 나는 기권을 선언했고, 달리는 대신 불안한 휴식을 선택했다. 불편한 자리에 아둔하게 눌러앉아 타인을 구경한다. 영원히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매번 그러했듯 시간은 나의 편이 아니다. 언젠가는 일어나 달려야 함을 모르지 않는다. 배, 어쩌면 그 이상의 힘을 들여야만 남들의 뒤통수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으리라. 멈춤이 길어질수록 빨라질 달릴 속도를 머릿속으로 셈해본다. 참으로 부질없는 짓임을 알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