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서른다섯이라 말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매번 말하고선 새삼 놀라고 만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서른 다섯 해를 견뎌냈다는 사실은 여전히 믿기 힘들기에.
나이 다음엔 무엇을 물어 오던가. 직업을 묻는 질문엔 십여 년째 같은 대답을 내놓는다. 교사예요. 초등학교 교사. 그러면 언제나 비슷한 반응이 돌아온다. 사회가 기대하는 초등학교 교사와 결이 맞지 않기에 사람들의 얼굴엔 의문이 쌓인다. 아마도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으리라. 나의 고민은.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지, 수 없이 자문한다. 누군가 갈망하는 자리를 감히 나 따위가 차지해도 되는지 물어본다. 나 따위가 누군가에게 큰 영향을 끼쳐도 되는지 고민한다. 그러다 보면 나는 점점 작아진다. 교사인 나도 나로서의 나도 구석으로 몰리고 만다.
왜 교사를 선택했냐 묻는 질문에 섣불리 대답하기 힘들다. 어쩌다 보니, 누군가의 권유로, 현실적인 이유로 나는 교사를 선택했으니. 어찌어찌 짜내어 내놓는 대답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좀처럼 없다. 그러니 침묵할 수밖에. 할 말이 없으니 조용히 입을 다물고서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나는 아는 게 없다. 참으로 무지하다. 아는 게 없어 내가 얼마나 모르는지 알지 못한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조금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자꾸만 움츠러든다. 최대한 존재를 숨기고서, 눈과 귀를 틀어막는다. 엉성하기 짝이 없는 현실도피를 일삼는다.
서른다섯을 분수령에 올리고선 고민한다. 내가 다시 교탁 앞에 서도 되는지 물어본다. 누군가는 책을 몇 권이나 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시험에 합격하여 자격증을 얻는 동안 나는 무엇을 하였는가. 진보는커녕 교탁 앞에 설 자격이나 갖추었는지 자문한다.
한 해의 안식을 가지며 고민한다. 서른여섯의 나는 다시 교탁 앞에 설 수 있을지, 아니면 이제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영겁의 고민은 끝없이 쌓인다. 고민의 무게에 나는 잠식된다. 그 슬픔에 싸여 침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