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엔 사자가 풀려 있고

by 사언

운동장엔 사자가 풀려있고, 우리는 죽을힘을 다해 도망친다. 잠시라도 멈추면 잡아먹힌다는 걸 알기에 비릿한 피맛이 올라오도록 뛴다. 힘에 부치면 옆에 있는 이를 사자에게 들이민다. 그것이 유일한 생존의 방법이라 배웠으니까.


'내신'이란 단어의 어원도 모른 채 고등학교에 던져졌다. 고작 열일곱의 나에게 내신은 지켜내야 할 목숨줄이자 친구에게서 빼앗아와야 할 존재였다. 열일곱. 남들보다 한 뼘 앞섰다는 핑계로 나는 알량한 마음을 먹었다. 뭐 그리 대단한 필기를 했다고 노트를 보여주지 않고, 친구를 의심의 눈길로 바라본 것이다. 우습게도 인문계 고등학교에 있어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모든 행동은 쉬이 합리화되었고, 나는 이를 발판 삼아 끊임없이 의심하고 경쟁했다. 이 경쟁이 평생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조금도 모른 채.


대학에 들어가면 그 긴 달리기가 멎을 것이라 생각했다. 참으로 어리석지. 어리석다 못해 제법 안타깝지. 달리기는 당연하다는 듯이 이어졌다. 학점이라 이름을 바꾼 내신을 따기 위해, 임용시험이란 큰 장대를 뛰어넘기 위해 경쟁했다. 상대만 바뀐 또 다른 경쟁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미 경쟁에 익숙해진 이들과 싸운 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렜기에 몇 번이나 기권을 외치고 싶었다. 백기를 든 채, 항복을 선언하고 싶었다.


운동장엔 사자가 풀려있고, 우리는 죽을힘을 다해 도망쳤다. 여기서 멈추면 잡아먹힌다는 것을 알기에, 뛰었다. 힘에 부치면 옆에 있는 이를 사자의 아가리에 들이밀었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을 벌었다. 숨을 고르고 다음 희생양을 골랐다.


서른다섯 살. 한 해의 안식을 가진다, 아니, 한 해의 기권을 선언했다. 봄의 시작 즈음, 새벽같이 일어나 경쟁하던 삶을 조금은 내려놓는다 알렸다. 누군가는 나를 부러워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나를 비난했다. 너는 나약하다고, 모든 걸 회피한다고. 우습게도 그 어떤 말도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가라앉고 싶었다. 아주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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