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를 먹고서도 나는 아둔하다. 모난 곳 투성이에 잘난 것이라곤 찾기가 힘들다. 때론 이 텁텁한 현실을 엮어 망상을 해보곤 한다. 구태여 예를 들자면 좀 다른 길로 멍청했으면 어떨까? 이런 것들이겠지. 가을의 초입은 상상의 나래를 펴기 참으로 좋은 시기다. 눈을 잠시 감고서 자기 객관화가 정확지 않아 제 잘난 맛에 사는 나를 떠올려본다. 아주 구체적으로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얼마 전까진 그러고 살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지극히 평범하다.
지금이야 아무런 감정 없이 뱉을 수 있는 말이건만. 이 뭣도 아닌 말을 소리를 내보내기 위해 참으로 오랜 열병을 앓았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Somebody가 아닌 Nobody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너무도, 너무나도 험난했다.
한때는 내가 제일 잘난 줄 알았다. 나만한 사람이 없다고 여겼다. 하나, 드높은 자존감은 일련의 사건으로 훅훅 무너져갔다. 나라는 견고한 성채가 모래사장처럼 아주 평평해질 때까지 말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모조리 부서져 바닥을 치면 괜찮을 것이라 여겼다. 그 뒤론 올라갈 일만 남지 않았을까, 그리 생각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바닥 아래엔 더 깊은 공간이 있었다. 그걸 알고선 나는 숨 쉬기 조차 버거웠다. 어디까지 내려가야 하는지 감도 잡기 힘들었으니까.
자존감이 무너지며 내 삶은 달라졌다. 자신감 있게 손을 들던 나는 과거로 흩어졌고. 그저 눈치만 살피는 미물만 남았을 뿐이니.
나를 쉽게 세우는 방법을 모르지 않는다. 타인을 깎아내리면 나는 쉬이 올라갈 수 있으니까. 하나, 남을 상처 주면서 나를 치켜세우고 싶진 않다. 내 알량한 자존감 좀 높여보겠다고 타인에게 상처 주며 사느니 입 다물고 좀 우울해하는 게 낫다. 그게 남들과 함께 사는 방법이고 내가 선택한 삶이다.
한 줌으로 변해버린 지금 이 모습이 내겐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