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는 어른들에게도 관계맺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다. 특히 한국의 현대 사회는 아파트 중심의 폐쇄적 구조속에서 이웃과의 관계 형성이 쉽지 않다. 지난 50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주거 구조의 급격한 변화만으로도 관계맺음의 방식이 아주 많이 달라진 듯 하다. 내가 결혼을 하고 첫 신혼 집을 얻었을때만 해도 이사 후 이웃에게 떡을 돌리고 인사를 하던 관습이 있었는데 요즘은 극히 드문 옛 풍속이 되어버린 듯 하다. 그러한 변화 속에 어느덧 우리의 사회는 옆집 이웃과 얼굴도 모르고 살아가며 개인의 영역에 대한 침범을 매우 불편해하며 층간 소음으로 인해 예전엔 상상도 못하던 갈등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 속에 우리의 아이들도 예전에 온 동네 아이들이 골목에서 경계심 없이 놀던 세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어린이집, 유치원을 통해 관계가 형성이 되고 아이들의 관계는 어른들의 관리하에 이루어진다. 예전보다 환경적으로도 위험요소가 많아지기도 했고 여러 방식으로 아이들의 부류가 나누어지고 관리되어지기도 한다.
초등학교에 진학한 후 아이들의 첫 친구그룹은 이웃중심이 아니라 학교 친구 엄마들의 그룹에 따라 형성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친구관계를 형성하고 배워갈 기회가 줄어들었다. 친구관계에 문제가 생겨도 스스로 해결할 새 없이 어른들의 개입이 이루어진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물론 심각한 문제가 생겨 어른들의 개입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그러한 우려 때문인지 초기에 싹을 없애려는 어른들의 개입이 재빨리 이루어진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어른들의 개입을 이용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점점 관계에서 오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간다.
여자 아이들은 초등학교 3~4학년 정도부터 친구 그룹을 형성하기 시작하는데 그 과정에서 소유욕이 강한 친구들 또는 성향이 강한 친구들은 무리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들은 밀어내기도 하고 그로 인해 아이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간혹 그러한 아이들의 갈등이 엄마의 갈등으로 이어지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자라는 과정에서 관계에서 올 수 있는 여러가지 경험을 하고 스스로 해결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빠르게 문제해결을 하고자 하는 어른들의 마음으로 인해 그 기회를 잃기도 한다. 아이들은 문제가 생겼다가도 화해를 하고 다시 관계를 회복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문제에 개입했던 어른들의 상처는 그보다도 훨씬 오래 가기도 한다.
남자 아이들의 친구관계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주로 축구클럽에 참여하면서 엄마들의 그룹과 함께 형성이 된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점점 활동하는 분야에 따라서 그룹이 나뉘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아이들의 독립적인 친구관계가 형성된다. 남자아이들은 여자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게 친구관계가 형성이 되는듯 하다. 항상 학기 초에는 그룹에서 알게 모르게 우위를 차지하려는 신경전이 일어나는것 같기도 하다. 공부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 아이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우위를 차지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이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각자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친구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은 남자아이들 여자아이들이 다소 다르지만 남녀에 관계없이 사춘기에접어든 아이들은 때로는 무모해 보이는 돌출행동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숨어들기도 한다. 아이들은 중학교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로 어른들의 평가와 판단을 받게된다. 학습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존재감을 잃고 자기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아이들은 무리지어 다니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서로 소위 '왕따놀이'를 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서로 상처를 주고 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왜 이렇게 관계맺음 속에서 어려움을 겪어야만 하는걸까? 아이들의 성격과 기질 때문만일까? 물론 아이들의 성격과 기질, 개인적인 배경도 작용할것이다. 하지만 그 개인적인 요인 이면에 더욱 근본적인 사회적, 환경적 요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 우리의 취업과 입시 시스템과 그로 인해 형성된 교육환경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생각된다. 어릴때부터 아이들은 경쟁관계에 놓이게 되고 왜 그러한 경쟁을 해야하는지 이유도 모른채 그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이들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가게 된다. 공부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려 애를 쓰기도 하고 애초에 포기를 하고 자신만의 세계로 숨어들기도 한다. 내가 멘토링하는 청년들 가운데는 어려서부터 공부에 관심이 없고 그 환경을 거부하는 마음이 커지자 도피처로 책을 선택하고 친구들과의 소통을 포기해 자폐진단을 받기도 한 친구가 있다. 그 청년은 실제 자폐가 아님에도 친구들과의 소통을 포기하고 자신만의 세계로 숨어든 것이다.
아이들의 문제는 표면적으로 방황과 일탈 또는 은둔 두 가지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아이들의 마음에 문제가 생기면 종종 등교거부로 이어지고 학교가 아닌 밖에서 관계를 찾으며 방황을 하거나 집이나 방 밖으로 나가지 않는 상태가 이어져 은둔상태에 다다르기도 한다. 그리고 막다른 길에 다다른 아이들은 세상을 등지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내가 은둔형 외톨이 청년들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종종 지인들의 주변에서 은둔을 시작하는 아이들을 둔 부모들이 내가 참여하고 있는 단체를 소개해 달라고 연락이 온다. 실제로 내가 처음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던 20년 전보다 확연이 그러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많이 접하고 있기도 하다.
아이들이 이러한 관계와 정체성의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개인이나 가족들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함이 있어 보인다. 가족관계에서의 변화와 노력이 우선적으로 중요한게 사실이지만 그 밑바탕에 산재해 있는 사회적 교육적 환경의 문제도 분명히 해결이 되어야 하며 과열된 경쟁에서 벗어난 이웃간의 따뜻한 소통이 더욱 필요하다. 매일 마주하는 우리 이웃에서 서로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말이 더욱 절실한 요즘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