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속도
#02 속도
달리기를 하다 보면 속도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달릴 때 마다 달리기와 우리의 삶의 원리가 너무나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달리기에 관한 기록을 하다 보니 속도에 대해 종종 쓰게 되었던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닌가 한다.
#02_1 멈추지 말고 속도를 늦춰보자
달리다가 숨이 차고 너무 힘들어지면 멈추고 싶다. 그 때 멈추면 다시 달리기 시작하기가 더욱 힘들게 느껴진다. 너무 벅차다고 느껴지는 순간, 멈추지 말고 속도를 늦춰 계속 달려 보자. 벅찼던 호흡이 고르게 이어지고 달리기도 더욱 편안해 진다. 천천히 달리면서 몸이 이완 되고 익숙해지면 다시 속도를 올려 본다. 멈췄다 다시 달리기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달리기를 수월하게 이어가고 속도에 익숙해진다. 그리고 조금 더 오래, 멀리 달릴 수 있게 된다.
삶이 너무 힘들고, 지치고, 벅차게 느껴질 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힘들다고 주저 앉아 멈추면,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기 더욱 힘들어 진다. 벅차고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의 속도를 조금만 늦춰 보면 숨을 고르고 주변을 돌아보며 다시 조금씩 속도를 높여 갈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가끔 생각해 본다. 아이들의 사춘기로 벅찼던 시절, 일을 그만 두고 주저 앉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조금 늦어졌지만, 일상을 느린 속도로 이어가고 살아냈기에 아이들이 사춘기의 터널을 빠져 나오고 성장하는 동안 나의 삶도 조금씩 더 나아졌다. 나는 나를 믿고 이제 어떤 상황 속에서도 또 다른 꿈을 꾸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앞으로도 삶에서 언제든지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또 감당하기 힘들고 견디기 벅참을 느끼더라도 나는 멈추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멈추지 않으면 삶은 계속 된다.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삶을 살아 내리라는 확고한 믿음이 나를 든든히 지탱해 줄 것이다. 하루 하루가 살아 있는 내 생의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날들임에 감사하며, 현재를 살아갈 것이다.
#02_2 마음의 부담을 덜어보니
매일 5킬로 달리기를 하던 시절,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길게 18킬로를 달려보았다. 영하 11도의 날씨였지만 추위가 느껴지기 보다는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사계절을 쉬지 않고 계속 달리다 보면 계절마다 느낄 수 있는 다른 재미가 있다.
일 년 내내 쉬지 않고 5킬로 이상을 달리기로 결심한 후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렸지만, 매일 바쁜 일상 속에서 달리다 보니 그리 길지 않은 5킬로가 매일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매일 더 몸이 무겁고 달리기가 쉽지 않게 느껴지기도 느껴졌었는데, 이 날은 크리스마스 연휴라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마음의 부담이 덜하니 훨씬 더 긴 거리지만 한결 가벼움을 느끼며 달릴 수 있었다. 매일 부담을 가지고 달렸던 5킬로의 거리는 거뜬히 달렸고, 비록 9킬로를 달린 후 잠깐의 휴식을 가진 뒤 다시 달리기는 했지만 13킬로 지점을 지날 때는 13킬로를 달려왔는데 나머지 5킬로 쯤이야 거뜬히 달리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한결 몸이 가벼움을 느꼈다.
달리기든 다른 어떤 종류의 운동이든 속도나 강도를 높여 진행할 때는 몸의 컨디션이나 다른 상황보다는 나의 마음과 생각에 따라 그 강도를 이겨내느냐 못 이겨 내느냐가 결정이 됨을 알 수 있다. 인간은 도전의 순간에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매 순간 느끼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마음을 어떻게 먹고 어떻게 생각을 의식적으로 고쳐 나가는 지에 따라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누구나 가지고 있음을 도전의 실패와 성공을 반복해 나가며 스스로 매워나가는 것 같다. 오늘도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어감에 감사함을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 해본다.
#02_3 자기만의 속도로 끝까지
3년 차 지금보다 더 슬로우 러너 였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달리기 3년 차 슬로우 러너이다. 늘 무리하지 않고 나에게 맞는 페이스로 목표한 거리를 끝까지 가려고 노력한다. 처음 달릴 때는 페이스 조절에 실패해 달리다 힘들어 걷기도 하고 목표한 거리를 끝까지 달려내지 못하기도 했다. 만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적어도 속도를 조절해 끝까지 달리 수 있게 되었으니 그동안 차 많이 발전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끔 달리다 보면 빠른 속도로 나를 지나쳐 달려 나가는 이들을 볼 수 있다. 그들 중엔 끝까지 자기 속도로 달려 나가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가끔은 다시 내가 그들을 앞서 나가게 되는 경우도 있다. 살아가며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에는 자기에게 맞는 속도가 있는 듯 하다. 무언가를 처음 배우고 실천할 때 유난히 속도가 빠른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빠르게 나아가던 모두가 끝까지 그 빠른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관찰할 수 있다. 빠르게 성장하다가 슬럼프가 오기도 하고 느리지만 갈수록 서서히 속도를 높여 가는 경우도 있다.
어떤 속도로 일을 진행하든 자기에 맞는 속도를 찾아 끝까지 지속하는 사람들이 결국은 성과를 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삶에 주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을 누가 먼저 많이 해내느냐 보다, 크던 작던 끝까지 해내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지금 조금 느리다고 실망하고 포기하는 우리이기 보다는 지금은 조금 느려도, 지금은 조금 적게 성취하더라도, 그 무언가를 지속하고 있는 우리는 분명 성취와 만족의 비밀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자신을 믿고 계속 나아가 보자. 우리가 그리는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02_4 절대 감속
밤 사이 조용히 내려 앉은 눈을 뽀드득 뽀드득 밟고 달리는 기분이 최고이다. 지난 며칠 동안 미세 먼지에 뿌옇던 하늘도 오늘은 티 한 점 없이 맑고, 태양도 기분 좋게 빛을 비추어 준다. 눈이 녹아내린 노면은 미끄러워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어야 하지만, 아직 녹지 않은 뽀송한 눈 위를 달리는 건 맨 땅을 밟는 것 보다 더욱 안전하고 재미지다.
눈이 쌓인 길을 따라가다 보니 공사로 ‘절대감속’ 하라는 안전 표지판이 보인다.
최근 무기력에 관한 책을 몇 권 읽고 있는데 저자들은 기술로 인해 빠른 발전을 해온 현대사회에서 우리 인간은 우리가 기술로 만들어 놓은 물질들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면서 스스로 물질화, 상품화 되어가고 있다고 입을 모다 말하고 있다. 물질화, 상품화 되어가는 우리 인간은 진정한 자신을 잃어가고 있기에 무기력을 느낀다고 말하고 있다.
기술로 인해 인간은 편리함과 빠른 속도, 쾌적한 환경들을 누리고 있지만 그 부작용으로 정보와 알고리즘에 지배를 당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빠르고 감각적이고 편리한 환경 속에서 우린 때로는 절대감속을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멈추지 못하고 목적지도 모르고 계속 나아가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절대감속을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멈추어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끝까지 달려가고 있다. 우리는 멈추어 제대로 생각하는 능력을 점점 상실해 가고 있다. 생각이 멈추면, 우리의 존재도 점점 상실되어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멈추고 생각해 보라는 자연의 경고에도 인간의 모순된 본능은 욕망으로 인해 멈추어 서지 못한다. 그리고 때로는 큰 재앙으로 그 댓가를 치르기도 한다.
숨가쁘게 바삐 돌아가는 삶 속에서, 우리는 잠깐 멈추어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이 과연 인간 다운 행복한 삶을 지속하기 위해 괜찮은 길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 우리 삶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위험!’, ‘절대감속!’의 신호가 있다. 우리 개개인의 삶에서도,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도 우리는 그러한 신호를 마주할 수 있다. 그럴 때 마다, 우리는 이 경고를 가벼이 넘겨선 안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신호를 마주하면 절대감속을 하고 필요하다면 멈추어 서서 깊이 생각해 보는 여유를 가져보자. 그러면 무기력함도 위험도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