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자녀 양육에 대한 무게를 벗어 던지자

아들아 방황해서 고마워_02 나의 자유의지가 발현되다

by FriendlyAnnie

나는 나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영어교육이라는 한 분야에 몸 담아온 지 26년차 베테랑(?) 선생님, 아니 이젠 젊은 선생님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나이 많은 선생님이 되어 있다. 내 마음은 아직 처음 아이들을 만나던 그 시절과 다름이 없는데, 어느새 이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다. 아이들과 수준이 비슷해서 아직까지도 아이들과 함께 활동하는 게 재밌고 즐겁다. 그런데 요즘은 문득 문득 아이들에게도 젊고 예쁘고 더욱 열정적인 선생님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튼 지난 26년 간 정말 많은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만났다. 때로는 나와 교육 철학이 같아서 무한 지지를 해 주시는 분들도 있었고, 때로는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시험과 평가를 토대로 하는 우리의 교육체계에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들을 만나기도 했다. 나의 교육철학은
아이들이 진정으로 배움을 즐거워하고 배움에서 행복을 얻도록 도움을 주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지만, 현실에서는 많은 난관이 있었다. 그래도 26년 간 꽤 꾸준히 고집을 부려온 편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녀 양육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교육을 빼놓고 얘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선진국일수록 당연히 교육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교육의 방향이 코 앞의 불을 끄는 방식이 아니라 30년, 50년, 100년 뒤 우리의 아이들, 우리의 아이들의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에서 행복을 누리고 살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할 것이다. 교육 외에도 우리 엄마들의 자녀 양육에 무게를 더해주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다.



과거의 교육의 결과로 관습과 관념에 순종하는 우리 자신

우리 세대에는 부모님들 세대보다 훨씬 더 여성의 대학 진학과 사회 진출이 많아졌지만, 우리가 학교 및 사회에서 받아온 교육에서, 여성은 순종적이어야 하고, 착하고 헌신적인 며느리, 아내,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아왔다. 오랜 교육의 결과로 그것이 당연하다 여기며, 여성은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면서도, 가정 살림과 육아에 대한 책임감을 오롯이 혼자 짊어지게 되었다. 사회인으로서 책임을 다하려면, 가정에서의 역할 일부를 희생해야 했고, 아이가 아파도 휴가도 내기 힘든 환경에서 일을 하면서 심리적 압박감을 많이 받기도 했다. 그렇게 가정일과 육아와 병행하면서 성실하게 일을 했는데, 자녀가 사춘기를 맞이하면 예전보다 훨씬 유해한 환경에 놓인 자녀들의
방황으로 고통과 상처를 받게 된다. 아이를 잘못 길렀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으로, 자녀에 관한 부부의 다툼이 잦아지기도 한다. 한 번은 시어머님이 ‘네가 집에서 살림만 사는데, 애가 저렇게 방황했으면, 너 한테 책임이 있는 거다.’ 라고 말씀하셔서 속상했다. 결국 아이에 대한 책임은 여성에게 전가되고 있으니, 엄마들이 아이를 잘 기르지 못하면 부족한
엄마라고 느끼기도 하는 그런 관념 속에 우리가 살아왔던 것이다. 아이는 우리 모두가 함께 길러야 하는데 말이다.

핵가족 시대

우리 사회가 점점 핵가족 시대로 변화해 왔고, 이제는 2010년 이후 지속적으로 2인가구가 주된 가족의 형태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전통적으로 대가족 형태의 가족에서는 한 아이가 태어나면 온 가족이 함께 양육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엄마의 주변에는 할머니, 이모, 고모 등의 여러 조력자들이 도움을 주기도 하고 먼저 경험했던 것들을 알려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대사회로 발전이 되어오면서, 우리는 수십 년간 3~4인 가족의 형태를 유지해왔다. 엄마가 직장에 다니건 안 다니건 산후조리 기간이 끝나면 아이의 양육은 엄마만의 몫이 되었고, 그렇기에 엄마의 양육방식이나 감정상태, 그리고 신체적 정신적 건강 상태는 고스란히 아이의 발달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성장에 있어서 모든 결과가 엄마의 책임인 듯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아이의 성장이나 발달은 엄마의 노력과
양육방식에 완전히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는 어느 정도 자라 중학교를 갈 시점이 되면 엄마보다 사회와 또래집단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므로, 핵가족 시대에 홀로 양육을 담당하여 온갖 애를 써온 엄마들은 아이의 청소년기 상태에 대해 스스로에 대해 자책할 필요가 더더욱 없다. 현재 아이의 상태가 끝이 아니고 아이는 성장의 과정 중에 있음을, 그리고 엄마는 이제부터 더욱 확고한 자신을 찾고 아이의 더욱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아이의 성과와 엄마의 양육 성공이 동일시되는

사회적 분위기

앞에서도 잠시 얘기한 것처럼, 아이의 성공적인 진학과 사회진출이 엄마의 양육 성공인 듯 여겨진다. 엄마들은 제대로 된 자녀 양육에 관한 철학을 만들어 가기도 전에 엄마로서 아이들의 성공적인 학습에 대한 압박을 느끼며 양육을 시작한다. 더불어 아이들도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탐색할 시간도 없이 잘 짜진 학습 프로그램의 세계에 던져진다. 이 세상 모든 아이들 중 똑같은 외모, 성격, 재능을 가진 아이는 아무도 없다. 아이들 마다 재능은 셀 수 없이 다양하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도 다양하고, 아이들의 재능이 발현이 되는 시기도 분야마다 아이들이 발전해 가는 속도도 모두 다르다. 우리는 그런 아이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좀 더 타이트한 학습을 할 수 있는 시스템 속으로 아이들을 밀어 넣고 있다. 그것은 단지 엄마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구조상 대학을 졸업 해야지만 기본적으로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을 할 최소한의 자격이 부여된다. 게다가 명문대를 졸업해야만 대기업으로의 취업이나 고위 공직으로의 진출 가능성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엄마들은 사랑하는 자녀가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당연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 아이가 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 우리 자신도 모르게 숨가쁘게 쫓아가고 있던 걸음을 멈추고 한 번 생각해보자. 그리고 주변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연 지금까지 해오던 방법들이 이대로 괜찮은 지 생각해 볼 시간이 된 것 같다.


수능이 목표가 되어버린 아이들



나는 학력고사 세대이다. 그 당시엔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이 드물었다. 중학교 졸업을 하면서 고등학교 공부를 대비하기 위한 대형 단과 강의 정도를 들었던 것이 전부였다. 상시에 학교 공부를 위해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은 없었다. 우리는 학교 수업과 EBS 강의 정도에 의존하여 공부를 하고 고등학교 때는 야간 자율학습도 의무였다. 달걀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 판단하기 힘든 것 처럼 현재는 학교 시스템이 아이들이 학습하기엔 부족해서 사교육이 활성화가 된 것이 먼저인지, 사교육이 활성화 되면서 학교에서 아이들의 수준차가 벌어져 수업을 하기 어렵게 된 것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지만 아무튼 아이들이 공부를 하는데 이중고가 생긴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부모들은 정말 확고한 신념이 없다면 아이들의 학습을 어떻게 이끌어주어야 할 지 혼란스럽고 난감할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은 내 아이가 수능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대부분의 부모들이 생각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시점이 되면 수능으로 대학을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닫게 된다. 그러니 엄마들은 자녀가 성인이 되어 나름대로 독립을 하게될 때까지는 계속해서 혼돈 속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은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지 못하고, 불가능
한 수능을 쫓아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쫓아다니다 결국은 뒤늦게 현실을 직시하게 되고, 대학교 입학 이후의 인생의 목표에 대해서는 생각해보는 경험을 거의 못하게 된다.


나 역시 사교육의 현장에서 오랜 기간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좀 우스운 얘기지만 학교가 사라지거나 학교 내신을 위
한 사교육이 결국 없어져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글을 쓰고 나서 많은 분들의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만, 20년 이상 사교육에 몸담아 오면서 깨달은 사실이다. 현재 나는 영어도서관 형식의 교습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20년 이상 아이들과 책을 읽고 소통하면서 꿈이 하나 생겼다.
다른 곳에서 수익을 내면서, 아이들에게 저비용 혹은 무료로 영어 책을 읽고 생각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는 꿈이다. 그리고 인생이 수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것 처럼, 수능 너머 인생의 그 다음 여정도 지속할 수 있는 아이들의 꿈을 찾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는 아이들의 책읽기 친구가 되고 싶다.


아! 또 삼천포로 빠질 뻔 했다. 벌써 빠졌나? ㅎㅎ
물론 아이들이 행복하게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합리적인 공교육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이 구축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불가능하다면, 내 생각엔 엄마들이 자녀의 특징을 잘 알고, 인정하면서 아이가 원하는 것을 대화를 통해서 계속 의논하고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무조건, ‘넌 특별히 하고싶은 게 없으니 공부라도 제대로 해야해!’라고 생각하면서 아이가 원하지 않거나, 아이에게 벅찬 공부를 지속시켜선 안된다. 그것은 아이와의
관계 악화 속에 아이의 삶의 의욕을 잃게 만드는 방식일 뿐이다. 아이들의 성적에 대해 강박관념을 벗어버리고

우리 아이의 상태를 잘 이해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 큰 숨을 내쉬어 보자. 그리고 지금 우리 아이와 나 자신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선택과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그럼 부담으로만 다가왔던 아이의 상태와 양육에 대한 무게가 조금은
덜어지고, 정말 행복할 수 있는 방향이 눈에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엄마의 삶의 목표가 없다


많은 엄마들이 얘기한다. 현실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고. 당장 우리 아이가 교육제도 내에서 낙오되거나 벗어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지켜볼 순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인생 목표가 대학입학일까? 아님 수능에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일까? 우리 아이들의 인생은 수능을 치른 뒤에도, 대학을 입학하고 졸업한 뒤에도 계속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생각과 가치관의 성장이 없이 경쟁을
위해 공부를 한 아이들이 30대, 40대가 되어도 부모로부터 독립을 못하는 캥거루 족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숨가쁘게 수능을 향해 달려가다 번아웃이 되어 포기해 버리거나, 수능을 본 날 부모를 원망하며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친구의 이야기도 뉴스에 본 적이 있다.


엄마들은 아이들이 좀 멀리 돌아갈까, 좀 더 힘든 길로 갈까 걱정이 된다. 아이들이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어도 엄마들은 좀 더 안전하게 빨리 갈 수 있도록 아이들의 인생에 개입을 한다. 아이를 성공적으로 길러야 한다는 양육의 무게를 조금만 벗어 던지면, 엄마는 아이들과 좀 더 가깝고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텐데… 아이들은 결국 엄마의 사랑과 믿음이라는 양분을 먹고 자신의 길을 향해 스스로 나아가는 건강한 아이들이 될텐데... 그리고 엄마도 아이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만들기 위해 시간을 바치느라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아가게 될텐데…


사춘기 자녀와의 갈등과 부모로서의 시행착오는 피해갈 수 없다 생각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는 힘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한 걸음 떨어져서 아이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 자라는 것을 믿는 것처럼 엄마 자신에게 눈을 한 번 돌려보면 어떨까? 아이가 행복한 성인으로 성장한 후 난 어떤 모습으로 내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100세 시대에 중년기라는 70살이 되면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한 번 상상해 보자. 그냥 아이들을 다 키우고 편안하게 남편과 소일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어떤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까? 나름대로 아이들로부터 독립되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미리 그려보고, 그 삶을 위한 준비를 하나씩 해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지금부터는 엄마 자신의 삶의 목표에 더욱 집중을 해 보면 좋겠다.


아이도 엄마도 함께 성장하고, 독립하고, 행복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그냥 방치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20대까지도 아직 미숙한 부분이 있기에 부모의 가이드가 필요하기도 하다. 단, 내가 하고싶은 얘기는 자녀양육에만 전념하지는 않는 게 좋겠다는 얘기다. 더 이상 남편과 자녀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면서 자신의 행복을 그들에게 의존하지 않는 게 좋겠다. 엄마 자신의 행복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씩 채워가면서 만들어 나가길 바라본다. 현명하고 헌신적인 엄마는 우리의 과거의

교육에서 만들어진 신념이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이 달라졌고,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게 될 환경도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전혀 모르는 새로이 등장한 직업을 가질 수도 있고, 가정을 이루고 살지 않을 수도 있다. 예전처럼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기는 힘들수도 있지만, 훨씬 더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질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우리 엄마들도 앞으로는 어떤 삶을 살게될지 예측할 수 없다. 어느 유능했던 교수가 자녀들에게 헌신하고 살았으나, 노년에 부인이 죽고나서 자녀들에게 버림받아 노숙을 하게되었다는 슬픈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교수가 자녀 교육을 잘 못했다고 단언할수는 없을 것 같다.


생각해 보자. 우리는 과연 무엇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을까?


남편의 성공?
자녀들의 성공?


직장맘에게는
자녀를 양육하면서 온갖 시행착오와 상처로 점철될 수 있는 그 과정이 피할 수 있는 시간들은 아니지만
그 시련과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한 인간으로서 더 단단해지고 자신을 발전시키는 과정이라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전업주부에게는
절대로 자녀들의 보편적 진학성공이나 취업성공이 엄마들의 훈장이 되거나, 반대로 진학실패나 취업실패가 엄마의 자녀양육의 실패로 평가되어 좌절감이나 우울증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아이가 자라서 한 독립체로서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겪는 좋고 나쁜 모든 일들이 온전히 엄마의 책임이라는 관습적 자녀양육 중압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이에게 마음 편히 무한신뢰를 줄 수 있는 엄마로 우리가 성장한다면, 그리고 집중할 수 있는 우리의 삶이 있다면 아이도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행복한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도 더욱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본다. 아이도 엄마도 독립된 인격체이다. 우리는 모두 존재 자체로 소중한 이들이다.


지금 당장 생각을 바꿔보자!

아이는 내가 사랑과 믿음이라는 양분이 가득한 큰 밭에서 길러 줘야할 존재이다. 어떤 상황에서 든 엄마인 내가 흔들리지 않고 나 자신을 알고 사랑한다. 아이와 나를 위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자. 사랑과 믿음이라는 양분은 아이와 나, 둘 모두를 성장하게 한다.

라고.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보자.
지금 나의 결정이 정말 나와 아이 모두 행복할 수 있는 결정인가? 지금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가?


이 책을 쓰는 동안 난 엄마들이 얼마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고, 자녀들이 성장 후 자신이 원하는 꿈이나 계획이 있는지 궁금했다. 청년들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던 것처럼, 학부모, 동료선생님들, 그 밖의 지인들 중심으로 지면 인터뷰를 실시하였다. 대다수의 엄마들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했다. 청년들의 인터뷰에서와는 달리

엄마들과의 인터뷰에서는 엄마들의 꿈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대부분 자녀들 잘 키워 놓고 남편과의 편안한 노후를 보내는 것이 목표였고, 대부분 자신의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를 생각하는 것 조차도 어색해했다. 몇몇 일하는
엄마들은 목표와 꿈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으나 평범한 대한민국의 엄마들에게는 역시나 가장 큰 관심사는 자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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